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해전 - 칼레 해전 (7) 역 사

5월 30일 리스본의 항구를 출발한 아르마다가 영국 함대의 눈에 띈 것은 거의 7월이 넘어선 날이었습니다. 플리머스에 있던 영국 함대는 척후의 소식을 듣고 즉시 풍상측의 위치로 올라가 아르마다를 마주 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느낀 것은 거대한 절망 이었습니다. 무려 130여척에 이르는 - 그나마 본례의 계획보다 반은 줄어든 - 함대는 그 이전 영국이 접해본 적 없는 엄청난 규모였던 것입니다. 무적함대는 콘월의 해안에 거대한 초승달 형태의 진형을 갖추고 양 날개에 신형 갈레온선을 그리고 중앙의 뒤쪽으로 전투에 취약한 보급선을 위치시키고 있었죠.

이 엄청난 규모의 함대에 영국은 전면전을 감행할 용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신형 함선을 배치하고 노련한 선원이 있다고 한들 대응할 수 있는 물량의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영국 함대는 직접적인 접전 대신 게릴라식 치고 빠지기 전술을 선택했고 함대를 4개의 진형으로 나눠 일단 초승달 진형의 양측 날개쪽을 공격해 적이 소모되기를 바라는 작전을 이용했습니다.

영국이 이렇게 소극적 게릴라 전술을 이용하자 스페인 함대에서는 영국 함대에게 조롱의 언사를 퍼부었습니다. "젓가슴에 쌓인 도련님들" 이라던가 "루터파 이교도들" 등과 같은 말이었죠. 하지만 아무리 욕을 먹는다고 해도 홧김에 마주 붙었다가는 백전 필패가 분명 했습니다. 영국으로서는 장거리에서 유리한 속도와 기동을 살려 포격전을 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가장 필요로 했던 반면 스페인은 자신들의 장기인 백병전으로 이끌기 위해 적이 발끈하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페인 함대의 주 목적은 파르마군의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영국 해협을 도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격하게 싸울 이유조차 없었죠.

무적함대가 콘월의 해안에 등장한 다음날은 바람이 서남서에서 서북서로 바뀌었고 이는 영국에게 유리한 바람이었지만 영국은 두터운 스페인 함대의 전열을 뚫지 못하고 지지 부진한 공격만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무려 5일 동안 계속 이어지죠. 하지만 기회는 영국에게 행운을 던졌습니다.

당시 스페인함은 영국함에 비해 성능적으로 떨어지는데다가 전투에 이용해야 할 갈레온선을 육상전을 위한 보급품을 적재한 탓에 배가 육중해져 더욱 더 기동성이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존의 스페인의 전투 교리상 근접전 유도 후 유럽 최강의 보병을 적함에 투입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는 방식이라면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범선의 포격전을 위주로 하는 이 칼레 해전에서는 치명적인 결함에 속하는 것이었죠.

7월 25일 드레이크는 오랜 선원 생활과 감각을 살려 한동안 바람과 조수가 변함 없음을 파악하고 스페인 함대를 영국 해협의 북쪽으로 강하게 밀어 붙이기 시작합니다. 전투 자체는 큰 피해가 없었지만 영국의 공격을 무시할 정도는 아닌데다가 이렇게 됨으로 해서 스페인 함대는 정박할 마땅한 항구를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아르마다의 이동경로 : 영국 해협 이후로 계속 북쪽으로 밀려 대륙쪽에 항구를 찾을 수가 없었죠>
<참고자료 : 색칠된 부분은 당시 펠리페 2세의 땅 (참고 : 이 지도는 그 부친 시절의 통치지역입니다. 펠리페2세때 유럽 내에서의 이 영토가 큰 변화가 없었기에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오해가 있을까 하여 첨언합니다>

7월 27일 스페인 함대는 일단 본래 파르마군과 합류하기로 했던 칼레에 닻을 내리기는 했습니다만 정작 정박할 항구는 찾지 못하고 바다에 둥실 떠있는 형편이었죠, 이는 위에 말한 영국 함대의 의도적 압박과 이미 미리 엘리자베스가 손을 써둔 요충지 선점 때문이었습니다. 거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파르마의 주력군은 아직 항구에서 출발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펠리페2세가 생각하지 못한 전략적 미스였죠.

파르마의 병력을 수송하기 위한 거룻배는 돛이 없는 작은 배로 날씨의 영향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헌데 때마침 플랑드르 해안은 별로 날씨가 좋지 못해서 다수 병력이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많았죠. 거기다 이 해안은 수심이 매우 얕아서 아르마다 함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바다 쪽으로 거의 2km 정도까지 노를 저어 나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복수에 눈이 벌게진 네델란드의 신교도 너벅선(수심이 낮은 바다에서 사용 가능한 평저선)이 아르마다와 해안선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며 "오기만 하면 다 잡아다가 포를 떠버린다"며 침을 흘리고 있었죠. 거기다 당시 군사 연락이라도 말이나 사람등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각 군단간의 연락마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아르마다가 출발하고 콘월에 등장할 때 까지 파르마 병력은 네델란드 내륙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이들이 해안으로 이동하는데만 6일이나 걸렸죠. 파르마공이 아르마다의 접근 보고를 받았을 때는 7월 27일로 급하게 이동해도 주력이 모두 해안으로 이동하려면 8월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러니 아르마다는 정박도 못하고 병력도 수송 못하고 그저 바다에 닻을 내리고 정박하고 있는 수 밖에 없었죠. 뻔히 눈에 네델란드의 너벅선이 왔다 갔다 함에도 손도 댈 수 없었고 임무 때문에 바다쪽에 영국 함대와 교전하기도 뭐한 이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7월 28일. 칼레의 바람은 남서풍으로 영국 함대에게 가장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 졌습니다. 이 바람의 영향으로  스페인군은 영국 쪽으로 항진할 수 조차 없었지요. 그러나 영국 쪽에서 보면 완벽한 풍상 위치로 전투의 주도권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아침 드레이크는 바람의 방향을 확인하고 신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는 이제 다시 스페인의 함대가 이곳에 들어올 수 없도록 시간과 목숨을 달라고 기원을 했고 그의 기원이 들어 주었는지 그날 하루 내내 남서풍은 쉼없이 불어왔습니다. 몽골의 침입 때 분 폭풍이 카미카제라 불리우듯 영국인들은 이 바람을 프로테스탄트의 바람이라 불렀지요. 이후 가도를 마친 드레이크는 선실에서 나와 선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싸워 볼 시간이다"

To Be Continued



덧글

  • 운다인시언 2008/02/17 21:51 # 답글

    진인사대천명이 생각나네요.
  • 파파울프 2008/02/17 21:55 # 답글

    운다인시언님/ 그렇죠. 하지만 일단 사람의 일을 먼저 완벽하게 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 SAGA 2008/02/17 22:11 # 답글

    하늘이 영국에 손을 들어줬군요. 여러가지로 스페인이 전쟁준비를 부족하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에 비해 영국은 전쟁 준비를 철저하게 했으니 영국이 이기는 게 당연하군요.
  • 을파소 2008/02/17 23:21 # 답글

    우수한 선박, 장거리 화포 무기, 백병전에 능한 상대, 숫적으로 열세라는 건 동아시아에서 있었던 모전쟁을 생각나게 하네요.
  • 책벌레 2008/02/18 00:01 # 답글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파파울프님의 재미있는 설명덕분에 전쟁사에 관심있는 분들은 재미있게 잘 읽었을 겁니다
    추신; protestant의 바람이 아니라, Church of England(성공회를 영어로 표기하는 단어들은 여럿 있는데, 영국 성공회라는 뜻으로 말할 때는 Church of England, 그냥 성공회/聖公會라는 뜻으로 말할 때는 Anglican Church, 미국 성공회라는 뜻으로 말할때는 Episcopal Church라고 합니다.그럼 한국성공회는?Anglican Church of Korea라고 하죠.한국에 있는 자치적 성공회 관구교회라는 뜻입니다.)라고 했을 것 같은데요..^^영국 종교개혁으로 로마교회에서 분리된 교회는 영국 성공회이지, 개신교가 아니었죠.
  • 어부 2008/02/18 09:16 # 답글

    잘 보았습니다.
    글 내용을 보니 Garrett Mattingly의 '아르마다'를 아직 읽지 못하신 모양인데, 짧은 리뷰는 http://fischer.egloos.com/2955764 여기를 참고하셔요. 이 책 진짜 흥미진진한데 아쉽게도 제가 마지막으로 검색했을 때는 인터넷 서점에서 다 절판이었습니다.
  • 파파울프 2008/02/18 12:39 # 답글

    SAGA님/ 스페인이 전쟁 준비를 부족하게 한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준비했고 자신들의 스타일에 맞췃죠. 강대국이 준비한 전쟁 준비로선 충실할 만큼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시작이 애매하고 잘못된 정보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을파소님/ 아시아의 모 전쟁과는 별로 상관 없습니다.... 라고 말하면... ^^

    책벌레님/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고민이 있었어요. 말씀하신대로 이미 저 시절은 성공회가 확립되던 시기인데 문제는 해당 서적에는 성공회가 아니라 신교라고만 되어 있거든요 (프로테스탄트) 그게 타국인들이라면 모르겠는데 저자가 영국인인 경우라서 말입니다.

    영국 성공회를 프로테스탄트로 분류해 말한건지 아니면 저 당시 성공회의 구분을 따로 하지 않았는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원서에 나온 대로 프로테스탄트로 적었지요.

    어부님/ 재미있는 책 소개라서 즐겁게 찾아가 봤습니다만... 절판된 책이면 소용 없잖아요 ^^; 원서를 찾아보면 있을라나 모르겠네요.
  • 홍차도둑 2008/02/18 17:08 # 답글

    잉글랜드뿐이 아니라 네덜란드 신교도들하고도 같이 싸웠으므로(주 전력은 아니었을지언정) 크게 묶어서 취급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작은 의견 내 보고 갑니다 ^^
  • 파파울프 2008/02/18 21:25 # 답글

    홍차도둑님/ 그래서 그런건지... 아직까지 영어가 짧아서 자세한 것을 모르겠어요 ^^; 그렇다고 한국어 책이 잘 나온 것도 아니고...
  • 한교 2008/02/19 10:11 # 답글

    진짜.!! 파파울프님 캐감동입니다..ㅜㅜ
  • 어부 2008/02/19 15:26 # 답글

    진짜 몇백 페이지 되는 양을 한번에 다 읽을 정도로 재미있습니다(은근히 약 올리는 못된 어부 ^^). 미국에서는 대학생 필독서 중 하나라네요.
    헌책방이나 다른 방식으로 구해 보셔요. 정말 재미있어요.
  • 어부 2008/02/19 15:27 # 답글

    참, 원서는 문장이 길고 배에 관계된 전문 용어들에 익숙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 읽기 쉽지는 않다고 번역자가 그러더군요.
  • 파파울프 2008/02/19 15:51 # 답글

    한교님/ 아니 무슨 감동 까지... ^^;

    어부님/ 그렇지 않아도 이 동네 헌책방에는 살아 있을까 해서 찾아 봤습니다만 없네요. 아무래도 요즘에는 지방의 오프라인 헌책방은 많이 죽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제가 이쪽 동네를 잘 몰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요.

    글고 배에 대한 용어는 별로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문장이 긴것은 좀 멈칫 하게 되네요 ^^
  • 홍차도둑 2008/02/20 00:55 # 답글

    어부님/이게 웃기는게 말씀하신 경우도 있습니다. 전문용어들에 익숙하지 않아서 번역이 엉망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데이비드 칸의 '코드브레이커'의 경우 그 두꺼운 양에서 수학적,암호학적인 번역은 훌륭하지만 그 근간이 되는 역사 이야기들은 번역 엉망이더라구요...-ㅅ-

    한때 출판물에서 재벌번역 해 준적이 있는데, 그때 번역 보면서 한숨 팍팍 쉬었습니다. 전문용어야 그렇다 하더라도 국어실력의 의심되더군요,..

    그런 부분에 대한 번역 문화는 늘 아쉽습니다...
  • 어부 2008/02/20 13:26 # 답글

    홍차도둑님/ 우리 나라가 번역대국이라고 하더라도 '고래의 왕자' 호 등의 황당한 번역은 아직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게 번역 시스팀 때문일 텐데, 대부분 초벌 번역가들이 잽싸게 번역을 해 준 후 공식 번역자가 다시 훑어보고 교정하는 방식이라 초벌 번역가들이 놓치고 공식 번역자까지 간과하는 경우 그냥 OzTL 되는 겁니다. 실제 종종 그럴 수 있거든요.
    고래의 왕자에 대해서는 http://en.wikipedia.org/wiki/HMS_Prince_of_Wales_%2853%29 를 보시길.

    파파울프님/ 역자의 말을 인용할게요. "오래 전에 쓰인 책이기 때문에 (1959년) 지금과는 다른 문법체계, 때로는 한 페이지를 넘기는 긴 문장들.... "
    이거 보고 원서 사 보려는 생각을 집어치웠습니다. ㅠ.ㅠ
  • 파파울프 2008/02/20 15:02 # 답글

    어부님/ 크흐흐흐..." 다른 문법체계"라... 아예 때려 치우라는 말이 되겠네요 ^^ 거기다 한 페이지를 넘어가는 긴 문장이라니... 무슨 근세 낭만주의 문학도 아니고...
  • 自重自愛 2008/02/20 16:50 # 답글

    참고자료로 쓰신 지도를 보니 위쪽 왼편에 In Europe at the Medication of Charles V(카를 5세. 펠리페 2세의 부친) 라고 적혀 있네요. 펠리페 2세가 아닌 카를 5세 치하의 합스부르크 영토 같은데, 수정하시는 것이 어떨지?
  • 파파울프 2008/02/20 17:06 # 답글

    自重自愛님/ 펠리페2세때 물려받은 땅이 거의 변동이 없어서 그대로 썼습니다만 혼돈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되어 첨언을 붙였습니다. ^^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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