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해전 - 살라미스 해전 (종결) by 파파울프

살라미스 해전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

살라미스 해전이 그리스와 페르시아간의 전쟁에 중요한 분기점 역할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그것은 후대 사학자의 관점이고 당대 인들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실제로도 그 후 몇년간 싸웠습니다. 그렇다면 이후 살라미스의 주역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스 함대의 지휘관들은 살라미스 해전의 활약상에 따라 무훈상을 수여 하기로 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투표를 실시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스인이라면 이력과 명예가 그 결과에 달려 있었으니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것이고 반대로 패배자에게 투표한 자는 자칫 정치적 줄을 잘못선 결과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투표는 지극히 그리스적인 상황에 빠져 무산되어 버렸습니다. 지휘관들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 투표해서 승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별로 이익이 없는 명예적 수상인 차석상에는 데미스토클레스가 압도적인 표를 얻었죠. - 물론 만장일치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인에게 만장일치를 바라는 것은 모래가 갑자기 시멘트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죠 - 결국 테미스토클레스는 아무런 이익이 없는 영광만 받아야 했고 그의 모국인 아테네에서도 이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차라리 그가 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면 아테네인들은 마지 못해서라도 그의 동상을 세우고 그를 찬양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후에도 전투는 벌어졌고 최종 결과는 육지에서의 승리로 결정 지어졌습니다. 결국 그는 해전에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어 냈지만 "전쟁을 끝내지는 않았다" 라는 것이 되는거죠. 이후 그리스 함대의 지휘관들은 각자 자신의 고국으로 되돌아 갔고 테미스토클레스도 아테네로 돌아가게 되었죠.

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의 명예욕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아테네 보다는 스파르타가 더 좋지 않을까 해서 스파르타로 가게 되었습니다. 스파르타로서도 테미스토클레스는 계륵과 같았습니다. 영웅 대접을 해주자니 에우리비아데스의 위신이 깎이고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그의 공훈을 간과할 수도 없었죠. 그래서 스파르타인들은 테미스토클레스와 에우리비아데스 양쪽에게 올리브 화환을 하나씩 주고 에우리비아데스는 "용맹"을 테미스토클레스는 "지략"을 상징한다고 선언했죠. 결국 누구 한사람의 공훈으로 전쟁이 승리로 끝난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스파르타가 가지고 있는 가장 멋진 전차를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수여한 다음 그가 떠날때 300명의 정예병을 수행원으로 붙여 국경까지 호위해 주었죠. 사치를 싫어하는 스파르타로서는 할 수 있는 가장 큰 환대를 유례없이 배푼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이중의 의미가 붙어 있는데 바로 이 300명의 수행원들의 존재였습니다. 바로 테르모필라이에서 전사한 스파르타 병사들의 숫자였죠. 즉 여기에는 "넌 승리자이기는 하지만 너만의 힘으로 승리가 왔던것이 아님을 기억해라" 라는 의미가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테미스토클레스는 그의 지략을 몇번씩 선보이기는 했습니다. 페르시아를 몰아낸 이후 벌어질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도 그의 선견지명은 대단히 큰 효과를 발휘했죠.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해군의 증설을 주장했고 당시 아테네를 이끌던 중산층 중장보병들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버렸죠. 즉 똑똑하기는 하지만 계속 쓰기에는 골치아픈...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후 정치계에서 활동한 테미스토클레스는 기원전 470년경 정치 싸움에 밀려 도편추방으로 아테네에서 쫒겨났고 이후 반역자로 몰려 기원전 464년 자신의 적국이었던 페르시아로 망명하게 되죠, 아이러니 하게도 말입니다. 그는 크세르크세스의 아들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왕에게 자신을 고용해 주기를 요청했고 그는 그를 받아들이게 되죠. 그러나 이후 이집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정하는 도중 사망합니다. 그때가 기원전 459년입니다. (아테네를 공격하라는 말에 음독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말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어찌 되었을까요? 살라미스 패배 이후 일군을 남기고 사르디스로 들어간 크세르크세스는 그곳에서 이후 전쟁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여기서 그의 형제 마시스테스의 아내인 아르타윈테라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이후 수도인 수사로 돌아왔을때 그녀를 손에 넣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으로 인하여 그렇지 않아도 음모가 판치는 페르시아의 궁정에서 또 다른 살인과 모반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그는 부하의 손에 암살되고 맙니다. 그것이 기원전 465년으로 테미스토클레스가 페르시아로 망명하기 바로 1년 전의 일이었죠. 그리고 수순대로 크세르크세스의 아들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왕위에 오릅니다.


아르테미시아 여왕은 이후 어떤 행적이 있었는가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녀가 지키려 했던 할리카르나소스 왕조는 한 세대 이후까지도 건재했던 것을 보면 그녀의 치세는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무런 외적 요인이 없는 상황이었다면 모르겠지만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군대가 470년과 460년 사이 아나톨리아 해안을 휩쓸고 다니며 페르시아군과 그들을 도운 지배자들을 다 몰아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녀는 그런 위협들을 모두 물리치고 자신의 왕조를 유지해 나갔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녀 이외의 다른 페르시아 편에 섰던 왕조는 대부분 지배자가 바뀌는 운명을 겪어야 했죠.


그리고 크세르크세스에게 그리스 전쟁을 부추겼고 살라미스 이후 일군을 이끌고 전황을 뒤집어 보려했던 마르도니우스는 479년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패배하고 전사했습니다. 그의 단검 중 하나는 전리품으로 아크로폴리스에 봉납되었고 그리스군은 그 전투에서만 5백 달란트의 전리품을 얻을 수 있었죠. 500달란트는 노동자 3백만명의 일당과 같은 분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지휘자들의 기록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이후 행적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이후의 기록에도 그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잊혀져 갔던 것입니다.


만약 헤로도토스가 이들을 조사하고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더라면 어찌되었을까요? 아마 수천년전에 그리스쪽에서 큰 전쟁이 일어났다 라는 정도만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대 영웅이라 칭송받고, 대 제국을 거느리고, 수십만의 사람들이 이동하고 싸우고 죽어가는 상황이라지만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모두 잊혀져 버리는 것이지요. 어째 좀 무상하기도 합니다.


The End.



 


덧글

  • 이녁 2007/11/04 17:53 # 답글

    오오, 드디어 완결이군요.
  • 낭만여객 2007/11/04 17:54 # 답글

    이정도 분량이면 책한권 챕터로 가도 될듯 합니다 와~
  • SAGA 2007/11/04 17:55 # 답글

    으음, 제가 읽었던 데미스토클레스의 위인전(이라고 말하기 조금 그런......)에선 그가 음독자살했다는 내용이 나오던데...... 그건 사실이 아닌 모양이었군요. 헐......

    살라미스 해전이 끝났으니 다음엔 어떤 내용의 역사 포스팅을 하실지 기대됩니다.
  • 이준님 2007/11/04 17:56 # 답글

    1.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Harry Turtledove의 단편중 하나는 살라미스 해전의 페르시아 승리후 페르시아 역사가가 아테네의 폐허를 방문하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요지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잊혀진 전쟁과 "왕이 없이 다스리는 기이한 정치 체제"에 대한 후세의 의문을 밝히는 스토리죠. -_-;;;;

    3. 플루타르코스의 대비영웅열전에서 "자살설"을 이야기한걸로 압니다. 당시 시대상황을 페르시아의 시각으로 그린 고어비달의 소설 "Creation"에서는 페르시아가 일시적 후퇴를 한걸로 그리죠(화자는 페르시아 전쟁때 무려 중국 --;;;에 가서 공자를 만난걸로 되어 있습니다.) 그의 입을 필리면 테미스토클래스처럼 권력을 노리고 권력에 따라서 군주를 바꾸는 자가 그런 이유로 자살했다는 걸 누가 믿느냐?입니다. -하기야 이 소설에서도 은근히 헤로도투스를 비판하지요
  • 파파울프 2007/11/04 18:09 # 답글

    [이녁님] 예, 이제야 살라미스 하나가 끝났네요. 앞으로 3개나 더 남아 있는데 암담합니다. 앞으로는 조금 축약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낭만여객님] 줄이고 줄였는데도 이렇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줄여 봐야겠습니다. 너무 길다보니 쓰는 쪽도 읽는 쪽도 지쳐 버리네요. ^^

    [SAGA님] 아래 이준님이 잘 알려 주셨네요. 음독 자살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우선 당시 페르시아가 정권이 바뀐지 그다지 오랜 시간이 아니고 또 그리스가 약해 빠진 상태도 아니고 내부적으로 이집트와 그외 다른 지역에서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고 또 그 공략을 위한 육군의 행방도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집트를 쳐라라는 말을 했을리가 없을 것 같거든요.

    물론 알려진 사실과 다른 역사적 기록이 나온다면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리고 살라미스가 끝났으니 다음번에는 칼레 전투가 될 것입니다. ^^

    [이준님] 어라? 플루타코스가 자살설을 처음으로 내어 놓은 것인가요? 전 좀 더 뒤에 나온걸로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 암튼 저도 자살설은 믿지 않습니다. 상황적 요인이 자살로 갈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요. 차라리 권력 투쟁에 밀려 자살하게 되었다라면 또 모를까...

    헌데 중국가서 공자를 만나다니... 그것도 참... 뭐시기 하네요. ^^;
  • blus 2007/11/04 18:10 # 답글

    예전에 읽은 책 중에서 크세르크세스는 항상 곁에 두고 있던 아끼는 하인이 과일바구니 사이에 숨겨온 단검에 암살되었다고 읽었었는데 실제로 그랬을런지는 또 미궁. 역시 소설은 소설이겠죠?=ㄱ=;
    마지막 헤로도토스에 관해서는 역시 영웅을 만드는 건 음유시인과 역사가란 생각도 듭니다.
    완결 축하드립니다. 너무 재밌게 봤어요.;ㅁ;/
  • 들쮜 2007/11/04 19:14 # 답글

    드디어 시리즈가 끝났군요. 그동안 감사히 읽었습니다..
    뭐.. 세상에 망각의 세계로 빠진 역사적 사건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 R쟈쟈 2007/11/04 21:25 # 답글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 파파울프 2007/11/04 21:30 # 답글

    [blus님] 자세한 이야기야 어떤지 모르죠, 크세르크세스의 죽음에도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어요.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이니까요. ^^

    [들쮜님]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에 관련된 사람에의 망각이 참 안타까워요.

    [R쟈쟈님] 읽어 주셔서 고맙죠 ^^
  • 개발부장 2007/11/04 21:38 # 답글

    오오, 그동안 즐거웠던 살라미스 해전이 끝났군요. 역시 역사 속의 대사건들은 남자의 로망(...노망?을 자극합니다.
    아직 세 개나 더 남아있으니 여전히 행복할 따름이네요^^
  • 파파울프 2007/11/04 21:46 # 답글

    [개발부장님] 원래 죽지만 않으면 전쟁이 가장 즐거운 유희라고 하지 않던가요~ ^^ 하지만 저로서는 아직 세 개나 더 남았다는 사실이 약간 한숨이 나옵니다. ^^
  • ZAKURER™ 2007/11/05 01:04 # 답글

    재밌게 연재 읽었고,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론 더욱 늘려 써 주세요 :-D
  • 풍신 2007/11/05 03:26 # 답글

    "민주적 절차로 무훈상"의 결과가 참...재밋군요. 역시 개인의 이익 앞에서 투표란 것은...그리고 똑똑한 사람이 권력의 주류에서 밀려나면 비참하게 되는군요.
  • 파파울프 2007/11/05 12:53 # 답글

    [ZAKURER™님] 늘리라뇨~ 부담이에요 ^^

    [풍신님] 똑똑한 사람이 주류에서 밀렸다기 보다 모난돌이 정에 맞은거죠. 가끔 생각해 보면 예형이나 테미스토클레스나 조금만 더 세상에 대해 알았더라면 저런일을 과연 겪었을까? 란 생각도 듭니다.
  • 백설탕 2007/11/05 18:24 # 답글

    와아, 기나긴 전쟁사... 정말 잘읽었습니다!! 남은 세 개를 기대하겠습니다!!!
  • 파파울프 2007/11/05 21:21 # 답글

    [백설탕님] 이거 은근 부담되는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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