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해전 - 살라미스 해전 (3) 역 사

그 남자.. 그 여자의 사....(그만해!) 가 아니라 오늘은 아테네의 사정 입니다.

먼저 이 싸움의 발단이 된 사건을 알아야 겠죠? 사실 이 사건은 살라미스 해전이 있기 10여년 전의 일 때문입니다. 전회에서 페르시아가 짧은 시간에 넓은 영토를 가지고 제국으로 군림하게 된 것은 아실 것입니다. 헌데 이렇게 넓어지다 보니 그리스계는 두려움을 느꼈나 봐요. 사실 페르시아는 아테네니 스파르타니 하는 나라들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더랬죠. 아래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건 뭐...

당시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비교하면 저 정도 차이가 있었던 거에요. - 그나마 제가 파키스탄 쪽은 뺐는데 사실은 좀 더 들어가도 상관 없어요 위로도 우즈베키스탄까지 올라가도 되는 곳이 페르시아 였어요. 그리스 쪽도 마케도니아를 포함한 윗 부분은 페르시아 땅이었어요. - 거기다 그리스의 도시들은 그야말로 도시국가들. 페르시아는 왕정인 거대 제국. 이건 뭐 상대가 될 이유가 없었죠.

이런 상황에서 기원전 499년 이오니아에 반란이 일어납니다. 이오니아 지방은 그리스 계열의 인종이 살고 있는 곳인데 페르시아의 영역에 속했죠. 뭐랄까... 속국이라 할까요? 통치는 참주들이 하는데 영향력은 페르시아에 속한다 할까요? 아무튼 이런 상황이었는데 아리스타고라스라는 참주 한명이 욕심을 품고 페르시아에 원조를 요청해 근처 닉소스를 침공했습니다. 헌데 이 아리타고라스가 못나서 그런지 아니면 닉소스 주민들이 워낙 강건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쟁은 지지부지 해졌고 페르시아는 빨리 원조에 댓가를 지불하라고 몰아댔죠.

이런 상황에 빠지자 아리타고라스는 머리를 굴렸지요 바로 "민주주의"를 위하여 페르시아의 압제를 물리치자~! 고 외친겁니다. - 그렇게 되면 페르시아에게 줄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고 국내의 여론도 돌리게 되니 딴에는 머리를 굴린겁니다 - 여러가지로 페르시아에 불만을 품던 이오니아 지방은 이 선동에 호응해 참주를 몰아내고 민주정을 수립하게 되죠. (물론 이 아리타고라스는 무려 민주정의 지도자! 로 다시 군림합니다)

헌데 당연히 이렇게 되면 페르시아가 가만히 있지 않겠죠? 거기다 더 못난짓은 이런 선동에 냉정한 머리가 사라졌는지 그대로 독립을 외치고는 협상에 들어가는게 아니라 페르시아쪽으로 치고 들어가 사르디스를 점령하고 무려 신전을 불태우는 만행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하지만 애초에 상대가 되질 않는 싸움이었죠. 페르시아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니 일어선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오니아 지방의 반란 도시들은 초토화 되고 사람들은 노예로 끌려가게 되죠. 결국 이오니아 지방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도망치게 되었고 반란의 원인이었던 아리타고라스도 불가리아 쪽으로 도망갔다가 그곳에서 죽게 됩니다.

자... 이제 문제는 이오니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오니아의 반란때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했던 그리스 지역의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침공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페르시아로서는 별 시덥잖은 것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거기다 어디 듣도보도 못한 지역에서 지원이랍시고 나왔으니 참 기가 찼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제국의 위용(?)을 보여야 했고, 이오니아의 반란 수습이 끝나자 마자 바로 그리스 본토에 대한 원정을 시작합니다.

헌데 첫 시도는 폭풍을 만나 실패하고 - 이놈의 폭풍은 페르시아에 항상 불리하게 작용하는 군요 - 두번째 시도는 기원전 490년에 있었는데 이때는 페르시아에서 아테네쪽으로 향하는 거의 대부분의 도시들이 박살이 났어요.

그러다가 천운이 따라줘서 아테네에서 38km 떨어진 마라톤 평원에서 마침 기병을 이용하지 못하게 된 페르시아 군을 상대로 승리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까지 마라톤 경기로 화자될 만큼 그리스의 구원이나 마찬가지인 전쟁이었습니다만... 솔직히 페르시아로서는 그저 그런 패배중에 하나일 뿐이었죠. 하지만 어쨌거나 전쟁에서 패했고 당시 왕이었던 다리우스는 전쟁으로 높아진 세금과 공출 그리고 이로인한 불만의 증대를 수습하기 위해 군을 물리게 됩니다.

페르시아로서도 맛을 보여줄 만큼 보여줬다고 생각했고 현명한 다리우스로서는 쓸때없이 변방의 그리스나 치는 것 보다는 내정을 안정화 시키는 쪽이 더 이익이라 판단했던 것입니다. (마라톤 전투로 마치 페르시아를 재기 불능으로 만든 것 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리스가 죽다 살아난 전투일 뿐 페르시아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고는 보기 힘들죠) 결국 원인을 따져보면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찝적 거렸던 탓에 있다는 거죠. (거기다 아테네는 속국이 되겠단 약속을 무시하기까지 했죠) 그리고 이것은 시간이 흘러 10년 뒤 바로 크세르크세스가 다시 쳐들어 오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자... 그럼 크세르크세스가 전쟁을 벌이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아테네는 어찌 했을까요? 처음에 이야기 했듯 그리스의 도시국가 들은 페르시아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리고 스파르타를 맹주로 삼아 육군은 스파르타가 지휘하고 아테네는 바다를 막기로 했죠. 사실 바다든 육지든 모든 지휘권은 스파르타에 있었습니다만 바다에서는 형식적으로 존재했고 실제는 아테네의 데미스토클레스가 해군을 지휘했습니다.

아테네가 처음부터 해군국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스파르타와 마찬가지로 아테네도 중장보병을 위주로 하는 육군국이었죠. 헌데 데미스토클레스가 집권한 이후 그는 약 삼년간 아테네를 그리스 최강의 해군국으로 변모시켰습니다. 특히나 그리스인들은 바다를 가까이 했기 때문에 그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죠. 하지만 후일 플라톤은 이때문에 데미스토클레스를 아테네 육군을 오합지졸로 만든 원흉으로 욕했지요. 

뭐 어쨌거나 기원전 480년. 밀려오는 페르시아 군대를 막기 위해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도시국가 연합들은 육군은 테르모필라이에 그리고 해군은 아르테미시움에 집결합니다. 이때 아테네 연합 해군은 삼단노선 271척, 오십노선 9척으로 이후 53척이 증파되어 총 333척 이었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 군은 1,207척 이었죠. (조선의 어떤 해전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결국 페르시아군을 막기 위해서는 지형의 도움이 필요했고 아르테미시움은 테르모필라이에 6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좁은 해협으로 여차하면 테르모필라이에 지원을 할 수 있고 동시에 이곳을 막고 있음으로 해서 페르시아 해군이 해협을 통과해 테르모필라이에 있는 육군의 배후를 차단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딱 적당한 요충지였습니다. (하지만 항구로서는 별로...)

위의 지도를 보시면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두 붉은 원은 아래쪽이 테르모필라이 윗쪽이 아르테미시움이죠. 이 두곳은 페르시아 군의 진격로를 차단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요충이었습니다. 또한 여차하면 테르모필라이로 지원을 가거나 뒤로 후퇴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죠. 또 이 아르테미시움을 보시면 페르시아 군이 동쪽으로 우회하여 내려가든 서쪽으로 들어가 좁은 만을 통과하든 어디서나 요격을 나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보통 에우보이아 섬의 동쪽의 넓은 바다를 면한 쪽은 험준하고 상륙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고 대부분의 해로는 서쪽의 완만한 지역에 해당했습니다.

만약 서쪽을 통과한다면 아르테미시움 이외에도 그리스 본토와 에우보이아섬 사이의 아주 좁은 에우리포스라는 해협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곳은 폭이 36 미터에 불과해 대규모 적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로서는 대단히 유용했습니다. 만약 동쪽을 택한다면 적은 상당기간 상륙이 힘들고 (알다시피 당시 삼단노선은 저녁이나 식사 시간이면 정박해야 했습니다) 또 태풍의 휘협도 벼텨내야 했죠.

하지만 페르시아도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이 두곳을 막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480년 8월... 첫번째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To Be Continued




덧글

  • 슈타인호프 2007/09/05 16:31 # 답글

    반란 수십->수습
  • 파파울프 2007/09/05 16:34 # 답글

    슈타인호프님/ 어이쿠... 빨리도 보셨습니다. 막 수정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
  • 갸흥 2007/09/05 18:42 # 답글

    ...세계사를 이렇게 재밌게 가르침을 받았더라면 정말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 개발부장 2007/09/05 20:20 # 답글

    폭풍은 공격측에 불리한 거였을 겁니다 아마^^
  • 파파울프 2007/09/05 21:35 # 답글

    갸흥님/ 우리나라 교과는 지독하게 입시 위주라서 어쩔 수 없죠...

    개발부장님/ 세상 태풍들은 꼭 공격하는 쪽에 불리하더군요. 몽골이나... 페르시아나... (허기사 공격하는 쪽은 쳐박혀 버티는 쪽 하고는 다른 법이니까... 뭐... 글쵸...네...)
  • R쟈쟈 2007/09/06 10:28 # 답글

    333:1207이면 4:1 정도군요^^...

    13:330(500)척보다 압박감이 덜하옵니다^^;;;

    뭐 당시 전투법이야 서로 그나물이 그나물이니... 333:1207도 충분히 천지차이지만요^^...

    꼭 세상 살다보면 아리타고스같은 논두렁 미꾸라지 같은 놈들이 있습니다 에효;
  • 파파울프 2007/09/06 18:44 # 답글

    R쟈쟈님/ 뭐... 13은 다른 비할 거리가 없으니... ^^

  • 파김치 2007/09/07 19:36 # 답글

    어머나, 오늘 교양으로 듣는 전쟁사에서 막 배운 내용이네요. 알고 있는 게 있으면 그만큼 보이니 재밌어요>ㅆ<
  • 파파울프 2007/09/07 20:53 # 답글

    파김치님/ 아닛? 교양으로 전쟁사가 개설되었나요? 전 배우고 싶어도 사학 자체가 개설된 경우가 드물어서 거의 못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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