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고대에서 넘어와 이제 중세시대 입니다. 중세 유럽을 바꾼 역사적 해전이라면 칼레를 들 수 있겠죠. 헌데 칼레 해전을 다루기 전에 좀 지루하겠지만 중세시대 종교에 대해 좀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말이죠, 중세 유럽은 정말 복잡해요. 왕가는 죄다 혈연 관계로 이리저리 얽혀 있지, 종교는 지들 나름대로 찌지고 뽂고 난리 떨죠. 해서 어느 하나가 단일한 하나의 사건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정말 드뭅니다.
16세기 유럽은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교황의 권위가 상당히 추락해 있었죠, 왜냐하면 바보들의 행진이나 마찬가지 였던 중세의 기사들이 중동의 선진 문물을 보면서 자신들이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했고 또 카톨릭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교황이 유럽의 안정을 위해 정략적으로 벌인 전쟁이 역설적으로 교황의 권위에 똥칠을 한거죠. 그나마 교회가 정신 차리고 교회 본연의 모습으로 갔다면 모르겠는데 사치는 극에 달했고 교황 레오10세는 성전 올린다고 면죄부를 팔아 먹었죠.
사실 바로 한 200년 전 정도면 이렇게 해도 교황이 "너 파문한다?"라고 하면 벌벌 떨었겠습니다만 당시는 그게 잘 먹혀들어가지 않았더랬죠. 여기저기 불만이 폭발하는 가운데 독일 신학교수이자 수도사인 마틴 루터가 짜증을 팍 냅니다. 1517년 10월 31일에 루터는 96개 조항의 학보...아니 반박문을 써서 교회 높은 곳에 걸어 버리죠. 이 선언은 대단한 파장을 일으켜 불과 2주만에 독일 전역에 퍼지고 4주만에 전 유럽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통 통신의 미비함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갔던 것이었죠. 당연히 교황은 루터를 "띠바! 넌 적그리스도야!" 라며 파문장을 보냈습니다만 루터는 "조까!" 라며 파문장을 공개적으로 불태워 버립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유럽에는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라는 두가지 길의 기독교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는 '항의한느 사람' 이라는 뜻이죠. 한번 이렇게 교황을 엿먹이는 사람이 나오자 스위스에서도 칼뱅이 교황을 엿먹이고 많은 사람들이 교황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이 밀었죠. 이 칼벵의 신념을 따르는 사람들이 청교도들 입니다.
이렇게 전 유럽에 퍼진 종교 개혁의 물결에 영국이라고 그냥 있을리가 없었죠, 헌데 독특하게도 영국은 신학자나 교수가 아니라 왕이 개혁해 버립니다. 그 유명하고 정력 좋은 헨리 8세였죠. 헨리 8세는 형인 아서가 돌연사하자 1509년 18세의 나이로 영국의 왕에 즉위합니다. 헌데 즉위하면서 조건으로 형수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해야 했죠. 뭐 당시 사회를 보면 그다지 특이한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문제는 헨리 8세는 너무 똑똑하고 너무 정력좋고 너무 깡이 좋았다는 겁니다. 젊었으니 뭐...
형수이자 아내인 캐서린은 헨리8세와의 사이에 다섯 아이를 낳았지만 메리 공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산되어 버리죠. 아들이 있어야 후계자가 나오는데 자꾸만 사산되어 버리자 헨리는 이것이 형수와 결혼한 부정 때문에 이렇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거기다 헨리는 캐서린의 시녀였던 앤 블린과 푹 빠져 있었죠. - 당시 시녀는 하녀가 아닙니다, 여왕이나 왕비의 시녀는 귀족입니다 - 앤 블린은 헨리가 자신에게 푹 빠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합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으면 절대 내 몸을 가질 수 없어요!" 라고 말합니다.
젊은 헨리는 몸이 빠짝 달아올라서는 교황에게 편지를 씁니다.
"교황성하, 사실 내가 형수하고 결혼한건 신하들이 시켜서 그런거고 그나마 이게 참 부정스러운 거라는거 아실겁니다. 성경에도 레위기 20장 21절에 보면 형제의 아내를 대리고 사는건 추하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나 이혼시켜 줘요"
헌데 교황으로서는 함부로 이혼시킬 수 없었습니다. 캐서린은 아서와 결혼할 당시 너무 어려서 헨리와 결혼할때는 순결한 상태나 마찬가지 였고 또 이 결혼 당시 전임 교황인 율리우스2세가 특면장까지 발행한데다가 캐서린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로스5세의 조카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곤란했죠. 교황이 만약 이혼을 허가한다면 현임 교황은 전임 교황의 권위를 무시하는게 되는데다가 정치적으로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무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헨리는 '수장령'을 발표해 스스로 국가 교회의 수장으로 선포한 뒤, 로마 카톨릭과 결별하게 됩니다, 헌데 교황의 권위가 약해져 교황은 보고도 어쩌지를 못하죠. 암튼 이때문에 영국은 신교파와 카톨릭파로 나뉘어 피를 부르는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후에도 헨리는 자신의 정력을 과시하며 6명의 부인과 결혼하게 됩니다만 - 그 중 두명은 목을 뎅겅~ - 자세한 것은 나중에 헨리 8세의 이야기를 따로 알아 보시고요.
문제는 차라리 완전하게 신교로 넘어 갔다면 또 모르겠는데 헨리 8세의 정력은 여기저기 딸들을 만들어 놓았고 그 딸들은 또 카톨릭과 신교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 콩가루 집안으로 만들어 버린거죠. 거기에다 이 왕가와 저 왕가가 서로 결혼하는 유럽의 상황에서 혈연으로 얽힌 문제까지 더해졌습니다, 헨리 8세 이후 에드워드 6세가 즉위 했는데 일찍 죽고 메리 튜더가 왕위에 올랐는데 메리는 카톨릭이었고 당시 카톨리의 보호자를 자처했던 스페인 왕의 아내였죠. 헌데 메리가 죽고나서 왕위에 오른 것은 엘리자베스 여왕인데 이 여왕은 또 신교도 였던 것입니다. 종교대립 + 가족간의 대립 + 정치적 대립 + 자존심 싸움 이게 모두 합쳐진 것이 칼레의 원인이었죠.
아무튼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오른 후 영국 내부에 신교적 영향력이 커진데다가 영국이 외교적으로 신교도 이면서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네델란드의 독립을 지원하자 도저히 못 참고 빡돌아 버린 펠리페 2세가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파견해 영국을 정벌하려 했고 칼레에서 박살나 유럽의 정치 구조를 확 뒤바꿔 버린 전쟁이 바로 칼레 해전인 것입니다.
16세기 유럽은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교황의 권위가 상당히 추락해 있었죠, 왜냐하면 바보들의 행진이나 마찬가지 였던 중세의 기사들이 중동의 선진 문물을 보면서 자신들이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했고 또 카톨릭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교황이 유럽의 안정을 위해 정략적으로 벌인 전쟁이 역설적으로 교황의 권위에 똥칠을 한거죠. 그나마 교회가 정신 차리고 교회 본연의 모습으로 갔다면 모르겠는데 사치는 극에 달했고 교황 레오10세는 성전 올린다고 면죄부를 팔아 먹었죠.사실 바로 한 200년 전 정도면 이렇게 해도 교황이 "너 파문한다?"라고 하면 벌벌 떨었겠습니다만 당시는 그게 잘 먹혀들어가지 않았더랬죠. 여기저기 불만이 폭발하는 가운데 독일 신학교수이자 수도사인 마틴 루터가 짜증을 팍 냅니다. 1517년 10월 31일에 루터는 96개 조항의 학보...아니 반박문을 써서 교회 높은 곳에 걸어 버리죠. 이 선언은 대단한 파장을 일으켜 불과 2주만에 독일 전역에 퍼지고 4주만에 전 유럽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통 통신의 미비함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갔던 것이었죠. 당연히 교황은 루터를 "띠바! 넌 적그리스도야!" 라며 파문장을 보냈습니다만 루터는 "조까!" 라며 파문장을 공개적으로 불태워 버립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유럽에는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라는 두가지 길의 기독교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는 '항의한느 사람' 이라는 뜻이죠. 한번 이렇게 교황을 엿먹이는 사람이 나오자 스위스에서도 칼뱅이 교황을 엿먹이고 많은 사람들이 교황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이 밀었죠. 이 칼벵의 신념을 따르는 사람들이 청교도들 입니다.
이렇게 전 유럽에 퍼진 종교 개혁의 물결에 영국이라고 그냥 있을리가 없었죠, 헌데 독특하게도 영국은 신학자나 교수가 아니라 왕이 개혁해 버립니다. 그 유명하고 정력 좋은 헨리 8세였죠. 헨리 8세는 형인 아서가 돌연사하자 1509년 18세의 나이로 영국의 왕에 즉위합니다. 헌데 즉위하면서 조건으로 형수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해야 했죠. 뭐 당시 사회를 보면 그다지 특이한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문제는 헨리 8세는 너무 똑똑하고 너무 정력좋고 너무 깡이 좋았다는 겁니다. 젊었으니 뭐...
형수이자 아내인 캐서린은 헨리8세와의 사이에 다섯 아이를 낳았지만 메리 공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산되어 버리죠. 아들이 있어야 후계자가 나오는데 자꾸만 사산되어 버리자 헨리는 이것이 형수와 결혼한 부정 때문에 이렇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거기다 헨리는 캐서린의 시녀였던 앤 블린과 푹 빠져 있었죠. - 당시 시녀는 하녀가 아닙니다, 여왕이나 왕비의 시녀는 귀족입니다 - 앤 블린은 헨리가 자신에게 푹 빠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합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으면 절대 내 몸을 가질 수 없어요!" 라고 말합니다.젊은 헨리는 몸이 빠짝 달아올라서는 교황에게 편지를 씁니다.
"교황성하, 사실 내가 형수하고 결혼한건 신하들이 시켜서 그런거고 그나마 이게 참 부정스러운 거라는거 아실겁니다. 성경에도 레위기 20장 21절에 보면 형제의 아내를 대리고 사는건 추하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나 이혼시켜 줘요"
헌데 교황으로서는 함부로 이혼시킬 수 없었습니다. 캐서린은 아서와 결혼할 당시 너무 어려서 헨리와 결혼할때는 순결한 상태나 마찬가지 였고 또 이 결혼 당시 전임 교황인 율리우스2세가 특면장까지 발행한데다가 캐서린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로스5세의 조카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곤란했죠. 교황이 만약 이혼을 허가한다면 현임 교황은 전임 교황의 권위를 무시하는게 되는데다가 정치적으로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무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헨리는 '수장령'을 발표해 스스로 국가 교회의 수장으로 선포한 뒤, 로마 카톨릭과 결별하게 됩니다, 헌데 교황의 권위가 약해져 교황은 보고도 어쩌지를 못하죠. 암튼 이때문에 영국은 신교파와 카톨릭파로 나뉘어 피를 부르는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후에도 헨리는 자신의 정력을 과시하며 6명의 부인과 결혼하게 됩니다만 - 그 중 두명은 목을 뎅겅~ - 자세한 것은 나중에 헨리 8세의 이야기를 따로 알아 보시고요.
문제는 차라리 완전하게 신교로 넘어 갔다면 또 모르겠는데 헨리 8세의 정력은 여기저기 딸들을 만들어 놓았고 그 딸들은 또 카톨릭과 신교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 콩가루 집안으로 만들어 버린거죠. 거기에다 이 왕가와 저 왕가가 서로 결혼하는 유럽의 상황에서 혈연으로 얽힌 문제까지 더해졌습니다, 헨리 8세 이후 에드워드 6세가 즉위 했는데 일찍 죽고 메리 튜더가 왕위에 올랐는데 메리는 카톨릭이었고 당시 카톨리의 보호자를 자처했던 스페인 왕의 아내였죠. 헌데 메리가 죽고나서 왕위에 오른 것은 엘리자베스 여왕인데 이 여왕은 또 신교도 였던 것입니다. 종교대립 + 가족간의 대립 + 정치적 대립 + 자존심 싸움 이게 모두 합쳐진 것이 칼레의 원인이었죠.
아무튼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오른 후 영국 내부에 신교적 영향력이 커진데다가 영국이 외교적으로 신교도 이면서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네델란드의 독립을 지원하자 도저히 못 참고 빡돌아 버린 펠리페 2세가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파견해 영국을 정벌하려 했고 칼레에서 박살나 유럽의 정치 구조를 확 뒤바꿔 버린 전쟁이 바로 칼레 해전인 것입니다.
To Be Continued



덧글
행인1 2007/11/14 15:55 # 답글
사실 당대의 국교회는 가톨릭도 아니고 신교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였죠. (요즘도 그렇지만)
서군시언 2007/11/14 16:00 # 답글
저는 이런 것 읽는것이 재미있습니다만.^^앤 볼레인은 그렇게 결혼했다가 목 잘려 죽었으니 참 새옹지마군요.
칼레 해전 기대하겠습니다~!
을파소 2007/11/14 16:06 # 답글
영화 골든 에이지의 개봉시기와 비슷하게 연재되겠네요. 같이 보면 재미있겠습니다.
슈타인호프 2007/11/14 16:06 # 답글
오타핸리 => 헨리(Henry)
튜터 => 튜더(Tudor)
그리고...레오 10세 줄리오 데 메디치 교황께서도 나름 멋진 사나이십니다. 아주아주 유쾌한 전형적인 르네상스인 교화잉셨죠~ㅎㅎ
위장효과 2007/11/14 16:11 # 답글
아르마다 캐관광의 애사, 칼레 해전이군요. 기대합니다^^그러고보니, 케이트 블랑쉐가 엘리자베스 여왕역을 맡은 영화 "골든 에이지"가 이번 달에 개봉하네요. 지난 1998년에 세자르 카푸르 감독(이름 희한하고 출신이 인도라서 기억)이 만든 영화 "엘리자베스"에서도 주연인 처녀여왕 베스역을 맡아서 지금까지의 엘리자베스 역중 제일 나았다는(전 근데 베티 데이비스가 더 좋던디...^^;;;) 평을 들었는데 이번에 그 속편격인 골든 에이지가 드뎌 개봉하네요. 배역도 지난번하고 같고요.
파파울프 2007/11/14 16:19 # 답글
[행인1님] 예, 틀림없이 거의 대부분의 형식은 카톨리인데 로마 교황편은 아니고 뭐랄까...아! "같기도" 같습니다. ^^ 물론 핸리 8세 당시에는 카톨릭에 가까운 국교였습니다만 그래도 이후 엘리자베스를 넘어가면서는 프로테스탄트에 가까운 국교가 되었죠.[서군시언님] 뭐, 당시 귀족들은 목 잘려 죽는게 죽음으로서는 영광이었다고 합디다 ^^ 나름 허영을 누렸겠으니 딴에 할말은 없겠죠.
[을파소님] 골든 에이지요? 뭔 영화인지 궁금하군요. 사극종류는 달려가서 볼건데 ^^
[슈타인호프님] 수정 하겠습니다. ^^; 뭐 레오 10세가 막장은 아니었죠 나름대로 문화 예술을 진흥시킨데다가 로마에 10년의 안정을 가져 왔으니 말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사람들이 바라는 교황은 경건한 교황이지 예술가 교황은 아니었으니 할 수 없죠 ^^
[위장효과님] 이번 달 개봉이라고요? 음... 돈이... 이번에 DVD 라이터를 사버렸는데... 볼 수 있을라나 모르겠네요. 아무튼 기대는 좀 살짝 접어 주세요 ^^;;;
SAGA 2007/11/14 16:40 # 답글
오타뽁고 -> 볶고
이부분은 예전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배우면서 엄청나게 축약된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칼레 해전이 뭔가 하고 계속 궁금했었는데 그게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관광당한 해전을 말하는 거였군요. 헐, 기대됩니다.
파파울프 2007/11/14 16:53 # 답글
[SAGA님] 일부러 그렇게 한거에요... 뽁! 자를 강조한다고요 ^^ 헷갈리려나요...음... 수정해 버려야 하나... 아무튼 칼레도 다 이야기 하려면 꽤나 걸릴테니 기다려 주세요.
더카니지 2007/11/14 17:07 # 답글
영국 국교회는 카톨릭과 비슷하다고 듣긴 들었습니다만. 흐음.어쨌거나 헨리 8세의 욕심이 영국을 바꿨군요. 정말 대단.
파파울프 2007/11/14 20:18 # 답글
[더카니지님] 확실히 저때는 국왕의 의지가 국가를 바꿀 수 있음이 잘 드러납니다. ^^
책벌레 2007/11/14 20:35 # 답글
개신교도 가톨릭도 아닌 애매모호한게 아니라 중용입니다. 메리 여왕의 개신교 박해등의 극단적인 종교갈등때문에 엘리자베스1세때 개신교와 가톨릭 양 극단을 피한 중용(Via Media)노선의 종교정책을 실시한 것이죠. 덕분에 영국의 종교갈등은 해소되었고, 지금도 중용은 우리 성공회의 주요 특징이 되었죠.
파파울프 2007/11/14 20:38 # 답글
[책벌레님] 어읏~ 책벌레님 그건 뒤에 엘리자베스 여왕 나올때 이야기할 건데 미리니름 하시면 어쩝니까~ ^^; 아직까지는 헨리8세와 에드워드6세 시절의 카톨릭적 국교입니다아~
比良坂初音 2007/11/14 22:05 # 답글
헨리8세가 좀 재밌는 인간이긴 하죠(.....)
홍차도둑 2007/11/15 00:14 # 답글
가히 세인트 세이야의 그 카도 카쯔마사의 모델일지도...
파파울프 2007/11/15 00:43 # 답글
[하츠네님] 좀이 아니라 많이 재미있죠 ^^[홍차도둑님] 아? 그건 또 뭘까나요?
홍차도둑 2007/11/15 00:54 # 답글
네...108명의 성전사가 쌈박질하는 만화인데...아버지가 한명...그 이름이 카도 카쯔마사인데...성전사의 연령차라 몇살 안나서...한 블로그에서 계산한 결과 2-3년간에 108명의 아이를 낳기위한 작업은 얼마나 대단한 역작인가를 분석한적이...쿨럭
파파울프 2007/11/15 11:43 # 답글
[홍차도둑님] 108 성전사의 아버지가 한명이라... 뭐... 정력이 출중한 사나이께서 수많은 여성들을 찌르고 다녔다면 못할 것은 없.... (퍽! 퍽!)
잡탕 2007/11/15 12:37 # 답글
아 그 해전이 칼레해전이라고 하는군요.. 어릴적 먼나라이웃나라에서 보고 오오 영국 꽤 하내라는 생각이 들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근데 남자로써 핸리8세 남자답..
파파울프 2007/11/15 14:17 # 답글
[잡탕님] 남자답죠...암요... 정치적으로는 절대 올바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남자라는 동물 하나만을 두고 봤을때는 로망이죠... ^^;;;
Madian 2007/11/15 18:18 # 삭제 답글
대개 황제로는 독일식으로 표기해서 카를 5세, 부업(?)인 스페인 왕일 때 카를로스 1세로 표기해주곤 하니 카를 5세로 표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살라미스 해전도 재미있게 보았는데 칼레 해전도 기대하겠습니다. :)
파파울프 2007/11/15 20:27 # 답글
[Madian님] 사실 명칭때문에 조금씩 골치 아픈 부분들이 꽤나 나오더라고요. 여기저기 혈연에다가 저기서 부를때 다르고 여기서 부를때 다르니 말이죠. 날때 이름으로 써라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또 책마다 달리 표현해서 원... 차라리 원어를 적는 쪽이 훨씬 나아 보일떄도 있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