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해전 - 트라팔가 해전 (1) 역 사

영국과 프랑스는 1793년 부터 1814년까지 간헐적으로 전쟁을 이었습니다. 신대륙에서 들어온 막대한 부와 그로 인한 새로운 사상의 출현 그리고 남는 파워의 충돌. 이것이 바로 트라팔가 해전의 원인이 된 요소들입니다. 유럽 대륙을 장악하고 패권을 행사 하려는 육상강국 프랑스와 이미 오래전부터 키워온 강력한 해군력의 해상국가 영국. 그리고 그 중심에 나폴레옹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만들어 낸 사건이 바로 트라팔가 해전인 것입니다. 트라팔가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나폴레옹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고 나폴레옹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혁명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유럽의 역사에 있어 세계를 변화시킨 큰 사건을 꼽으라면 1789년의 프랑스 혁명과 1917년의 러시아 혁명입니다. 이 두 사건은 그간의 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새로운 변혁을 가져온 일대 사건이죠. 1789년 파리의 민중들은 바스티유 감옥으로 돌진하여 무기를 탈취했고 이 혁명은 프랑스 전역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인 바스티유 습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슈타인호프님의 블로그에서 바스티유 이야기 시리즈를 보시면 잘 아실 수 있으니 들어가셔서 보세요.)

일이 심각해 지자 루이 16세와 왕비 앙투와네트는 오스트리아로 탈출하려 했지만 중간에 혁명군에게 잡혀 버립니다. 그리고 1793년 1월에 루이 16세가, 그해 10월 16일에는 앙투와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 당합니다. 이 사건은 유럽 군주국들에게 충격을 던져 주었죠. 성난 시민들이 그간 신성 권력의 군주들의 목을 자른 위험 천만한 사건이니까요.

해서 유럽 각국은 프랑스의 혁명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앙투와네트의 친정인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 영국등과 동맹하고 프랑스의 혁명 정부를 무너 뜨리고 다시 군주제로 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이었죠. 그리고 이때 코르시카 출신 (나폴레옹은 요즘으로 따지면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사실 당시 유럽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유럽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전에 칼레 이야기를 할 때 스페인 왕의 통치지역을 보여 드린 적 있었죠?) 전쟁 영웅 나폴레옹이 등장합니다.

그는 프랑스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의 꿈이었던 해군장교나 기병, 보병 장교로 임관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직위는 포병 장교직 뿐이었죠. 평상시라면 귀족의 끈도 없고 프랑스 사람도 아니었던 그가 고위직에 오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허나 유럽의 이런 혼란은 야심많은 젊은이에게는 대단한 기회가 되었죠.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그가 20세 되던해에 일어났습니다.

1791년 자코뱅당에 가입한 나폴레옹은 포병 연대장으로 임관, 2년 후 툴롱 전투에서 영국군을 화려하게 격파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의 이름을 세겨 넣었습니다. 1795년에 로베스피에르의 실각에 따라 군 요직에 있었던 나폴레옹은 2주간 감옥에 들어가야 했지만 위기 상황은 혁명당의 마음에 조급증을 심어 주었고 나폴레옹은 자신의 군사적 명성으로 풀려나자 마자 이탈리아 원정군의 총사령관으로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지휘하던 이탈리아 원정군은 3군이었는데 1군과 2군이 오스트리아군에게 대패했을 때 나폴레옹의 제 3군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장악하죠. 그 유명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그림은 바로 이때의 나폴레옹을 그린 것입니다. 사실 이 인선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죠. 나폴레옹의 군사적 능력은 알려져 있어 그를 사령관이 기용 했지만 이탈리아 원정의 성공은 혁명당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잘되면 좋은거고 못 되도 나폴레옹만 잡아 먹으면 된다는 사정이었죠. 헌데 나폴레옹은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시켜 보인 것입니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 나폴레옹 출판사> ^^;

그리고 1797년에는 오스트리아로 쳐들어가 수도인 빈을 점령해 버립니다. 때문에 오스트리아는 캄포포로미오 조약을 맺고 벨기에와 롬바르디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프랑스에 내어 주어야만 했습니다. 지상에서는 그를 대적해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느낄 정도로 그는 화려한 군사적 재능을 뽐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아직 도전하는 국가가 남아 있었죠, 바로 영국이었습니다. 땅으로 연결된 국가라면 당장 쳐들어가서 승리를 쟁취하고 싶었겠지만 영국은 바다로 둘러쌓여 있었고 그 해군력은 당대 재일로 땅에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해서 나폴레옹은 일단 영국의 무역로를 차단하기 위해 이집트 원정 계획을 수립합니다. 이집트를 장악하고 그 일대를 지배권에 넣으면 영국과 식민지 인도간의 교역로를 차단해 영국에 심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죠.

그리고 이집트로 들어간 나폴레옹은 여기서 또 승리하게 됩니다. 좀 딴 이야기를 하자면 여기서 그 유명한 로제타석을 발견하여 이집트 문자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만 그건 본문과는 상관 없으니 넘어가도록 하죠. ^^

이렇게 하여 나폴레옹은 1802년 아미앵 조약으로 영국과 평화 조약을 맺고 10년에 걸친 전쟁을 끈태게 되고 1806년에는 프러시아까지 무력으로 침공하여 대 프랑스 오스트리아 동맹을 완전히 산산조각 내 버립니다. 혼란의 프랑스에서 유럽 강국들의 연합에 대항해 승리의 승리를 일구면서 유럽 최대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나폴레옹의 능력이라 말해도 무방할 정도였고 프랑스의 국민들은 나폴레옹에 엄청난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1804년 나폴레옹은 드디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 때가 그의 나이 32세의 일이었습니다. 20대 초반에 군문의 한직에 들어와서 28세에 프랑스 제 1 통령의 자리에 오르고 32세에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인물. 그가 바로 나폴레옹인 것이죠. 그가 이집트 원정을 시작할 때 한 말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야망을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죽음은 결국 無라고 할 수 있다. 패배 속에서 영광 없이 사는 것은 매일 매일 죽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동방세계를 정복함으로서 세계 제패를 꿈꾼 알렉산더, 시저, 샤를마뉴와 같은 이들이다."


To Be Continued



덧붙임 : 나폴레옹은 32세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는데 난 뭐냐~ 이제 나폴레옹이 내 롤 모델은 되기 힘들고 대기만성형의 카이사르를 롤 모델로 삼아야 할까나~


덧글

  • 예거마이스터 2008/03/17 15:52 # 답글

    나폴레옹이 한 말이 무척 인상 깊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아.. 저 고양이 7마리 키운답니다. ^^)
  • 운다인시언 2008/03/17 15:54 # 답글

    제노바가 코르시카를 매각하지 않았더라면 나폴레옹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수도 있었겠군요.
  • object 2008/03/17 16:06 # 답글

    고등학교때 역사과목을 젤 싫어했는데 이건 참 재밌군요;;
  • 제갈교 2008/03/17 16:13 # 답글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스타덤에 오른 인물이 선택한 자리가 황제라니, 참 야심이 만만찮은 청년 나폴레옹이었군요. :) (아 32살이면 당시 나이로는 많지 않은건가?)

    마지막 덧붙임을 보니, 파파울프님이 나중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시려나 하는 생각이...-_-;;
  • 오토군 2008/03/17 16:18 # 답글

    나폴레옹의 저 에피소드 볼때마다 참 만감이 교차합니다. 좀 무식하다보니 뭐라고 잘못 정리했다가는 "그건 오해입니다." 라는 소리 들을까봐 차마 정리는 못하겠지만요.-_-;;;
  • 홍차도둑 2008/03/17 16:22 # 답글

    체자르를 모델로 삼으신다면 아직 20여년의 시간이 남으신 건가요? ^^
    대선 출마하시면 한표 드립...
  • SAGA 2008/03/17 16:28 # 답글

    군사적 재능은 천재적이었군요. 유럽 강대국들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다니...... 32살에 활제 자리에 올라도 할 말 없게 만드는 전공입니다. ㅡㅡ;;;
    그리고 32살이면...... 제 나이로부터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미래인데...... 전 지금껏 뭐하고 있던 걸까요. ㅠ.ㅠ
  • 파파울프 2008/03/17 16:34 # 답글

    예거마이스터님/ 아앗? 7마리나 키우고 계셨어요? 으아아... 놀랍네요. 그녀석들 밥값도 만만치 않게 들겠는걸요? ^^

    운다인시언님/ 모르죠, 하지만 저정도 야망과 열정을 가진 인물이라면 그렇더라도 다른 일을 벌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

    object님/ 고등학교 역사 수업은 단순 암기잖아요. 재미없죠 ^^

    제갈교님/ 32세라면 당시 유럽의 불결한 환경 속에서라면 그다지 젊은 나이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빠른 출세라는 것은 확실하죠. 당시 혁명당도 나폴레옹의 젊은 나이를 문제시 했던 일이 몇 번 있으니까요.

    오토군님/ 알프스 넘는 그것 말인가요? ^^ 말하셔도 되요. 사실 이건 트라팔가를 설명하기 위해 간략히 하는 이야기라 일반인들의 인식에 인지가 쉽도록 쓴 것이라서 그런 부분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기는 하거든요. ^^

    홍차도둑님/ 오호~ 한표 획득 했군요. 하지만 전 대통령이 아니라 밀덕후 답게 군권을 장악해서 전차를 몰고 서울로... (응?)

    SAGA님/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하면 슬퍼집니다. 전 이미 황제가 된 나이도 지났는데 다른 롤 모델을 찾고 있잖아요 ^^ 그리고 그의 군사적 재능에 이견은 없죠. 적어도 육상에서 그는 다수의 적을 상대로 승리를 일구어낸 사람이니 말입니다.
  • 오토군 2008/03/17 16:46 # 답글

    파파울프님 - 아뇨, 그것이 아니라 기껏 '탄압'에서 벗어나자고 윗대가리를 말 그대로 대가리를 다 잘라버려놓고 자신들에게 영광을 가져다 줄 자에게는 덜컥 왕관을 씌워주는 민중 말이지요.
    물론 나폴레옹 황제 하의 프랑스가 혁명 전 프랑스보다 낫긴 하겠지만...
  • 比良坂初音 2008/03/17 16:47 # 답글

    나폴레옹은 사실 어떤 병에 걸려있었다 라고도 하더군요
    정신병의 일종인데 엄청난 집중력을 가져다 주지만
    대신 일이 조금만 잘 안풀리거나 악화되면 안절부절 못하고
    어린애 처럼 변한다고 하던가요;;; 거참;;
  • vvin85 2008/03/17 16:54 # 삭제 답글

    나폴레옹의 천재적 재능도 있지만 그 뒷받침이 된 그랑 아메를 만들어낸 대규모 징병제도 중요하죠.
    나폴레옹이 해군장교가 되었더라면 세계공용어가 프랑스어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도 해봅니다.
  • windxellos 2008/03/17 16:55 # 답글

    나폴레옹 생년이 1769년, 브뤼메르 쿠데타가 1799년이고 황제 즉위가 1804년이니
    황제가 된 나이는 35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은 롤 모델로 하셔도 될지도...(도주)
  • 바람처럼 2008/03/17 17:08 # 답글

    이 아저씨가 근대 프랑스의 근간을 다져놓은 인물이라는 것을 볼 때 참으로 나긴 난 사람입니다. 전쟁만 잘했던 인물이 아니지요.
  • 파파울프 2008/03/18 14:53 # 답글

    오토군님/ 아~ 그 이야기셨군요. 사실 민중 욕할것도 아니에요. 당시 민중이 혁명을 일으켰을때 민주주의니 뭐니 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엄연히 먹고 사는 문제로 일으킨 것이니까요. 거기다 그 주축 또한 부르주아지이지 민중이라고 보기는 힘들죠. 결국 황제제로 바뀌는 것도 별로 신기한 일은 아니죠. 지금도 봐요~ 독재재를 그리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츠네님/ 나폴레옹에 관한 것은 하도 이야기가 많아서 말이죠. 성병설도 있고 나폴레옹 키가 작은 건 무슨 기생충 감염설도 있고...

    vvin85님/ 이미 당시 세계 공용어는 프랑스어 였으니 별로 특이한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상당기간 외교 공용어는 프랑스어 였지 않습니까. 현대에 들어와서야 영어로 바뀐거죠. 아무튼 징병제는 전 부수적인 것으로 봐요. 그렇게 치면 포병 병과의 체계화도 나폴레옹에게 유리한 조건이죠. ^^

    windxellos님/ 아! 계산이 틀렸던가요? 다시 알아봐야 겠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

    바람처럼님/ 난사람이죠. 보통 사람들이 어찌 저리 하기 쉬운가요? 그러니 나폴레옹 나폴레옹 하는 것이겠죠. 그래도 나폴레옹 위스키는 별로... ^^;
  • 홍차도둑 2008/03/18 15:32 # 답글

    나폴레옹의 어록을 보면 현대에서 광고 카피라이터 하면 잘 할거 같습니다.
  • 파파울프 2008/03/18 17:21 # 답글

    홍차도둑님/ 나폴레옹의 작품은 아니죠. 지금 나오는 나폴레옹 어록은 당시 카피라이터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니까요 ^^
  • 풍신 2008/03/18 22:45 # 답글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더 나아가 성공한 남자죠. 나폴레옹...

    롤모델 말씀하셨는데...제 나이도 20대 중반이 넘어서 이젠 대부분의 위인을 롤모델로 쓸수가 없더군요.(으음...결국 권율 정도를 롤모델로 삼을수밖에...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님 멋진 증명을 하고도 40세를 넘어 필즈메달은 받지 못했지만, 그에 준하는 그분의 이름이 달린 상을 얻은 어느 수학자라던지...
  • 파파울프 2008/03/19 00:32 # 답글

    풍신님/ 전 일단 뭔가 크고 화려한 걸 좋아하는지라 학자가 롤 모델은 되기 어려워요. ^^ 그런데 필즈상을 못받은 수학자라... 알기는 아는데 이름이 아리까리 하네요. 이것참 암기력이 없어서 큰일입니다.
  • 파김치 2008/03/19 10:28 # 답글

    전쟁사 배울 때도 나폴레옹 부분이 제일 길게 나오더군요; 그 땐 전투를 그다지 자세히 배우지 않아서 잘 실감이 안났는데, 이렇게 보니까, 후와, 엄청 많이 이겼네요. 황제라고 떠받들리는 게 당연할만큼;
  • 파파울프 2008/03/19 14:03 # 답글

    파김치님/ 전근대 유럽에서 나폴레옹을 빼면 역사 자체가 이야기 하기 힘든 부분이 많죠. 어쩌면 나폴레옹은 시대가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거나 그로 인해 이야기가 만들어져 가니 짧을 수가 없겠죠 ^^
  • Cuchulainn 2008/03/23 04:32 # 답글

    1. 아마 제 기억이 맞다면, 공립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게 한 장본인중 하나가 나폴레옹이었을겁니다. 이는 전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정밀한 포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건 삼각함수의 계산입니다. 아시다시피, 저 시절 포병은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목숨걸고 최전방까지 나가서 알짱거리면서 적 위치를 보고하는 척후병과, 후방에서 필요한 계산을 해서 대포를 쏘는 포격병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실테지만 적 부대가 한 자리에 자리잡고 짱박혀서 전투를 수행하진 않습니다. 이동하거든요? 그렇기때문에, 척후병이 적의 위치와 예상 경로, 그리고 이동 속도를 보고하면, 후방에서는 가능한한 빠른 시간 안에 적의 예상경로를 타격할 수 있도록 대포의 Elevation (앙각이라고 하나요?) 과 방향을 정확히 계산해서 포격을 가할 필요가 있었죠. 이를 수행하고자 나폴레옹이 한 일이 공립교육 과정에 고등수학을 포함시킨 일입니다.

    2. 나폴레옹이 포병장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역시나 제가 기억하는게 맞다면) 나폴레옹이 선호하던 전술은 포격을 기반으로 한 종심 기동전이었을겁니다. 저 당시엔 애시당초 기동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고 있지 않던 시기라, 숫적으로 우세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나폴레옹에게 지는 전투가 많았습니다. (아마 나폴레옹 본인도 "기동전이란 이런것이지... 에헴" 이러면서 전술을 구사하지는 않았을거라고 봅니다.)

    3. 나폴레옹이 지닌 치명적인 단점 - 그 단점 때문에 프랑스가 유럽 전역을 밀어버리는 데 실패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만 - 은, 나폴레옹 본인은 매우 출중하지만, 그의 주변에 유능한 사람을 "키우는" 능력이 없다는 정도 일겁니다. (유명한 예로, 조조를 들 수 있죠; 조조는 아시다시피 손무병법을 직접 편집한 인물이기도 하거니와, 시간만 나면 손자병법을 필사해서 장군들에게 주면서 이들의 능력 함양을 위해 고심한 걸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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