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마지막 역 사

인조가 남한산성에 짱박혀 있는 사이 경상도와 전라도의 근왕병들이 밀려 오고 승전과 패전이 있었습니다. 아마 조금 더 지구력을 발휘했더라면 의병들이 더 일어나 전황이 어찌 되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왕이 남한산성이라는 조그만 성에 갖혀 있었고 그나마 병력 또한 2만이 못 되었습니다. 식량사정도 전에 이야기 했듯 50일 정도 뿐이었지요. 거기에 남한산성을 둘러싼 청군은 본진까지 더해져 10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즉 청군은 한 몇달정도 버티기만 해도 싸움없이 조선을 밟아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그해 겨울은 너무나 추웠지요 임금과 함께 들어간 병사들과 장수들이 야지에서 노숙하다가 얼어죽는 사태도 간간히 발생했습니다. 결국 최명길등의 주화파의 입김이 김상헌의 주전파에 압도해 결국 강화하기를 결정합니다.

청태종도 조선을 없에 버릴 생각을 한것이 아닌 만큼 강화조약을 받아 들이기로 하는데 여기에 조건이 몇가지가 붙어요.

첫번째로 청나라는 왕이고 당신들은 신하에요.
두번째로 명나라 연호를 쓰지말고 관계도 끊고 명나라가 조선임금에 책봉한다는 증거인 고명.책인을 줄것.
세번째로 왕자하고 둘째하고 신하들 자손들 하고 청나라에 인질로 보내요.
네번째로 앞으로 청나라 대할때는 예전에 명나라 황제 대할때의 예를 그대로 행하세요.
다섯째로 내가 명나라 치러가면 군대를 보내요
여섯째로 우리가 물러갈때 군선 50척을 징발해 나에게 줘요
일곱째로 청나라 군신들과 혼인관계를 맺어요
여덟째로 성을 새로 만들지도 말고 기존의 성벽을 고칠 생각도 말아요.
아홉째로 기묘년 부터 계약된 세금을 납부 하도록 해요.

였습니다. 한마디로 무진장 덤터기 쓴거죠. 예전에 정묘년에 조약에 비한다면 이거 거의 독립국 하지 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헌데 어쩌겠습니까? 있는 것도 없이 국제관계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깝쭉 대다가 한달도 되지 않은 시간에 박살이 나버렸는걸요. 까라면 까야죠.

결국 그해 1월 30일 인조는 세자와 신하500을 대동하고 삼전도에 나와 청태종에게 삼배구고두를 행하고 서울로 들어갈 수 있었죠. 당연히 조약대로 소현세자, 봉림대군, 척화론자 홍익환, 윤집, 오달제등의 신하들 그리고 얄궂게 멍청한 왕을 둔 죄로 끌려간 수만의 백성들 (설에 따라서 다르지만 몇만에서 최대 50만까지 이야기가 있지만 50만은 좀 허풍 당시 조선의 인구가 몇인데...)을 이끌고 2월 15일에 철군하여 되돌아 갑니다.

이로서 조선은 이후 1895년 청일전쟁 전까지 청나라에 복속된 국가로서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 역사에 왕이 작살난 경우가 딱 두번 있는데 하나는 몽골의 침략이요 하나는 병자호란입니다. 헌데 몽골의 침략은 그래도 저항할만큼 저항도 해 보고 정말 어쩔 수 없이 큰 힘에 밀려 망하게 된 사례입니다만 호란은 조금만 주의하고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일어났더라도 저항할 수 있었음에도 지휘부와 통치자의 멍청함으로 나라가 작살난 부끄러운 사례이죠.

알다시피 제가 조선을 참 좋게 보는 사람입니다만 이 사건은 정말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는 어이없는 전쟁입니다. 뭐...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 일을 기억하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는 않도록 해야 겠죠?



<삼전도 비>



*첨부자료*

이야기 하나~ 인조는 삼전도에서 머리를 찧을 정도로 쑈를 했을까?

이것은 단지 민족적 감정을 부추기려는 설화에 불과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어릴때 교과서에서 삼전도에서 인조가 머리를 찧으며 비웃는 청나라 장수들 사이를 지나갔다고 합니다만 당시 사료인 조선왕조 실록에는 전혀 그런 모습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항복 논의가 오가는 1월 21일의 인조실록에는

<청나라 장수 용골대 왈 "황제께서 심양에 있다면 항복 문서만으로도 가능하곘지만 지금 삼전도에 황제가 와 계시니 국왕이 직접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용골대는 또 <항복에는 정해진 예법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구슬을 입에 물고 관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나 이것은 너무 가혹하고 두번째 방법인 오백의 하인을 거느리되 용포를 입지말고 군사의 호위없이 서문으로 들어와 알현하는 것이 좋겠소>라고 합니다.

즉 청나라와 조선이 전쟁을 하였지만 한쪽을 지도상에서 삭제해 버리려는 것도 아니고 당시 동북아의 기본적인 예법의 틀속에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의 왕이 전쟁으로 나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다만 이 경우에는 특별히 황제가 직접 나왔으니 좀 다르다 정도였습니다.

그 후에 1월 30일 삼전도에 갔을때의 기록에는 <예를 행하고 나서 안내인에 따라 황제의 오른편에 앉아 연회를 즐겼다. 그리고 황제가 모피 두벌을 내렸고 임금이 하나를 입어 봤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 더 길지만 그냥 생략해서 이렇다 한겁니다. 궁금하시면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를 이용하세요 ^^ -

즉 어디에도 피를 철철 흘려가며 무릎을 꿇고 머리를 찧는 일은 나오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더라면 실록같은 기록에 그것이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죠 실록은 임금이 농담한 것도 기록하는데 임금의 옥체에 피가 흐르는데 그것을 생략할까요? 그리고 피가 철철 흐르는 사람을 자기 옆에 앉혀두고 술먹이고 잔치하는 상황도 이상한겁니다.

즉 청태종을 오랑캐의 수장으로 보고 그들의 예법인 삼배구고두를 행한 것에 쪽팔림이 크다는 것이라면 모를까 사실 그렇게 대단한 치욕을 겪은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배구고두라는 것도 그저 그렇게 할만큼의 예를 다한다 정도의 의미를 지닌 예법인 것일 뿐이죠.



이야기 둘~  멀쩡한 백성들은 왜 끌려갔나?

뭐 주전론자들이야 당연히 국제적 관례에 의해서라도 끌려가는 것이 정상이죠. 그자리에서 목을 베어버리지 않은 것도 참 많이 봐준겁니다. 헌데 백성들은 왜 끌고 갔을까요? 그건 몸값을 위해서라는 거죠. 물론 그 중에는 음흉한 놈들도 많아서 이쁜 여자들을 끌고 가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전쟁나면 이래저래 여자들이 피곤하죠. 아무튼 이 양민은 전리품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전쟁에 참여한 일반 병사들은 속가를 받아 한몫 잡기 위해 사람들을 끌고 갔고 그 숫자는 아무래도 청나라 병사 숫자보다 적은 정도만큼 되겠죠.

문제는 대부분 이 속가전을 내기 힘든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보통 싸면 20냥 가량 일반적으로 150냥 가량이고 신분이 좀 높으면 천냥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죠. 어쨌거나 가족은 다시 돌려 받아야 했으니 사람들은 이 몸값을 마련하기 위해 애를 썼고 이것은 국가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쟁 배상금도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또 환향녀들에 대한 문제도 심각한 사회문제화 되어 이후 조선을 두고두고 괴롭히게 됩니다.

그리고 세자와 봉림대군은 10년만에 조선으로 돌아오는데 세자는 오자마자 죽어 버렸고 봉림대군은 이후 효종에 즉위하여 <청나라 이 씹x놈들 내 이놈들 죽x 버린다>며 북벌을 외치다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이야기 셋~ 병자호란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

처음 약속대로 조선은 명나라의 연호를 쓰지 말고 청나라 것을 써야 했습니다만 이게 또 자존심인지라 한동안 계속 명나라 연호인 숭정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후 청나라가 왜 자꾸 약속을 지키지 않냐고 하니까 겨우 겨우 공식 문서에서나 청나라 연호를 기록하는 정도로 바뀝니다. - 개인적으로나 대외용이 아닌경우 끝까지 명의 연호를 쓰는 집요함도 보입니다 -

그리고 이후 청이 명의 금주를 공격할때 파병 요청을 합니다. 조선은 마지못해 120척의 함선과 병력을 임경업 장군에게 주어 보냅니다만 임경업 장군은 그 중에 40척을 삥땅쳐 숨겨 버리고 80척만 끌고 개주까지 간 다음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고 관망만 하고 있었으며 되려 명군에 청군의 동태를 알려주는 스파이 행위도 합니다. 결국 청나라는 임경업 군대를 돌려보내고 인조에게 조약위반에 대하여 엄중 항의하게 됩니다.

이후에도 청태종은 파병 요구를 했고 기병 2000을 보내기도 하고 조총병등을 보내기도 했지만 죄다 싸움할때 아프다고 안나가고 나가서는 공포만 쏴대다가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도망가 버리는 등 쇼만 하다가 끝내 버렸죠. 결국 조선군의 파병은 되려 감시해야 하는 골치 아픈 상황만 발생시켜 나중에는 별로 부르지도 않게 되죠.

하여간 자존심 하나만큼은 징하게 컸습니다. 물론 누차 말했지만 그 자존심이 순수하게 조선이나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죠?





핑백

  • 지석 : 청 2009-04-09 12:27:47 #

    ... nbsp;청태종, 인조, 청실록, 조선왕조실록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병자호란 마지막 by 파파울프 병자호란 1편 by 초록불 병자호란 세번째 by 파파울프 병자호란 네번째 by 파파울프 ☆#by 번동 ... more

덧글

  • 푸른별빛 2007/08/03 19:24 # 답글

    남한산성이 애초부터 임금의 예상 피난처중 하나였는데 식량사정이 안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남한산성의 보급을 담당하던 관리가 '백성들이 물자를 나르기 힘들다'는 이유로 남한산성 내에 있는 창고에 식량을 넣어놓지 않고, 그보다 40리 정도 아래에 지은 창고에 식량을 보관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더군요. 평소라면 역시 법도의 국가겠거니 했겠지만 때가 때인지라...-_-;;

    병자호란 스토리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음으로는...나선정벌이 나올 차례인가요 ㅎㅎ
  • 더카니지 2007/08/03 19:41 # 답글

    잘 봤습니다 ^^ 소현세자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잘만됐으면 호란으로 인한 과오를 완전히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인조 스스로가 차버렸으니..
    소현세자가 즉위했으면 하멜 일행의 표착도 하나의 기회가 됏을 가능성이 높은데...쩝....
  • 比良坂初音 2007/08/03 22:27 # 답글

    있는건 조또 없으면서 같쟎은 자존심만 살아서 버팅기면
    얼마나 상황을 악화시키는지 아주 잘 알려주는 실례죠
    하기사 요즘이라고 해서 그 때랑 달라진 것도 없지만-;
  • 아케트라브 2007/08/03 22:39 # 답글

    긴~ 병자호란의끝이군요.! 배울게 참 많네요
  • 서군시언 2007/08/03 22:54 # 답글

    자존심 하나는 징하군요. 덕분에 마지막은 웃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씁쓸하네요. 병자호란사는 잘 읽었습니다.
  • Azafran 2007/08/03 22:55 # 답글

    역시 마지막이 해피앤딩이 아니라선지 임진왜란의 수많은 영웅담에 비하면 제가 알고 있는 것이 훨씬 적었군요. 몰랐던 사실을 많이 배웠습니다.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미스터 박 2007/08/04 02:13 # 삭제 답글

    이 후덜덜한 햏각을 보니 쫓겨난 광해군이 왕으로선 더 나아보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명은 청나라에게 망한 게 아니라 이자성의 농민반란군에게 망한 건데 말이지요....(먼산)
    아무튼 개망신 당하고서도 끝까지 존심 세우는 것에 캐안습 쓰남휘가....
  • 총천연색 2007/08/04 02:20 # 답글

    그 놈의 같잖은 존심은 버려야 이롭다는 것을
    다시 확인 시켜주네요. ㅇ_ㅇ;

    지킬 때 지키고, 버릴 때 버립시다.
  • 이재우 2007/08/04 07:51 # 삭제 답글

    역시 자존심도 상황을 잘 보면서 세워야 좋은 거지요. 안 좋은 상황에서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우면 이건 뭐..
  • 정worry 2007/08/04 14:06 # 삭제 답글

    인조 이후로 우리나라는 계속 그대로인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핀오프로(-_-;;;) 환향녀 얘기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궁금해지네요.
  • 행인1 2007/08/04 14:34 # 답글

    다른 도 근왕병들도 거의 패하지 않았던가요? 함경도는 도착이 늦었던 걸로 알고 있고요.

    그리고 강화도 함락 건도 만만찮더군요.

  • zert 2007/08/04 15:26 # 답글

    남한산성의 경우 한명욱의 판단 착오로 인하여 식량을 끌어내리지만 않았다면 정말 재미있게 전개되었을 것 같습니다.
    뭐 일단 청나라 군도 남한산성을 공략하려다 포기하고 포위로 전환했으니-_-;
  • 파파울프 2007/08/04 15:41 # 답글

    푸른별빛님/ 세세한것을 따지자면 보기에 따라서는 정말 안습인 경우들이 널려 있죠. 가끔은 이러고도 나라가 돌아가나? 싶을 정도의 것도 있고 말이죠 ^^ 뭐 하지만 결국 어떤 나라든 이런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수술이 있었기 때문에 500년을 이어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더카니지님/ 지나간 것을 어찌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죠~ 뭐 우리같은 아마추어 들이야 이렇게 뒤집어도 보고 저렇게 되돌려도 보는 법입니다만 ^^

    하츠네님/ 그 자존심이 우리가 잘났다 라는 것이었다면 물먹어도 배부른 상황이겠습니다만 엉뚱하게 우리가 소중화다 라는 자존심이어서 말이죠...

    아케트라브님/ 그래도 전쟁 자체가 금방(?)끝난 거라 다섯편으로 끝났죠... 전에 도전 하다가 만 임진왜란의 경우 10편을 넘어 갔는데 아직 7년의 1년도 못 끝냈던 터라 도저히 감당이 되질 않더군요. 지금 비밀글로 돌려 놓기는 했지만 수정 연재해야 할건데 이것도 참 일이네요

    서군시언님/ 자존심 만큼 실력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절절히 생각납니다

    Azafran님/ 아무래도 전쟁 자체가 금방 끝나버린 상황이라 특별히 눈에 띄는 영웅담이 별로 없죠.

    미스터박님/ 광해군이 당시 주류를 포섭하지 못한 과오와 북인의 전횡이 문제 되는 것은 있지만 그래도 외교감각은 뛰어나서 우리나라가 절대왕정쯤 되었다면 나름 전화위복이 되었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있어요

    총천연색님/ 예 지킬때는 지키고 버릴때는 확실하게 버려야죠.

    이재우님/ 자존심에는 역시 실력이 붙어야만 제대로 된 자존심이죠. 힘없는 정의는 무능하다고 했던가요?

    정worry님/ 사실... 크게 달라진게 없죠. 아니 매번 말하지만 인간사가 도구만 달라질 뿐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죠

    행인1님/ 강화도 실함은 정말 큰 문제였죠. ^^ 그 이야기를 빼버렸습니다만 덕분에 전후에 강화도 책임자들이 전부 목이 달아나거나 귀향을 갔죠. 다른 지방의 문제는 역시 시간과 지휘계통의 문제였지만 그래도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쌍령빼고, 물론 연려실기술의 내용에 따랐을때)

    zert님/ 사실 위에 사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산성으로서 상당한 기간을 버틸 수 있는 요지는 요지였죠. 문제는... 역시 떠오르는 청나라의 힘은 시간을 생각해도 쉽지 않은 상대고 이쪽은 체스의 킹이 완전 몰려 있는 상황이라는거...
  • 2071 2007/08/04 18:06 # 답글

    예전에 구한말에 이 당시를 얘기하는 소설이나 뭐 그런 것들을 보면 다 임경업 장군이 불쌍하다 안되었다 뭐 그런 얘기들이 (.............)
  • 파파울프 2007/08/04 21:40 # 답글

    2071님/ 뭐... 그때는 별의 별 환타지가 다 있었는걸요? ^^
  • 들쮜 2007/09/10 16:52 # 답글

    삼전도의 비가 최근에 무지몰각한 중생들에 의해 훼손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