스웨덴의 해양고고학 강의를 듣던 중 안더스 프란젠 (Anders Franzen)이란 학생은 스웨덴의 강성을 나타내던 구스타프 아돌프 시대의 거대전함 바사에 대해 듣고는 그 배를 꼭 인양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발트해는 염분이 적어서 목제를 부식시키는 박테리아가 살지 못할 것이고 또 부드러운 뻘이 배를 보호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갈고리 하나를 들고 17년 동안 침몰 추정 위치에서 바사호를 탐색합니다. 결국 1961년 무려 333년만에 발견되어 인양된 거대전함 바사는 놀랍게도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추정대로 발트해의 염분이 일반 바다보다 적다는 것과 배 자체가 단단한 참나무로 되어 있다는 것이 바사를 원형대로 유지해 주던 이유였습니다.

북방의 사자왕 구스타프 아돌프
17세에 왕위에 오른 구스타프 아돌프는 오르자 마자 골치아픈 문제에 직면합니다, 선왕이 벌여놓은 전쟁 때문이었죠, 늘 그렇지만 이런 전쟁에는 항상 왕위계승권과 영토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죠. 그는 왕위에 오르자 마자 유명한 의회연설을 통해 Riksdag (신분의회)를 통해 정부행정의 전권을 위임받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변 덴마크, 폴란드, 러시아등과의 전쟁을 외교적으로 혹은 전략적으로 (이것에 관련된 이야기만 해도 또 다른 포스팅거리가 생기겠죠 ^^; ) 승리로 이끈 그는 내부적으로도 국가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스웨덴은 당시 북방의 최강자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그 이후 종교적 문제로 인한 30년 전쟁이 발발하고 구스타프 아돌프는 그 전쟁에 참여하게 되죠 초기 승리를 얻으며 구스타프의 별칭인 <북방의 사자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뤼첸 전투에서 발렌슈타인의 기습을 받아 전술적 승리를 얻었었으나 구스타프 아돌프는 난전중에 사망하게 됩니다. (여기에도 온갖 믿지못할 영웅적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 )
뭐 아무튼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강대해진 스웨덴은 독일과 경쟁을 하면서 발트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바사가 건조된 것이지요. 구스타프 아돌프는 스웨덴의 강성함을 보여주고 국력의 심볼로서 쓰이기 위한 배를 건조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배는 당시 가장 크고 성능이 뛰어나며 아름다워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죠.
건조에 2년이 걸린 당시 최대의 군함.
구스타프는 상인 Arent Hybertszoon de Groote를 통해 독일 출신 조선가 Hendrick Hybertszoond 과 Henrik Jakobson 을 통해 바사를 건조하기로 하고 또 이후 4년간 스웨덴 해군의 유지보수 계약과 이후 4척의 신형함 건조에 계약하게 됩니다. 1626년 3월 부터 건조에 들어간 바사는 1627년 배를 진수하고 1628년 스웨덴 해군에 인계되죠, 이 사이 설계자 Hybertzoond 는 지병으로 사망합니다.
진수될때 길이 47.70m , 폭 11.20m , 홀수선 4.75m , 배수량 1300톤 거기에 48파운드와 24파운드포를 합해 모두 64문의 중무장을 한 바사호는 당대에 대적할 만한 함이 드문 최상의 함선이었습니다, 거기다 외부 장식마저 각종 조각상이 700개가 넘고 뒷면은 화려한 금장까지 덧붙인, 말 그대로 <크고 강력하며 화려한> 함선이었습니다.
1628년 8월 10일, 이 날은 이 바사호가 처음으로 스톡홀름 항구를 떠나 전장으로 나가는 날이었습니다, 항구에는 왕과 왕비 그리고 대신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배의 출항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이 배는 당시 스웨덴의 자존심이기도 했으니까요.
많은 환호성과 함께 돗을 올리고 항구를 빠져 나가던 바사호는 연안쪽으로 따라 붙으며 예포를 발사합니다, 64문의 대포에서 동시에 발사하는 예포는 장관이었겠죠, 그 순간 타이밍 참 멋지게도 대포 발사와 동시에 강한 바람이 배의 측면을 때립니다. 그 순간 바사호는 기울어지더니만 옆쪽으로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불과 100미터도 전진하지 못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순식간에 배는 뒤집어 졌고 차가운 북해의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렸죠. 수심 25패덤 (1패덤은 1.8미터)의 물속이었고 워낙 빠르게 가라 앉아 버려 승조원이 탈출할 새도 구조할 새도 없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배는 그대로 450명의 승조원 (선원 150명, 군인 300명)의 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배가 가라앉은 이유는 당시 기술로는 너무 과도한 크기였다고 합니다, 당시 배의 일반적인 설계에서 단지 크기만 더 크게 만들었기 때문에 배가 균형을 잡지 못했고 또 강한 화력을 위해 너무 많이 탑재한 화포와 탄약이 무게를 흐뜨러 뜨렸으며 우연찮은 측풍과 예포발사 타이밍이 모두 복합 작용을 일으켜 이 배를 바다속으로 밀어 넣은 것입니다.
바사호 박물관
당시 항구에서 이 장면을 그대로 목격한 왕과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기록이 없으니 알 수는 없지만 엄청난 실망을 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더더구나 바사호의 바사는 스웨덴의 바사왕조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바사의 침몰로 바사왕조의 침몰을 연관했을까요? 알 수가 없죠.
뭐 아무튼 침몰 후 프란젠이 인양하고 다시 스웨덴은 이 배를 20년간 복원 작업을 실시합니다 14,000개의 목조품과 700개의 조각상을 일일이 방부처리하고 배의 부품을 하나하나 다시 조립해 바사를 원형대로 복원합니다, 물론 금칠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1990년 5월에 바사 박물관이 건립되고 그 안에 복원한 바사와 1/10 크기로 줄인 모형등을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바사 박물관은 스칸디나비아의 모든 박물관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박물관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인양 당시의 바사>
북방의 사자왕 구스타프 아돌프
17세에 왕위에 오른 구스타프 아돌프는 오르자 마자 골치아픈 문제에 직면합니다, 선왕이 벌여놓은 전쟁 때문이었죠, 늘 그렇지만 이런 전쟁에는 항상 왕위계승권과 영토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죠. 그는 왕위에 오르자 마자 유명한 의회연설을 통해 Riksdag (신분의회)를 통해 정부행정의 전권을 위임받습니다.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변 덴마크, 폴란드, 러시아등과의 전쟁을 외교적으로 혹은 전략적으로 (이것에 관련된 이야기만 해도 또 다른 포스팅거리가 생기겠죠 ^^; ) 승리로 이끈 그는 내부적으로도 국가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스웨덴은 당시 북방의 최강자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그 이후 종교적 문제로 인한 30년 전쟁이 발발하고 구스타프 아돌프는 그 전쟁에 참여하게 되죠 초기 승리를 얻으며 구스타프의 별칭인 <북방의 사자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뤼첸 전투에서 발렌슈타인의 기습을 받아 전술적 승리를 얻었었으나 구스타프 아돌프는 난전중에 사망하게 됩니다. (여기에도 온갖 믿지못할 영웅적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 )
뭐 아무튼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강대해진 스웨덴은 독일과 경쟁을 하면서 발트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바사가 건조된 것이지요. 구스타프 아돌프는 스웨덴의 강성함을 보여주고 국력의 심볼로서 쓰이기 위한 배를 건조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배는 당시 가장 크고 성능이 뛰어나며 아름다워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죠.
건조에 2년이 걸린 당시 최대의 군함.
구스타프는 상인 Arent Hybertszoon de Groote를 통해 독일 출신 조선가 Hendrick Hybertszoond 과 Henrik Jakobson 을 통해 바사를 건조하기로 하고 또 이후 4년간 스웨덴 해군의 유지보수 계약과 이후 4척의 신형함 건조에 계약하게 됩니다. 1626년 3월 부터 건조에 들어간 바사는 1627년 배를 진수하고 1628년 스웨덴 해군에 인계되죠, 이 사이 설계자 Hybertzoond 는 지병으로 사망합니다.

1628년 8월 10일, 이 날은 이 바사호가 처음으로 스톡홀름 항구를 떠나 전장으로 나가는 날이었습니다, 항구에는 왕과 왕비 그리고 대신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배의 출항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이 배는 당시 스웨덴의 자존심이기도 했으니까요.
많은 환호성과 함께 돗을 올리고 항구를 빠져 나가던 바사호는 연안쪽으로 따라 붙으며 예포를 발사합니다, 64문의 대포에서 동시에 발사하는 예포는 장관이었겠죠, 그 순간 타이밍 참 멋지게도 대포 발사와 동시에 강한 바람이 배의 측면을 때립니다. 그 순간 바사호는 기울어지더니만 옆쪽으로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불과 100미터도 전진하지 못하던 상황이었습니다.

배가 가라앉은 이유는 당시 기술로는 너무 과도한 크기였다고 합니다, 당시 배의 일반적인 설계에서 단지 크기만 더 크게 만들었기 때문에 배가 균형을 잡지 못했고 또 강한 화력을 위해 너무 많이 탑재한 화포와 탄약이 무게를 흐뜨러 뜨렸으며 우연찮은 측풍과 예포발사 타이밍이 모두 복합 작용을 일으켜 이 배를 바다속으로 밀어 넣은 것입니다.

당시 항구에서 이 장면을 그대로 목격한 왕과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기록이 없으니 알 수는 없지만 엄청난 실망을 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더더구나 바사호의 바사는 스웨덴의 바사왕조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바사의 침몰로 바사왕조의 침몰을 연관했을까요? 알 수가 없죠.
뭐 아무튼 침몰 후 프란젠이 인양하고 다시 스웨덴은 이 배를 20년간 복원 작업을 실시합니다 14,000개의 목조품과 700개의 조각상을 일일이 방부처리하고 배의 부품을 하나하나 다시 조립해 바사를 원형대로 복원합니다, 물론 금칠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1990년 5월에 바사 박물관이 건립되고 그 안에 복원한 바사와 1/10 크기로 줄인 모형등을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바사 박물관은 스칸디나비아의 모든 박물관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박물관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덧글
유키링 2007/04/19 13:48 # 답글
예포 한 번 쏘고 침몰.....
에이미 2007/04/19 13:51 # 답글
어쩐지 타이타닉이 생각나더라니....; 그걸 복원해서 박물관으로 만들다니 굉장한 센스군요. 우리나라도 서해 앞바다를 파봐야할 것 같네요. ^^
우석양 2007/04/19 14:01 # 답글
이 배에 얽힌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스웨덴이었군요..중딩때 읽었던 이야기라 어느샌가 스페인으로 인식이 되어 있었다는..-_-;;
까마귀 2007/04/19 14:06 # 답글
...거참 타이밍 절묘했군요...[...]예포 발사 직후 침몰...
流れ星 2007/04/19 14:08 # 답글
결론은.. 기술수준에 맞는 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군요.그런데... 저건 좀.. 너무하잖아. OTL.
징소리 2007/04/19 14:16 # 답글
크기에 집착하는건.. 참으로 어디나 마찬가지인걸까요.
크악크악 2007/04/19 14:24 # 답글
이상하게 이걸 읽으니 환빠들 생각이 나는건 왜 일까요? -.-;;
하늘이 2007/04/19 14:49 # 답글
"크고 아름다운"거 좋아하다 말아먹은 케이스죠. 그리고 거기에 불운까지 양념으로 들어갔으니 결과는 당연지사. 그러고 보니 20세기에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간 타이타닉이라는 사례도 있군요. -ㅅ-;;
2007/04/19 14:5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파파울프 2007/04/19 15:13 # 답글
유키링님/ 안습이죠 ^^;에이미님/ 우리나라 바다도 뒤져보면 온갖 보물선들이 많을걸요? 특히 뻘이 많은 서해안 같은 경우는...
우석양님/ 저도 그런 문제가 많아요, 어떤때는 전혀 엉뚱한 것을 이름이 비슷하다고 헷갈리는 경우도 꽤나 있죠 ^^;;
까마귀님/ 뭐랄까... 타이밍도 타이밍이지만 어차피 침몰의 가능성을 깊게 가지고 있던 것이라... 어쩔 수 없져 뭐
流れ星님/ 사실 저런 도전이 있었기에 새롭고 큰 배를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그저 기존의 행위 만으로는 새로운 것이 나오기는 힘들겠죠.
징소리님/ 뭐... 인간이 큰거 좋아하는거 별로 드문일은 아니죠 ^^;;;
크악크악님/ 환빠들의 거대물에 대한 애증은 말해 뭣하겠습니까~~ 다만 있는 거대물은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서 판타지를 쓰니...
하늘이님/ 아! 그러고 보니 타이타닉도 비슷하군요~ 측풍 대신 빙산~~ ^^
비밀글님/ 아! 전공이 그러셨군요~!! 그리고 그 문제는 저도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저도 전문 연구가가 아니니 여기저기 책들을 봐가며 쓰는 글이죠 그래서 참고서적등을 기록하고 싶습니다만... 문제는...
제가 지금 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죠 ^^;;; 제가 본 책들은 경주 본가에 있는 것들이에요 그러다 보니 정확히 어떤 책이고 어떤 출판사였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요.
여기 서울 공부방에서는 그저 제 기억에 의존해서 글을 쓰는 것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오류도 꽤나 많이 발생하죠 ^^; (그래서 전문 서적을 참조해 주십사 하는 겁니다)
그러니 어느정도 제가 안정화 될때 까지는 확인이 불가능 해서 그 점 양해 바랍니다. 아! 참 이미지는 대부분 구글에서 퍼옵니다. 이미지 출처도 기록해야 하지만... 게으름 때문에 항상 넘겨 버리죠. 아참! 네이버 백과사전 등도 꽤나 자주 봅니다.
책벌레 2007/04/19 15:36 # 답글
정말 비극속의 배이군요..타이타닉호 참사처럼 첫 항해에서침몰했다니 말입니다.
레무네아 2007/04/19 15:43 # 답글
크기만 큰 배라...
미식가 2007/04/19 16:13 # 답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첫 귀선 진수식때가 생각나는군요...포 한번 쏘고 가라앉는...
슈타인호프 2007/04/19 17:36 # 답글
바사 호 이야기가 나온 책 두 권(리더스 다이제스트 세계상식백과, 놀라운 과학기술의 세계)을 가진 입장에서...파파울프님 포스팅의 오류는 딱 하납니다. 바다가 "북해"가 아니라 "발트해"라는 거죠. 스웨덴이 북해에 면한 나라는 아니죠?^^그리고 오타 하나. "~~할 세"가 아니고 "~~할 새"입니다~~^^
아케트라브 2007/04/19 17:58 # 답글
맙소사........... 실망 뿐이었을까요정치는 저렇게 해야되지 말입니다 ㅠ
파파울프 2007/04/19 21:43 # 답글
책벌레님/ 그래도 타이타닉은 상당히 멀리 나가보기라도 했죠, 이건 바로 코앞에서 침몰했으니... ^^;;레무네아님/ 사실 크기만 큰 배라도 저걸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는건 큰 기술이죠.
미식가님/ 우리나라도 구한말 증기선을 복원했다가 가라앉힌 사연이 있습니다, 나중에 여유되면 그 이야기도 한번 할께요 ^^
슈타인호프님/ 아~ 그렇군요, 북해의 제해권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 아무튼 얼른 수정하겠습니다 ^^;;;
아케트라브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겠지요, 그걸 어떻게 수습했을지도 궁금해 집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사라질때 까지 두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방법을 썼을까요...
ZAKURER™ 2007/04/19 22:31 # 답글
'쪽팔린 첫경험이자 최후'였지만 그래도 저렇게 박물관에 멀쩡히 들어선 게 은근히 부러운데요?'우리의 거북선'은 판자떼기라도 어디서 안 나오려나요 T.T
슈타인호프 2007/04/19 23:00 # 답글
음, 제가 착각한 게 더 있습니다. 일단 "박테리아"가 아니라 나무를 파먹는 "나무좀벌레"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프란젠이 받에서 낚시(...)를 하던 중 좀벌레한테 무지 심하게 갉아먹힌 난파선 조각 하나를 건졌는데,"염도가 낮아 좀벌레가 서식하기 힘든 발트해에서 이렇게 심하게 갉아먹힌 나무가 있단 것은 그만큼 오래된 침몰선이 있다는 것이고, 이 근처에서 그럴 만한 배는 바사호밖에 없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에서 유래된다고 하네요.
맨손 2007/04/19 23:07 # 답글
겉보기 회전점 문제...
zert 2007/04/19 23:31 # 답글
크고 아름답군요(!?!?!?)
지나가던이 2007/04/19 23:32 # 답글
zakurer// 저 시대 전열함 중에서 남아있는건 바사뿐입니다. 당시 목조선이 아주 잘 만들어진 경우가 아닌 이상 수명이 20년 이상 가지 못했으니 사실 당연한 일이죠. 즉, 바사호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로 귀중한 유물이자 연구자료이죠. 시대 불문하고 전체 전열함으로 넓힌다 해도 저거말고 넬슨의 빅토리호 말고는 따로 없지 않을까요?
파파울프 2007/04/20 00:09 # 답글
ZAKURER™님/ 서해 쪽이라면 어쩐지 기대해 볼만도 하겠습니다만... 서해쪽에서 거북선이 다수 활동한 기록을 보지 못해서 말이죠.슈타인호프님/ 아? 그건 전혀 몰랐는걸요? 어떤 공식적인 기록이 아니라 프란젠의 바사호 발견의 시초가 되는 사건이었군요. 이런... 완전히 잊어 버린건지 아니면 아예 못 본건지 모르겠네요... 이제는 머리가 둔해져서......;;;
맨손님/ 그런 원인도 있겠죠 당시 출항기록을 보면 그렇게 추정도 할 수 있으니까요.
zert님/ 크고... 아름답죠....;;
지나가던이님/ 아주 잘 만들어져도 목제선이 남기는 참 힘들죠 ^^ 300년이면... 어휴~~
슈타인호프 2007/04/20 00:22 # 답글
지나가던이//아뇨, 한 척 더 있습니다. 바사호보다는 한 세기 앞선 시대의 배라 동시대 배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요. 헨리 8세 휘하 함대의 기함이었던 "메리 로즈"호가 역시 인양되어 보존중입니다.
파파울프 2007/04/20 00:32 # 답글
슈타인호프님/ 메리로즈와 바사호를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요? 사실 상 산산히 분해된 배를 억지로 조립한 느낌이라 말이죠. 그러고 보니 메리로즈도 포쏘다 뒤집어 졌네요... 과도기의 전열함들이 가지는 고질문제인지...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07/04/20 00:37 # 답글
300년된 배라니 대단하군요.
파파울프 2007/04/20 00:52 # 답글
사바욘님/ 300년 되었다기 보다 300년만에 복원한거니... 음... 그게 그건가요? 음... ^^;;;
어부 2007/04/20 01:08 # 답글
저 배 얘기를 '베니스의 개성상인'에서 읽은 기억이 희미하게 나는군요. 너무 오래 돼서 가물...
슈타인호프 2007/04/20 01:48 # 답글
1628년이니 근 400년....뭐 메리 로즈호하고 1:1 비교는 좀 곤란하겠지만, 적어도 현존하는 유일한 대항해시대(요샌 이 단어도 안 쓰더군요) 전투함은 아니라는 뜻에서...^^
치열한양군 2007/04/20 02:41 # 답글
바사호 이야기를 보니 오래 전에 읽은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아무튼 좋은 글 감사합니다.
冷箭 2007/04/20 08:49 # 답글
거참 허망하군요.
파김치 2007/04/20 13:15 # 답글
너무 커서 문제였군요. 예포 한 번 쏘고 그대로 침몰이라니.; 그러다 문득 제일 조그만 '바사'가 생각나서, 저 엄청난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상상을 했습니다;;;
파파울프 2007/04/20 13:40 # 답글
어부님/ 아... 저도 읽은 책인데 기억도 나질 않네요, 어쩌면 그 책의 내용도 지금 이 글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요즘들어 머리가 정말 나빠진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슈타인호프님/ 뭐... 어쨌거나 낭만이져 낭만~~ ^^
치열한양군님/ 도대체 그 책을 언제 읽었는지도 기억나질 않네요... 아... 옛날생각... ^^
冷箭님/ 허망해도 역사죠 뭐... 후일에 저렇게 복원해서 관광자원화 할 수 있는 껀덕지도 남겨 주었고 ... ^^;;;
파김치님/ 예포만이 원인이라기 보다 엄밀하게는 측풍의 영향이었죠 다른건 단지 복합적으로 함이 순식간에 뒤집어지는 원인이 되었고요, 그리고... 바사는 대항해시대 시리즈에도 나올껄요? 거기 조그만 형태로 보면... 재미있잖아요 ^^;
비상문 2007/04/22 22:57 # 답글
북방의 사자왕 구스타프 아돌프, 첫 단락에서 '글 그렇지만'이 아니라 '늘 그렇지만' 아닌가요?
파파울프 2007/04/23 03:53 # 답글
비상문님/ 수정했습니다. ^^; <늘>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