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은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불과 2년 전에 국민의 손으로 몰아 낸 황제를 다시 국민의 손으로 앉힌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당시 대중들은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죠. 화려한 별은 그대로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능력을 가졌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황제 나폴레옹의 야망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불태워야 하는 부류의 인간이었죠.
그의 군사적 성공은 이제 더 이상 유럽 대륙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곳 영국만이 유럽에서 나폴레옹에게 적대하고 있었죠. 유럽에서 간헐적으로 전쟁과 평화가 계속 이어졌던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에 대해 나폴레옹은 자신의 손으로 끝을 내기를 바랬습니다. 그 기회는 나폴레옹이 즉위한 즈음해서 영국의 주전 내각이 형성되고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할 때 시작되었죠.
좀 빠른 진행이기는 했습니다만 이미 그는 황제가 되기 전부터 영국을 끝장내기 위한 여러가지 방책들을 생각해 두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승리가 완벽해 지기 위해서는 영국을 굴복 시키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이집트 원정과 같은 방법도 생각한 것이고 말입니다. 영국이 그저 그런 섬나라였다면 나폴레옹이 영국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었습니다만 문제는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강한 해군국이었고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유럽의 목줄을 움켜 쥐고 고사 상태에 빠뜨릴 수 있었다는 것이죠. 알다시피 유럽의 급격한 성장은 신대륙과 동방간의 무역에서 나오는 이익이었고 그것은 바다를 장악한 상태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일단 먼저 해결 해야 할 문제는 영국의 막강한 함대였죠. 프랑스 함대는 영국 함대와 결전을 치르기에는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일단 영국 함대의 주력을 분산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미끼 작전을 수립하죠. 일단 전열함 급의 대형 함선 10여척으로 툴롱 함대를 구성한 다음 영국 함대가 목적지를 이집트 방향으로 착각하도록 동쪽으로 항해한 다음 선회하여 지브롤터로 향한 뒤 카디즈나 리스본 인근에서 로쉬포르의 함대와 합류하여 총 15척 가량의 함대로 증강 시킨 다음 도버 해협 근처의 불로뉴 항에서 미리 준비해둔 130,000의 병력과 2,000 가량의 수송선을 이용해 영국 본토로 진격 시키고 동시에 브레스트 함대로 하여금 2만 가량의 병력을 아일랜드로 상륙시켜 불로뉴 근처의 영국의 눈을 돌리는 양동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맏을 함대는 툴롱의 함대로 생각하고 당시 프랑스 해군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날리고 있던 라뛰시 백작을 제독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헌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 버립니다. 원래 1804년 1월에 출항하여 작전을 수행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해군 장교들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상당히 많이 나와 버렸습니다.
또한 병력 수송을 위한 수송선의 건조에도 차질이 생겨 버렸습니다. 원래 나폴레옹이 제1 통령의 자리에 앉은 1798년 부터 해군의 정비에 힘을 쏱은 나폴레옹이지만 해군은 총만 쥐어주면 되는 육군과는 달리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1월에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문제가 많은지라 계획은 그 해 여름까지 연기 되었죠.
그리고 1804년 여름에 나폴레옹은 영국을 공격하기 위한 명령을 내립니다만 또 문제가 생겨 버렸습니다. 당시 해군 제독이었던 라뛰시 백작이 그해 8월 그만 급사를 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작전은 전체적으로 다시 손봐야만 했죠. 계속해서 문제가 있는 작전을 땜빵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많었던 것입니다. (우측이 급사한 라뛰시 백작)
결국 원래의 계획을 대폭 수정한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이 계획에서는 툴롱의 함대가 주력이 아닌 보조로 사용되고 브레스트의 함대가 주력이 되는 계획이었습니다. 새로운 계획에서는 툴롱의 함대가 서인도 제도로 향하도록 한 다음 서인도 제도까지 따라온 영국 함대를 동시에 출발한 로쉬포르 함대와 합류하여 격파한 뒤 북상하여 페롤에 억류되어 있는 프랑스 함대를 구출하여 도버 해협으로 진출, 그곳에서 영국 함대를 견제하는 동안 브레스트 함대는 아일랜드로 상륙시키고 다시 돌아와 불로뉴의 본대를 영국에 상륙시킨다 라는 계획이었죠. 아군의 집중과 적군의 분산이라는 승리의 공식이었습니다. 문제는 이게 바다라는 점을 뺀다면 말이죠...
그리고 1805년 일단 로쉬포르 5척 함대가 미씨에씨의 지휘를 받아 영국의 감시를 뚫고 몰래 출항하여 2월 20일 서인도 제도의 떼섬에 도착. 그곳에서 영국 상선대를 격파하면서 툴롱에서 출발할 또 다른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트라팔가의 서막이 오른 것이죠.
3월 말에는 빌뇌브 제독의 툴롱의 6척 전열함대가 툴롱을 빠져나와 카디즈로 향합니다. 사실 이전에 몇 번 작전을 진행해 보았으나 선원의 능력부족으로 전투가 불가하다고 판단한 빌뇌브의 판단으로 한 번 되돌아 오고 다른 한 번은 출항 이후 폭풍우를 만나 다시 되돌아 와야 했습니다. 사실 빌뇌브는 이 작전에 마뜩찮은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황제에 대한 충성심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육군에서나 가능한 정밀한 작전을 능력이 떨어지는 해군을 이용해 맞추려고 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통신 장비가 미비한 당시 해군이 이런 작전을 하기에는 영국군이라 할지라도 무리가 많았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빌뇌브는 영국 함대를 속이고 영국 함대의 해상 봉쇄를 뚫고 지브롤터를 통과 했습니다. 1803년 5월 지중해 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된 넬슨은 이때까지도 프랑스 함대의 본래 목적지를 알지 못하고 그들이 지브롤터를 통과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툴롱 함대의 목적지가 이집트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죠.
툴롱 함대가 지브롤터를 통과 했다는 것을 넬슨이 들은 때는 4월 18일 경으로 프랑스 함대의 지브롤터 통과가 일주일이나 지난 시점이었죠. 이 소식을 들은 넬슨은 영국 해군성에 보내는 보고에서 프랑스 함대를 카디즈에서 확인하지 못한다면 서인도 제도의 떼섬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가 옳을 것이라 판단한다는 내용을 보냅니다. 그리고 곧바로 빌뇌브의 함대를 추격하기 위해 배를 띄우고 프랑스 함대의 추적에 들어갑니다.
이제 트라팔가의 서막이 오르고 속고 속이려는 머리 싸움과 남자들 간의 항해술 대결이 펼쳐 지는 것이었습니다.
<참 고>
전열함(Ship of line)이란? : 영국식 분류로는 전투 전용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갈레온급 이상의 배로 최소 2열 이상의 데크를 가지고 50문 이상의 함포를 가진 함을 말합니다. 데크가 하나에 35문 가량의 포를 가진 함선을 프리게이트 함. 18문 가량의 포를 가진 함선을 코르벳 함으로 분류합니다.
서인도 제도란? : 지금의 카리브해 인근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전쟁이 있을 때는 잠잠하지만 전쟁이 끝나거나 하면 상선을 노리는 해적들의 주 무대가 되는 곳이죠.
데크란? : 해적 영화를 보시면 대포를 끌어 내는 문이 보이시죠? 이부분 전부를 데크라 부릅니다. 전열함의 2열 데크 이상이라면 이런 포가가 위와 아래 두줄 이상이라는 의미이죠. 아래는 이미지. (vvin85님의 지적에 따라 오해가 있을까 하여 첨언 합니다. 덱은 갑판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열 데크라고 한다면 갑판이 두개 있는거죠. 층을 이룬다고 생각하시면 쉬우실까요?)
그의 군사적 성공은 이제 더 이상 유럽 대륙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곳 영국만이 유럽에서 나폴레옹에게 적대하고 있었죠. 유럽에서 간헐적으로 전쟁과 평화가 계속 이어졌던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에 대해 나폴레옹은 자신의 손으로 끝을 내기를 바랬습니다. 그 기회는 나폴레옹이 즉위한 즈음해서 영국의 주전 내각이 형성되고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할 때 시작되었죠.

일단 먼저 해결 해야 할 문제는 영국의 막강한 함대였죠. 프랑스 함대는 영국 함대와 결전을 치르기에는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일단 영국 함대의 주력을 분산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미끼 작전을 수립하죠. 일단 전열함 급의 대형 함선 10여척으로 툴롱 함대를 구성한 다음 영국 함대가 목적지를 이집트 방향으로 착각하도록 동쪽으로 항해한 다음 선회하여 지브롤터로 향한 뒤 카디즈나 리스본 인근에서 로쉬포르의 함대와 합류하여 총 15척 가량의 함대로 증강 시킨 다음 도버 해협 근처의 불로뉴 항에서 미리 준비해둔 130,000의 병력과 2,000 가량의 수송선을 이용해 영국 본토로 진격 시키고 동시에 브레스트 함대로 하여금 2만 가량의 병력을 아일랜드로 상륙시켜 불로뉴 근처의 영국의 눈을 돌리는 양동을 계획합니다.그리고 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맏을 함대는 툴롱의 함대로 생각하고 당시 프랑스 해군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날리고 있던 라뛰시 백작을 제독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헌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 버립니다. 원래 1804년 1월에 출항하여 작전을 수행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해군 장교들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상당히 많이 나와 버렸습니다.
또한 병력 수송을 위한 수송선의 건조에도 차질이 생겨 버렸습니다. 원래 나폴레옹이 제1 통령의 자리에 앉은 1798년 부터 해군의 정비에 힘을 쏱은 나폴레옹이지만 해군은 총만 쥐어주면 되는 육군과는 달리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1월에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문제가 많은지라 계획은 그 해 여름까지 연기 되었죠.
그리고 1804년 여름에 나폴레옹은 영국을 공격하기 위한 명령을 내립니다만 또 문제가 생겨 버렸습니다. 당시 해군 제독이었던 라뛰시 백작이 그해 8월 그만 급사를 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작전은 전체적으로 다시 손봐야만 했죠. 계속해서 문제가 있는 작전을 땜빵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많었던 것입니다. (우측이 급사한 라뛰시 백작)결국 원래의 계획을 대폭 수정한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이 계획에서는 툴롱의 함대가 주력이 아닌 보조로 사용되고 브레스트의 함대가 주력이 되는 계획이었습니다. 새로운 계획에서는 툴롱의 함대가 서인도 제도로 향하도록 한 다음 서인도 제도까지 따라온 영국 함대를 동시에 출발한 로쉬포르 함대와 합류하여 격파한 뒤 북상하여 페롤에 억류되어 있는 프랑스 함대를 구출하여 도버 해협으로 진출, 그곳에서 영국 함대를 견제하는 동안 브레스트 함대는 아일랜드로 상륙시키고 다시 돌아와 불로뉴의 본대를 영국에 상륙시킨다 라는 계획이었죠. 아군의 집중과 적군의 분산이라는 승리의 공식이었습니다. 문제는 이게 바다라는 점을 뺀다면 말이죠...
그리고 1805년 일단 로쉬포르 5척 함대가 미씨에씨의 지휘를 받아 영국의 감시를 뚫고 몰래 출항하여 2월 20일 서인도 제도의 떼섬에 도착. 그곳에서 영국 상선대를 격파하면서 툴롱에서 출발할 또 다른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트라팔가의 서막이 오른 것이죠.
3월 말에는 빌뇌브 제독의 툴롱의 6척 전열함대가 툴롱을 빠져나와 카디즈로 향합니다. 사실 이전에 몇 번 작전을 진행해 보았으나 선원의 능력부족으로 전투가 불가하다고 판단한 빌뇌브의 판단으로 한 번 되돌아 오고 다른 한 번은 출항 이후 폭풍우를 만나 다시 되돌아 와야 했습니다. 사실 빌뇌브는 이 작전에 마뜩찮은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황제에 대한 충성심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육군에서나 가능한 정밀한 작전을 능력이 떨어지는 해군을 이용해 맞추려고 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통신 장비가 미비한 당시 해군이 이런 작전을 하기에는 영국군이라 할지라도 무리가 많았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빌뇌브는 영국 함대를 속이고 영국 함대의 해상 봉쇄를 뚫고 지브롤터를 통과 했습니다. 1803년 5월 지중해 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된 넬슨은 이때까지도 프랑스 함대의 본래 목적지를 알지 못하고 그들이 지브롤터를 통과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툴롱 함대의 목적지가 이집트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제 트라팔가의 서막이 오르고 속고 속이려는 머리 싸움과 남자들 간의 항해술 대결이 펼쳐 지는 것이었습니다.
To Be Continued
<참 고>
전열함(Ship of line)이란? : 영국식 분류로는 전투 전용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갈레온급 이상의 배로 최소 2열 이상의 데크를 가지고 50문 이상의 함포를 가진 함을 말합니다. 데크가 하나에 35문 가량의 포를 가진 함선을 프리게이트 함. 18문 가량의 포를 가진 함선을 코르벳 함으로 분류합니다.
서인도 제도란? : 지금의 카리브해 인근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전쟁이 있을 때는 잠잠하지만 전쟁이 끝나거나 하면 상선을 노리는 해적들의 주 무대가 되는 곳이죠.
데크란? : 해적 영화를 보시면 대포를 끌어 내는 문이 보이시죠? 이부분 전부를 데크라 부릅니다. 전열함의 2열 데크 이상이라면 이런 포가가 위와 아래 두줄 이상이라는 의미이죠. 아래는 이미지. (vvin85님의 지적에 따라 오해가 있을까 하여 첨언 합니다. 덱은 갑판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열 데크라고 한다면 갑판이 두개 있는거죠. 층을 이룬다고 생각하시면 쉬우실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