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드디어 4대 해전의 서막이 사직됩니다. 일단 가장 오래된 전투인 살라미스 해전에 대해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살라미스 해전은 지중해의 아테네 연합과 동방의 페르시아간에 있었던 해전을 말합니다. 이 해전으로 아테네는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리스 세계에 패권을 쥘 수 있었으며, 페르시아는 자국 내부의 붕괴를 불러오는 시발이 되었죠. - 엄밀히 말하면 페르시아의 붕괴조짐은 그 이전부터 있었습니다만 이런 식의 이야기는 내용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이후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
아테네와 페르시아는 이미 전부터 오랜 경쟁관계였습니다. 사실 이 살라미스 해전은 아테네의 약속 위반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기원전 508년 아테네가 페르시아에 물과 흙을 보내 종속하겠다는 서약을 하고서는 실제로는 이행하지 않은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독촉하는 페르시아 사절을 구덩이에 밀어 넣어 버립니다.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의 레오디나스가 "This is Spartaaaaaaa~!" 라고 외치며 희안한 복장을 입은 페르시아 사절이라고 지정된 인물을 끝도 보이지 않는 이상한 구덩이에 발로 쳐 넣기전에 이미 아테네에서는 "This is Athennnnnnns~~!" 라며 외교 사절을 사형 대기소인 구덩이에 던져 넣은 것입니다.
이런 아테네와 페르시아의 경쟁은 지중해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아테네의 욕심과 제국 건설을 위한 페르시아의 욕심이 맞붙은 결과로 아테네는 페르시아 지배하의 아나톨리아 지방에 대한 반란을 지원하기도 했고 페르시아의 도시 사르디스를 점령하고는 신전에 불을 질러 파괴하기도 했죠. 그리고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직접 아테네로 진격하기도 했죠. (유명한 마라톤 전투가 이때 벌어집니다) 이런 밀고 당기는 경쟁관계 속에서 다시 힘을 기른 페르시아가 크세르크세스 왕의 지휘하에 그리스에 대한 침공을 개시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대규모 침공은 당연히 상대국에 전달되기 마련이고 아테네는 즉시 대응 계획을 수립합니다. 기원전 480년 코린트에 모인 동맹국들은 아네테는 해군력에 전력을 다하여 해상을 방어하고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 사실상 스파르타의 - 육군으로 페르시아의 육군을 상대한다. 그리고 페르시아는 그리스 북부를 통해 아테네로 진격할 것이 예상되니 동맹국은 그리스 북부에 방위 기지를 설치하며 페르시아의 내부사정으로 장기전의 수행은 힘든 만큼 최대한 시간을 끌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라는 기본 계획을 수립합니다.
이후 몇가지 삽질을 하며 육군의 진형이 완성되었고 해군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지휘하에 아르테미시움에 기지를 만듭니다. 이곳은 테르모필라이에 근접하여 페르시아 군대가 바다를 통해 육군의 후미를 고립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했으며 여차할 경우 넓고 피신하기 좋은 지형과 식수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을 통과하지 않고는 전략적 요충지인 에우보이아섬을 점령할 수 없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당시 주력 함선이었던 삼단노선들은 사실상 오랜 항해가 불가능 했습니다. 식량이나 다른 물자를 여유있게 수송할 공간도 없었고 선체도 약해 파고가 높은 곳이라면 당장 배가 파손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당시 항해는 항상 해안가가 보이는 곳을 따라 이동했으며 저녁에는 배를 육지에 대어놓고 휴식을 취했죠. 그러다 보니 적의 해상 요충지를 장기간 외부에서 봉쇄하는 등의 전략은 수행할 수 없었고 해상권 장악은 오로지 적의 함대를 괴멸시켜 떠다니는 것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따라서 전략적 가치가 높은 항구를 선점하여 주둔하면서 필요시 출격해 나가 적을 섬멸하는 것은 상식이자 가장 효과높은 전법이었죠.
페르시아라고 이런 상황을 모를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압도적인 전력차이를 가지고 있는데다 시간은 페르시아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로서는 페르시아의 진격을 시간을 들여 방어하고 출혈을 유도하면 페르시아 내부 사정으로 승리를 거둘 수도 있었지만 페르시아는 빠른 시간에 압도적 병력으로 적을 공략하고 전략적 목적을 달성해야 헀죠.

하지만 페르시아는 육군국이었지 해군국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죠. 당시 페르시아나 아테네나 약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함선의 전력은 비슷했습니다. 아테네 쪽이 약간 무겁고 기동성 있는 함선을 보유하고 있었고 페르시아는 좀 가볍지만 빠른 속도를 얻을 수 있는 함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쪽 모두 주력은 삼단 노선이었죠.
하지만 아테네는 그리스인들로 구성되어 의사 소통에 무리가 없고 방어적 입장에서 영토 수호에 대한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으며 그리스인들은 핏속에 소금물이 흐른다고 할만큼 바다에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는 페르시아의 선박이 없이 모두 동맹국이나 징발된 선박들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페니키아인, 이집트인, 그리스인, 키프로스인등이 짬뽕 되었고 이렇게 다른 종족들이 섞이다 보니 원활한 의사 소통이 불가능 하고 또 그것으로 인해 유기적 작전 수행은 물건너 간것과 다름 없었죠.
(그리스인이라고 다 아테네 편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당시 지중해에 약 1500개 정도 되었습니다만 아테네의 편을 들어 동맹의 편에 선 도시국가는 33개 뿐이었고 나머지는 중립이나 페르시아의 편을 들고 있었죠. 심지어 당시 전장이던 테르모필라이와 아테네 사이에 있던 도시국가 테베는 페르시아의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480년 8월... 양측의 대군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긴장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4대 해전의 서막이 사직됩니다. 일단 가장 오래된 전투인 살라미스 해전에 대해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살라미스 해전은 지중해의 아테네 연합과 동방의 페르시아간에 있었던 해전을 말합니다. 이 해전으로 아테네는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리스 세계에 패권을 쥘 수 있었으며, 페르시아는 자국 내부의 붕괴를 불러오는 시발이 되었죠. - 엄밀히 말하면 페르시아의 붕괴조짐은 그 이전부터 있었습니다만 이런 식의 이야기는 내용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이후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
아테네와 페르시아는 이미 전부터 오랜 경쟁관계였습니다. 사실 이 살라미스 해전은 아테네의 약속 위반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기원전 508년 아테네가 페르시아에 물과 흙을 보내 종속하겠다는 서약을 하고서는 실제로는 이행하지 않은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독촉하는 페르시아 사절을 구덩이에 밀어 넣어 버립니다.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의 레오디나스가 "This is Spartaaaaaaa~!" 라고 외치며 희안한 복장을 입은 페르시아 사절이라고 지정된 인물을 끝도 보이지 않는 이상한 구덩이에 발로 쳐 넣기전에 이미 아테네에서는 "This is Athennnnnnns~~!" 라며 외교 사절을 사형 대기소인 구덩이에 던져 넣은 것입니다.
이런 아테네와 페르시아의 경쟁은 지중해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아테네의 욕심과 제국 건설을 위한 페르시아의 욕심이 맞붙은 결과로 아테네는 페르시아 지배하의 아나톨리아 지방에 대한 반란을 지원하기도 했고 페르시아의 도시 사르디스를 점령하고는 신전에 불을 질러 파괴하기도 했죠. 그리고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직접 아테네로 진격하기도 했죠. (유명한 마라톤 전투가 이때 벌어집니다) 이런 밀고 당기는 경쟁관계 속에서 다시 힘을 기른 페르시아가 크세르크세스 왕의 지휘하에 그리스에 대한 침공을 개시한 것이었습니다.

<좀 그리스인 같이 생기지 않은 그리스 해군 지휘관 테미스토클레스>
이런 대규모 침공은 당연히 상대국에 전달되기 마련이고 아테네는 즉시 대응 계획을 수립합니다. 기원전 480년 코린트에 모인 동맹국들은 아네테는 해군력에 전력을 다하여 해상을 방어하고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 사실상 스파르타의 - 육군으로 페르시아의 육군을 상대한다. 그리고 페르시아는 그리스 북부를 통해 아테네로 진격할 것이 예상되니 동맹국은 그리스 북부에 방위 기지를 설치하며 페르시아의 내부사정으로 장기전의 수행은 힘든 만큼 최대한 시간을 끌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라는 기본 계획을 수립합니다.
이후 몇가지 삽질을 하며 육군의 진형이 완성되었고 해군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지휘하에 아르테미시움에 기지를 만듭니다. 이곳은 테르모필라이에 근접하여 페르시아 군대가 바다를 통해 육군의 후미를 고립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했으며 여차할 경우 넓고 피신하기 좋은 지형과 식수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을 통과하지 않고는 전략적 요충지인 에우보이아섬을 점령할 수 없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당시 주력 함선이었던 삼단노선들은 사실상 오랜 항해가 불가능 했습니다. 식량이나 다른 물자를 여유있게 수송할 공간도 없었고 선체도 약해 파고가 높은 곳이라면 당장 배가 파손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당시 항해는 항상 해안가가 보이는 곳을 따라 이동했으며 저녁에는 배를 육지에 대어놓고 휴식을 취했죠. 그러다 보니 적의 해상 요충지를 장기간 외부에서 봉쇄하는 등의 전략은 수행할 수 없었고 해상권 장악은 오로지 적의 함대를 괴멸시켜 떠다니는 것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따라서 전략적 가치가 높은 항구를 선점하여 주둔하면서 필요시 출격해 나가 적을 섬멸하는 것은 상식이자 가장 효과높은 전법이었죠.
페르시아라고 이런 상황을 모를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압도적인 전력차이를 가지고 있는데다 시간은 페르시아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로서는 페르시아의 진격을 시간을 들여 방어하고 출혈을 유도하면 페르시아 내부 사정으로 승리를 거둘 수도 있었지만 페르시아는 빠른 시간에 압도적 병력으로 적을 공략하고 전략적 목적을 달성해야 헀죠.

<아테네 해군이 처음 진지를 구축했던 아르테미시움의 현재 지도>
하지만 페르시아는 육군국이었지 해군국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죠. 당시 페르시아나 아테네나 약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함선의 전력은 비슷했습니다. 아테네 쪽이 약간 무겁고 기동성 있는 함선을 보유하고 있었고 페르시아는 좀 가볍지만 빠른 속도를 얻을 수 있는 함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쪽 모두 주력은 삼단 노선이었죠.
하지만 아테네는 그리스인들로 구성되어 의사 소통에 무리가 없고 방어적 입장에서 영토 수호에 대한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으며 그리스인들은 핏속에 소금물이 흐른다고 할만큼 바다에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는 페르시아의 선박이 없이 모두 동맹국이나 징발된 선박들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페니키아인, 이집트인, 그리스인, 키프로스인등이 짬뽕 되었고 이렇게 다른 종족들이 섞이다 보니 원활한 의사 소통이 불가능 하고 또 그것으로 인해 유기적 작전 수행은 물건너 간것과 다름 없었죠.
(그리스인이라고 다 아테네 편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당시 지중해에 약 1500개 정도 되었습니다만 아테네의 편을 들어 동맹의 편에 선 도시국가는 33개 뿐이었고 나머지는 중립이나 페르시아의 편을 들고 있었죠. 심지어 당시 전장이던 테르모필라이와 아테네 사이에 있던 도시국가 테베는 페르시아의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480년 8월... 양측의 대군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긴장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To Be Continued



덧글
낭만여객 2007/08/29 11:31 # 답글
To Be Continued 이거 긴장되는군요 ㅋㅋ
파파울프 2007/08/29 11:48 # 답글
낭만여객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더 긴장됩니다. ^^
고어핀드 2007/08/29 12:05 # 답글
This is Athennnnnnns~~!ㅋㅋㅋㅋ
결국 파파울프님이 먼저 시작하셨네요. 전 9월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D
파파울프 2007/08/29 12:08 # 답글
고어핀드님/ 이건 프롤로그고 본편은 시간이 좀 걸릴겁니다. 아무래도 이미지 구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본가에서 자료서적들을 가져와야 할 것 같거든요?예를들어 그리스 함대의 돌파전술 등을 이야기 하려면 이미지 없이 말로만 해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서군시언 2007/08/29 13:02 # 답글
와 이거 기대됩니다~^^.
파파울프 2007/08/29 14:11 # 답글
서군시언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조금 기대를 낮춰 주세요 ^^
IWBJ™ 2007/08/29 21:47 # 답글
Athennnnnnns~~!의 발음은 어떻게 하는 겁니..(쿨럭;)
파파울프 2007/08/30 08:28 # 답글
IWBJ™님/ 단어가 그래서 좀 적기가 그러더군요 뭐 대충이나마 해보자면 아테에에에에에에에에네~ 정도 될까요? ^^;;
朴下史湯 2007/08/30 21:13 # 답글
에이디인~~~~~~~스!!!
파파울프 2007/08/31 02:21 # 답글
朴下史湯님/ 음... 그리 발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