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드레이크는 7월 28일 스페인군을 확실하게 밀어 내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 했습니다. 바람도 딱 적당하게 남서풍으로 불어와 주었기 때문에 풍상의 위치를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었고 따라서 전투의 주도권은 영국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군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우선 숫적으로 워낙에 강하게 굳히기를 시도하고 있었고 스페인 무적함대 아르마다는 본래의 목적이 영국 함선들과의 교전이 아니라 네델란드에 주둔 중인 파르마군의 호송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흔들릴 이유가 없었죠.당시 스페인의 무적함대의 숫자는 갈레온 20척, 무장상선 44척, 수송선 23척, 보조선 35척, 갈레아스 4척 이었습니다. 그간의 전투로 손상된 배는 있을 지언정 침몰한 배가 없었으니 좁은 영불 해협을 꽉꽉 매꾸는 이 아르마다는 그 자체로도 위협이었습니다. 이야기를 조금 밖으로 돌려서 1571년경 스페인 갤리선의 가격은 3500 에스쿠도 우리 돈으로 약 2억 2천~3천 만원 정도 하는 가격이었습니다. (출처 : 역갤블로그 회계사님 정리자료) 그리고 일반 갈래온의 가격이 대략 100만 달러를 넘는 수준으로 10억 가까운 가격이었습니다.
배의 외장 이나 신형 기술의 사용 그리고 무장상태등을 고려했을 때 배의 가격은 갈레온 기준으로 최소 10억에서 30억까지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요. 허니 스페인이 동원한 무적함대 갈레온 20척을 구형함이라 생각해도 한 척당 10억 가량, 당장 갈레온만 해도 200억 가량이고 무장상선의 경우 본격적 전투함인 갈레온 보다는 무장도가 약하기는 하나 당시 무장상선의 경우 대부분 전투 능력이 일반 군함과 별로 다를 바 없었고 함의 성능 또한 별로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이 또한 상당 가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무장상선 44척이라면 약 400억 정도 였습니다. (브릭이나 바락선을 기준) 거기에 갈레아스의 경우도 실제로 가레온과 거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갈레온 가격으로 넣어도 상관 없습니다. 따라서 거의 1000억 넘는 규모의 전쟁 예산이 들인 함대였죠. 물론 여기에는 파르마 공의 정예 육군이나 승조원 85,000명과 전투원 19,000명의 값은 계산에 넣지도 않았습니다. 당시는 산업 사회 이전이기 때문에 실제 체감 비용은 이보다 훨씬 높았겠지요.
사실 이 규모도 처음 계획 요구한 함대의 반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신대륙과 많은 유럽 지역의 군주였던 펠리페2세의 자본력이 어느 정도 인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얼마전의 레판토 해전당시 스페인이 소모한 비용은 700억 가량) 반면에 당시 영국은 비록 이전부터 해군력에 신경써 왔다고 하지만 그저 그런 변방의 한 국가였을 뿐이었죠.

당시로서 비교하기 힘든 이 거대한 함대는 그 자체로서도 요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외각에서 영국함대의 포가 불을 뿜었으나 단단하게 뭉친 스페인 함대는 쉽게 깨어지지 않는 상대였습니다. 결국 드레이크는 이 초승달 진형의 아르마다를 깨기 위해 적벽의 주유처럼 화공을 생각하게 됩니다.
7월 28일 자정 칼레에서 좀 더 위쪽까지 올라간 그라블린 지역에서 수송선 8척에 가연성 물질을 올려두고 불을 붙여 스페인 함대의 진형 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스페인이 이렇게 흘러 오는 함선을 보지 못할리 없었습니다만 이미 그 이전에 스페인 함대에 이 배들에는 상당한 양의 폭약이 실려 있다는 소문을 퍼뜨려 놓았기 때문에 스페인 선원들은 당황하여 화공을 피하기 위해 배끼리 연결되어 있던 밧줄을 자르고 회피 기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이 당시 유럽 세계에서 공식적인 첩보 조직을 이루고 있던 국가는 영국이 유일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시대에 만들어진 이 첩보조직은 이후 세계를 정복하는데 대단한 영향을 미쳤지요. 007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된 것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비싼 화약을 뻔히 보이는 화공에 쓸 여력은 영국에게 없었죠. 한마디로 그냥 페이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겁먹은 스페인 함대는 이미 단단했던 진형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었고 7월 29일 아침에는 이 진형을 다시 복구하기 위해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 함대의 주력 함포는 켈버린이나 데미 켈버린 포 였는데 이 포는 비교적 가벼운 포탄을 사용해서 장거리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었죠. 반대로 스페인의 함포는 무거운 중구경의 캐논이나 케로네이드 포를 사용했기 때문에 근거리에서 적을 무력하게 하고 갈고리로 바로 접전으로 들어갈때는 유리했지만 함대간 포격전에는 소용이 없었습니다. 적함에 날아가기 전에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었죠. 그나마 포 자체의 숫자도 영국함에 비해 훨씬 적었습니다. 이는 스페인의 함대 전술이 예전의 레판토에 머물고 있었다는 증명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전투에서 영국은 스페인 함대를 좀 더 북쪽으로 영국 해안에 가깝도록 밀어 올렸고 그 과정에서 외곽을 두르고 있던 함선 11척을 침몰시킬 수 있었죠. 스페인 함대는 하도 밀리다 보니 자칫 영국 해안에 좌초할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허나 마지막 순간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스페인 함대는 북해 쪽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영국 함대는 북동쪽으로 빠져 버리게 되었죠.
이 전투를 끝으로 사실 상 칼레에서의 해전은 끝이 났습니다. 이후 아르마다는 북쪽으로 더 이동하다가 영국 북해 해안에서 암초에 좌초되고 그곳을 빠져 나온 함선들은 폭풍으로 인하여 아일랜드 북서 해안에 다수가 침몰해 버렸습니다. 거기다 드레이크가 한 해 전에 파괴해 버린 보급용 나무통 때문에 새로만든 나무통들은 그 접합력이 약해 식량과 식수를 상하게 만들었고 그 때문에 다수의 선원들이 괴혈병이나 각기병등에 걸리고 말았죠.

그러나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펠리페 2세의 자본력은 너무나도 거대했고 이후 엘리자베스의 치세가 끝나는 때까지 무려 15년간 이어졌죠. 육상에서는 네델란드와 프랑스에서 전쟁이 계속 이어졌고 영국의 스페인 함대에 대한 해적질은 더욱 더 극성스럽게 변했습니다. 칼레만큼 대규모 함선이 동원된 해전은 없었지만 드레이크는 이후에 포르투칼 원정(실패) 등의 해전에 계속해서 참가 했었죠. 그러다가 1596년 서인도 제도에서 열병에 걸려 포르토벨로 근해에서 수장됩니다. 그의 명성에 비해 그의 인생은 그다지 순탄한 편이 아니었죠. 그는 두 번이나 결혼했으나 자식을 얻지 못했고 말년의 원정마저 실패했으니 말입니다.
한편 펠리페 2세는 막대한 자본력으로 이후 전쟁을 계속해 나갔으나 칼레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최초로 서류 결제에 의한 시스템적 통치 구조를 만들었고 아버지때 얻은 빚을 청산하기 위해 애썼고 레판토 이후로 유럽 세계에서 가장 넓고 부유한 제국을 구축했지만 전쟁은 그 부를 순식간에 갉아 먹었고 결국 1596년 네번째 국가파산 선고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즈음해서 3년간 스페인과 유럽 지역에는 페스트 마저 창궐하죠. 스페인에 전성기를 가져온 펠리페2세는 1598년 그가 암으로 사망 할 때 스페인과 함께 사그라 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유럽의 강대한 제국 스페인을 칼레에서 이겨내고 영국의 국교와 주권을 지킴과 동시에 유럽 각국에 영국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시대에 유럽의 강국으로 떠오른 것이었죠. 그들은 이 승리로 인해 끊임없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600년 설립한 동인도회사는 이후 제국주의 시대의 첨병으로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고 북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녀의 네셔널리즘이 극대화 된 발언으로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 라는 말은 너무나 유명하죠.그러나 마냥 평안하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내부적으로 많은 내란과 혼란을 이겨 내야 했습니다. 특히 그녀의 총신이었던 에식스 백작의 반란은 그녀를 죽기 전까지 우울증에 시달려야만 했죠. 결국 1603년 3월 24일 그녀는 7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도 그녀에게 쉴것을 요구하는 신하들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 하는 것이 좋다는 왕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며 국가를 위해 애를 썼습니다.
칼레 전투는 유럽의 역사를 바꾸고 영국이 세계 제국이 되는 계기를 마련한 전투였습니다. 비록 화려한 전투는 그다지 없었지만 이후의 해전은 레판토 방식의 충각 전술에서 칼레의 포격식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고 (조선에서는 더 일찍부터 포격전이 시작되었습니다만) 대항해 시대로 인한 유럽의 힘이 세계 곳곳에 퍼지는 전환점이 된 것이죠.
- The End
덧붙임 : 켈버린 포와 케로네이드 포의 비교. 윗 그림이 장포신 소구경의 켈버린, 아래 그림이 단포신 중포탄의 케로네이드 포.
<<정정 : Cuchulainn 님의 지적에 따라 다시 알아본 결과 케로네이드는 18세기 이후에 잠깐 나오는 명칭입니다. 따라서 칼레 당시에는 케로네이드라는 포가 사용되지 않았고 아래 그림과 유사하나 포신 쪽이 훨씬 더 크고 둥근 형태의 포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미지는 찾기가 힘들어서 일단 기존 이미지를 삭제하지 않고 둡니다. 참고로만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덧붙임2 : 전에 말씀드린 대로 다음 4대 해전은 트라팔가와 쓰시마 해전으로 넘어갑니다. 한산도 해전은 임진왜란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면 그 때 넣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보통 한산도 해전은 워낙에 많이 알려져 있어서 생략한 것입니다.



덧글
불량먹보 2008/02/23 17:13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__)
파파울프 2008/02/23 17:30 # 답글
불량먹보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토군 2008/02/23 17:40 # 답글
후에에 포격전 항가…(수장당한다)
파파울프 2008/02/23 18:07 # 답글
오토군님/ 어허~ 수장 당하시다뇨~ 저도 포격전을...
개발부장 2008/02/23 18:46 # 답글
호오, 단순히 화공선으로 불질러 끝낸 게 아니라 진형파괴 용도였던 거군요.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R쟈쟈 2008/02/23 18:54 # 답글
에스파냐측 지휘관인 메디나 시도니아에 대한 이야기도 좀더 있었으면 했는데, 살짝 아쉽습니다^^;;;;(에스파냐 지휘관인만큼 좀 많이 궁금해서요^^....)
그나저나, 확실히 전쟁은 나만 잘한다고 이기는게 아닌것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에스파냐의 불운한 요소를 생각하면 말이죠^^)
파파울프 2008/02/23 19:04 # 답글
개발부장님/ 아무래도 화공선이 활약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했거든요. 적벽처럼 강도 아니고 바다에서라면 말이죠 ^^R쟈쟈님/ 시도니아에 대한 이야기는 딱 하나 밖에 없지요 "지고 지고 또 졌는데 이상하게 가장 오래 버텼다" 정도 일까나요? ^^ 패전 지휘관이 별다른 이야기가 있을리도 없고 또 시도니아 스스로가 인정할 만큼 해전에 대해 별로 알는 인물도 아닌지라 이야기 꺼리는 없죠.
운다인시언 2008/02/23 19:46 # 답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하겠습니다. +ㅇ+
SAGA 2008/02/23 20:16 # 답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이 기대되는 군요.
파파울프 2008/02/23 20:19 # 답글
운다인시언님/ 다음편은 트라팔가 입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응? 어쩐지 TV 드라마 광고같은...) ^^;SAGA님/ 다음편은 이제 트라팔가로 넘어 갑니다. 그래도 꽤나 많은 자료가 있는 시대라 좀 편하겠어요 ^^
Cuchulainn 2008/02/27 07:19 # 답글
한가지 눈에 걸리는게 있네요:제가 알기로 캐로네이드는 1750년 이후에 개발된 대포로 알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Carron 이라는 회사에서 Melville 이라는 해군 장교가 착안해서 만들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름이 Carronade인거죠) 캐로네이드 말고도 고안자의 이름을 따서 Melvillade라고도 불리기도 했습니다.
캐로네이드는 18세기 중엽쯤 모습을 드러냈다가 19세기 중반쯤에 이르러서는 자취를 감추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18세기에 캐로네이드가 유행하기 시작한 이유는, 캐논/컬버린류의 대포는 탄속이 매우 높아서 단거리에서 적중할 경우 선체에 큰 구멍을 내지 못하고 그냥 동그란 구멍을 내고 밖으로 나가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고안했던게 탄속을 줄이는거였거든요.
*탄속이 줄어들게 되면서, 일단 선체에 탄환이 박히면 그 충격량이 선체에 고스란히 전해져서 커다란 구멍을 만들게 되는거죠.*
그에 따라온 효과가 반작용이 적다는건데, 사실상 18세기 전열함의 (보통 3급함) 기본무장인 데미캐논급 대포는 그 반동이 엄청나서 아무 갑판에나 함부로 적재할 수 없던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흘수선에서 약간 윗쪽에 배치하는 것이 보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에 반해 캐로네이드는 반동이 적어서 상갑판에 탑재한 후에 조선시대에서 쓰이던 조란탄류의 소형 탄자를 가득 싣고 인마살상용으로 쓰인 기록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기억하기로 캐로네이드는 영국해군만의 무기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이는 전열함의 무장정도 (ordnance)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같은 데미캐논 60문 수준의 3급함이라고 하더라도, 영국 전열함과 프랑스 전열함의 화력이 비슷하지는 않았다는 기록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는, 영국측에서 꼼수를 부려서, "캐로네이드는 데미캐논급의 주포가 아니므로 정규 무장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3급 전열함이라 하더라도 실제 무장은 120여문에 가까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캐로네이드가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는데, 캐로네이드의 유효 사정거리는 대략 120-150미터 정도입니다만, 캐논/데미캐논은 500미터 안의 적함은 상당히 높은 정확도로 적중시킬 수 있습니다. (최대 사정거리는 캐로네이드가 대략 470 미터/캐논류는 1.5킬로미터 정도 될 겁니다.) 따라서, 캐로네이드의 존재를 알게 된 타국의 함대들이 근접전을 시도하지 않게 됨에 따라 점차 사양길에 접어들게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18세기에는 왜 유행했느냐는 이야기가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데, 18세기와 19세기를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 할 수는 없는 이유가 몇가지 있습니다.
우선 18세기 당시 해전의 조류는 단거리에서 Broadside를 최대한 노출시켜서 화력을 극대화하는거였습니다. 18세기 당시에는 대포를 청동으로 제작한데다가 활강포였고, 조함기술도 그렇게 대단한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1.5킬로미터 밖의 적함을 포착해서 조준하고 이를 적중시킨다는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나 흘수선 근처에 위치한 주포의 위치는 파도와 바람에 민감하게 작용하기도 했고요. (예를 들어 적을 조준하는 중에 뒤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주포는 전부 바다를 향해 조준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단거리에서 최대한 화력을 퍼붓는 것이 지상목표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러던게 19세기에 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게, 우선 청동대포에서 강철대포로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먼 거리까지 나름대로 쓸만한 정확도 내에서 포탄을 날려보내는 것이 가능해지고 따라서 이때는 전략의 조류가 먼 거리에서 정확히 적을 타격하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캐로네이드는 시대를 역행하는 물건이 되어버리게 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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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태클 -_-; 과는 논외로 (죄송합니다 ㅠ_ㅠ) 좋은 글 참 잘 읽었습니다. ^^; 글을 참 잘 쓰시네요. (저는 글쓰는데는 젬병이라 -ㅅ-;;;;)
파파울프 2008/02/27 14:51 # 답글
Cuchulainn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못 알고 있던 부분이 있는가 보네요. 다시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후 쓸 트라팔가 해전의 내용이 섞여 들어갔는지도 모르겠어요.칼레 당시의 해전은 포격전 위주의 시대가 아니라서 포의 종류에 따른 구분이 사실 후대와 비교해 그리 복잡한 편이 아니고 또 구분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죠.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Cuchulainn 2008/02/27 22:27 # 답글
헉... 죄송이라뇨... 당치 않습니다 -ㅅ-;;;*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_-;* 사실 그때 포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긴 합니다. 김주식의 서구해전사를 봐도 저 오류는 시정되지 않고 있을 정도니까요.
파파울프 2008/02/27 22:42 # 답글
Cuchulainn님/ 아! 그 책 가지고 계신가요? 저도 꽤나 많이 참고하는 책 중에 하나입니다. 97년 책이라 좀 거슬리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구하는 책 중에 참 충실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해군 사관학교에서는 뭘로 가르치는가 모르곘습니다만 구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꽤 좋으네요.같은 책을 보시는 것 같아서 갑자기 기뻐지는걸요? ^^
Cuchulainn 2008/02/28 02:21 # 삭제 답글
네... 한국에서 나온 해전사 책 중에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아우르는 해전사 책 치고는 그만한게 없더군요. *근대 해전사만 따로 볼 경우는 마한의 책을 주로 참고하는 편입니다.*
파파울프 2008/02/28 16:09 # 답글
Cuchulainn님/ 근대 해전사는 전 주로 해사에서 나온 서양해전사를 봐요 걸프전 해전사까지 개괄적으로 잘 나와 있더군요. 자세한 것은 따로 해당 서적을 구해 보고요. 근대 이후로는 자료가 많으니 책도 좀 있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