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많이 늦었습니다만 어쨌거나 4대 해전 끝장을 봐야죠. ^^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시간이 자주 앞뒤로 왔다갔다 합니다. 이야기를 위해 어쩔 수 없었으니 날짜를 좀 염두해서 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이제 프랑스 해군의 빌뇌브는 1805년 4월 8일에 지브롤터를 통과하고 4월 9일에는 휘하 스페인 함선 6척과 합류하여 연합 함대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인도 제도의 떼섬의 마르띠니끄 지역으로 무사히 이동하게 되죠. 본래 목적이 영국 해군의 시선을 서인도 제도로 돌림과 동시에 서인도 제도의 영국 식민지를 보호하기 위한 영국 함대를 분할시켜 각개 격파가 수월하도록 하고 또 육군의 영국 상륙을 원활하게 할 목적이었으니 만큼 그냥 조용히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지요.

그래서 빌뇌브는 인근의 영국 식민지에 대한 분탕질을 해야 했습니다. 헌데 문제는 이 빌뇌브가 워낙에 신중하다 보니 아니 워낙에 우유부단 하다보니 시작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 너무나 걱정이 많았습니다. 사실 이것은 빌뇌브의 문제라기 보다 영국의 강력한 해상력과 반대로 너무나 허술한 프랑스 해군을 지휘하는 입장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만 어쨌거나 유능한 지휘관이라면 상황을 잘 해쳐 나갈 것이었습니다만 빌뇌브는 그렇지 못했죠.
그의 고민을 살짝 들춰 보자면 그가 식민지 섬들을 공격하게 되면 영국 함대의 긴장을 불러와 브레스트 항에 대한 봉쇄가 강화되어 강똠의 함대가 바다에 더욱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라는 걱정과 함께 만약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영국 함대의 서인도 제도에 대한 지원이 늦어지게 됨으로서 상륙시 영국 함대가 힘을 그대로 보전하게 되는것이 아닐까 라는 것이라는 이도 저도 못하는 것들이었지요. 거기다 규모가 큰 산타 도밍고 인근 해역에서 영국 함대가 작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더욱 더 고민에 빠졌습니다.
허나 이 함대는 실상 빌뇌브의 함대보다 약체였고 그가 강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허나 그는 지레 겁부터 먹었죠. 결국 그는 좀 만만하게 생긴 조그만 섬인 다이아몬드 록 이라는 섬을 공격하기로 결정합니다. 여기라면 세력이 약해 금방 점령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죠. 그러나 예상외로 저항이 심각해 무려 15일이나 소비하고 나서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성공했고 이에 자극받아 마공 제독과 합류한 다음 안티구아 섬과 바르부다 섬을 공략하기로 마음먹고 6월 4일에 마르티니크를 출항하게 됩니다. 헌데 그가 안티구와 섬에 도착하여 상선을 나포했을 때 그들로 부터 넬슨이 20척의 함대를 이끌고 떼섬의 바르바도스에 도착하였으며 빌뇌브를 추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그는 넬슨의 함대가 서인도 제도로 온 이상 다시 유럽쪽으로 향하여 함대를 더욱 강력히 하여 분산된 영국 함대를 격파하기 위한 타이밍이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6월 9일에 안티구와를 출항하여 유럽 방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한편 넬슨은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넬슨은 처음 빌뇌브의 목적지가 이집트인줄로 알았으나 이후 들어오는 정보에 의해 그들이 이집트가 아닌 지브롤터를 통과했으며 프랑스 함대를 카디즈에서 확인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떼섬으로 향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24일의 항해 끝에 서인도 제도의 바르바도스 섬에 도착하게 되지요. (좌측이 넬슨)
그는 그곳에서 5월 28일에 프랑스 함대가 세인트 루시아를 통과하여 남쪽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도착 다음날 아침 바로 남쪽의 토바고를 향해 출항을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프랑스 함대가 있을리 만무했죠. 그 사이에 프랑스 함대는 고민고민 하다가 만만하 곳을 족치고 자신감을 얻을 즈음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프랑스 함대와 영국 함대는 서로를 비껴나갔던 것입니다. 만약 그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빌뇌브의 함대보다 숫적으로는 밀리나 경험치가 높은 영국 함대가 프랑스 함대를 발라 버렸다면 이후 전개는 아주 달라졌을 수도 있겠고 반대로 프랑스 함대가 압도적으로 영국 함대를 무찔렀다면 트라팔가 없이 바로 프랑스 육군이 영국에 상륙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만약 프랑스 육군이 상륙 했더라면 영국은 프랑스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아무튼 넬슨이 정보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다시 북상하여 정보를 수집한 결과 6월 12일에 안티구아 섬에 도착하여 빌뇌브가 불과 3일 전에 그곳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근 한달의 거리를 3일의 거리로 좁혀버린 것이죠. 그리고 그곳에서 넬슨은 프랑스 함대의 주 목적이 사실 서인도 제도가 아니라 영불 해협임을 확신하게 되고 급히 유럽 방향으로 배를 돌립니다.
한편 빌뇌브는 6월 30일 경 아조네스 군도의 북쪽을 지나 영국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그는 원래 계획대로 영국 함대가 눈치체지 못하게 브레스톨에 있는 아군과 합류하려고 했으나 7월 22일 경 그들의 유럽 진입을 방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던 칼더 제독의 15척 함대에 들키게 됩니다.
양 함대는 날씨 탓에 5시간 가량을 서로 노려 보고 항해하다가 이후 4시간을 교전하게 되는데 이 전투에서 칼더의 함대는 스페인 함선 2척을 격파하고 일시적으로 프랑스 함대가 스페인 페롤항에 입항하는 것을 방해하죠. 허나 빌뇌브 함대의 주 목적은 타 함대와의 합류로 규모를 키우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후에 적극 교전을 회피하면서 7월 28일에 스페인 비고항에 들어가게 됩니다. 비고항은 페롤항 바로 아래에 있는 곳이죠.
좀 다른 이야기로 이 해전에서 칼더는 스페인 함선을 나포하지 못했다는 것과 함대 결전에 실패 했다는 이유로 후일 영국에서 재판에 회부되어 중징계를 당하게 됩니다. 당시 영국의 해군법은 함정별 임무수행보다 전략적 임무수행을 위한 것에 올인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원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에도 처벌 받는 상황이었죠.
아무튼 빌뇌브로서는 함선 2척이 손상 당하기는 했지만 적극적 회피로 본래 임무를 수행의 과정을 무사히 할 수 있었고 이에 나폴레옹에게 승전 보고를 한 뒤 페롤 함대와 합류하기 위해 떠나려 했습니다. 헌데 이때 나폴레옹의 영국 해협으로의 북진 명령서가 내려지는데 빌뇌브는 비고항의 시설이 열악한 탓에 급히 출항하느라 이 명령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페롤항에 함대의 절반이 입항 했을 때 명령 전달로 인해 입항 금지조치가 내려지죠.
그는 일단 함대를 근처 앞 바다에 닻을 내리고 정박하게 하나 나폴레옹의 명령을 어겼다는 사실에 겁을 먹어 8월 13일 급히 페롤항을 출항하게 됩니다. 이떄 그의 함대는 43척 이었죠. 사실 좀 정확한 정보와 제독의 결단이 있었더라면 바로 북진해 영국 상륙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만 그는 출항 뒤에도 카디즈로 갈지 브레스트로 갈지 고민합니다.
거기다 그는 프랑스 함대를 감시하기 위한 영국의 소형 함선대를 그만 영국의 대함대로 착각하는 엄청난 실수를 해 버립니다. 그가 결단을 내려 북쪽으로 바로 향했더라면 뒤이어 합류하게 되는 프랑스의 소함대와 합류하여 상당히 강력한 부대를 구성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교전을 회피하기 위해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버립니다. 그리고 계속 남하하여 결국 8월 20일에 카디즈항에 들어가게 되죠.

허나 결국 이러한 행위는 나폴레옹의 분노만 사게 됩니다. 사실 나폴레옹은 이미 8월 3일에 불로뉴에 도착하여 육군 16만 이상, 말 1만여 두, 상륙정 1300척 가량, 수송선 천척 가량을 준비해 두고 열병식까지 마친 상태였죠. 만약 빌뇌브가 영국 함대를 저지하여 딱 6시간만 벌어 주었더라면 그의 육군은 영국에 상륙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는 영국을 손쉽게 이겼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나폴레옹의 육전 실력은 따를 자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는 "내가 만일 6시간만 이 해협의 주인이 된다면 세계의 재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발언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를 빌뇌브 카디즈에 들어가게 됨으로서 그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어 버렸던 것이지요. 그는 엄청나게 성을 내면서 바로 군대를 동으로 돌려 오스트리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승을 거두고 오스트리아를 장악하게 되죠.
실패를 확실히 인지하고 바로 다음 작전으로 넘어가는 빠른 판단력과 시야는 정말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게 해 주는 일화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넬슨은 7월 19일 지브롤터에 도착했고 상황을 전해 들은 후 8월 18일 영국의 스핏헤드에서 닻을 내리고 휴가를 얻게 됩니다. 그는 1803년 6월 부터 지브롤터에 도착한 7월까지 한번도 상륙하지 않고 함선에서만 생활하고 있었죠. 그의 임무에 대한 성실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아직 트라팔가 전투는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자, 이제 프랑스 해군의 빌뇌브는 1805년 4월 8일에 지브롤터를 통과하고 4월 9일에는 휘하 스페인 함선 6척과 합류하여 연합 함대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인도 제도의 떼섬의 마르띠니끄 지역으로 무사히 이동하게 되죠. 본래 목적이 영국 해군의 시선을 서인도 제도로 돌림과 동시에 서인도 제도의 영국 식민지를 보호하기 위한 영국 함대를 분할시켜 각개 격파가 수월하도록 하고 또 육군의 영국 상륙을 원활하게 할 목적이었으니 만큼 그냥 조용히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지요.

<이사람이 빌뇌브, 어찌보면 불쌍한 사람입지요>
그래서 빌뇌브는 인근의 영국 식민지에 대한 분탕질을 해야 했습니다. 헌데 문제는 이 빌뇌브가 워낙에 신중하다 보니 아니 워낙에 우유부단 하다보니 시작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 너무나 걱정이 많았습니다. 사실 이것은 빌뇌브의 문제라기 보다 영국의 강력한 해상력과 반대로 너무나 허술한 프랑스 해군을 지휘하는 입장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만 어쨌거나 유능한 지휘관이라면 상황을 잘 해쳐 나갈 것이었습니다만 빌뇌브는 그렇지 못했죠.
그의 고민을 살짝 들춰 보자면 그가 식민지 섬들을 공격하게 되면 영국 함대의 긴장을 불러와 브레스트 항에 대한 봉쇄가 강화되어 강똠의 함대가 바다에 더욱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라는 걱정과 함께 만약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영국 함대의 서인도 제도에 대한 지원이 늦어지게 됨으로서 상륙시 영국 함대가 힘을 그대로 보전하게 되는것이 아닐까 라는 것이라는 이도 저도 못하는 것들이었지요. 거기다 규모가 큰 산타 도밍고 인근 해역에서 영국 함대가 작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더욱 더 고민에 빠졌습니다.
허나 이 함대는 실상 빌뇌브의 함대보다 약체였고 그가 강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허나 그는 지레 겁부터 먹었죠. 결국 그는 좀 만만하게 생긴 조그만 섬인 다이아몬드 록 이라는 섬을 공격하기로 결정합니다. 여기라면 세력이 약해 금방 점령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죠. 그러나 예상외로 저항이 심각해 무려 15일이나 소비하고 나서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어쨌거나 성공했고 이에 자극받아 마공 제독과 합류한 다음 안티구아 섬과 바르부다 섬을 공략하기로 마음먹고 6월 4일에 마르티니크를 출항하게 됩니다. 헌데 그가 안티구와 섬에 도착하여 상선을 나포했을 때 그들로 부터 넬슨이 20척의 함대를 이끌고 떼섬의 바르바도스에 도착하였으며 빌뇌브를 추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그는 넬슨의 함대가 서인도 제도로 온 이상 다시 유럽쪽으로 향하여 함대를 더욱 강력히 하여 분산된 영국 함대를 격파하기 위한 타이밍이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6월 9일에 안티구와를 출항하여 유럽 방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한편 넬슨은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넬슨은 처음 빌뇌브의 목적지가 이집트인줄로 알았으나 이후 들어오는 정보에 의해 그들이 이집트가 아닌 지브롤터를 통과했으며 프랑스 함대를 카디즈에서 확인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떼섬으로 향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24일의 항해 끝에 서인도 제도의 바르바도스 섬에 도착하게 되지요. (좌측이 넬슨)그는 그곳에서 5월 28일에 프랑스 함대가 세인트 루시아를 통과하여 남쪽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도착 다음날 아침 바로 남쪽의 토바고를 향해 출항을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프랑스 함대가 있을리 만무했죠. 그 사이에 프랑스 함대는 고민고민 하다가 만만하 곳을 족치고 자신감을 얻을 즈음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프랑스 함대와 영국 함대는 서로를 비껴나갔던 것입니다. 만약 그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빌뇌브의 함대보다 숫적으로는 밀리나 경험치가 높은 영국 함대가 프랑스 함대를 발라 버렸다면 이후 전개는 아주 달라졌을 수도 있겠고 반대로 프랑스 함대가 압도적으로 영국 함대를 무찔렀다면 트라팔가 없이 바로 프랑스 육군이 영국에 상륙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만약 프랑스 육군이 상륙 했더라면 영국은 프랑스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아무튼 넬슨이 정보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다시 북상하여 정보를 수집한 결과 6월 12일에 안티구아 섬에 도착하여 빌뇌브가 불과 3일 전에 그곳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근 한달의 거리를 3일의 거리로 좁혀버린 것이죠. 그리고 그곳에서 넬슨은 프랑스 함대의 주 목적이 사실 서인도 제도가 아니라 영불 해협임을 확신하게 되고 급히 유럽 방향으로 배를 돌립니다.
한편 빌뇌브는 6월 30일 경 아조네스 군도의 북쪽을 지나 영국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그는 원래 계획대로 영국 함대가 눈치체지 못하게 브레스톨에 있는 아군과 합류하려고 했으나 7월 22일 경 그들의 유럽 진입을 방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던 칼더 제독의 15척 함대에 들키게 됩니다.
양 함대는 날씨 탓에 5시간 가량을 서로 노려 보고 항해하다가 이후 4시간을 교전하게 되는데 이 전투에서 칼더의 함대는 스페인 함선 2척을 격파하고 일시적으로 프랑스 함대가 스페인 페롤항에 입항하는 것을 방해하죠. 허나 빌뇌브 함대의 주 목적은 타 함대와의 합류로 규모를 키우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후에 적극 교전을 회피하면서 7월 28일에 스페인 비고항에 들어가게 됩니다. 비고항은 페롤항 바로 아래에 있는 곳이죠.

아무튼 빌뇌브로서는 함선 2척이 손상 당하기는 했지만 적극적 회피로 본래 임무를 수행의 과정을 무사히 할 수 있었고 이에 나폴레옹에게 승전 보고를 한 뒤 페롤 함대와 합류하기 위해 떠나려 했습니다. 헌데 이때 나폴레옹의 영국 해협으로의 북진 명령서가 내려지는데 빌뇌브는 비고항의 시설이 열악한 탓에 급히 출항하느라 이 명령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페롤항에 함대의 절반이 입항 했을 때 명령 전달로 인해 입항 금지조치가 내려지죠.
그는 일단 함대를 근처 앞 바다에 닻을 내리고 정박하게 하나 나폴레옹의 명령을 어겼다는 사실에 겁을 먹어 8월 13일 급히 페롤항을 출항하게 됩니다. 이떄 그의 함대는 43척 이었죠. 사실 좀 정확한 정보와 제독의 결단이 있었더라면 바로 북진해 영국 상륙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만 그는 출항 뒤에도 카디즈로 갈지 브레스트로 갈지 고민합니다.
거기다 그는 프랑스 함대를 감시하기 위한 영국의 소형 함선대를 그만 영국의 대함대로 착각하는 엄청난 실수를 해 버립니다. 그가 결단을 내려 북쪽으로 바로 향했더라면 뒤이어 합류하게 되는 프랑스의 소함대와 합류하여 상당히 강력한 부대를 구성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교전을 회피하기 위해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버립니다. 그리고 계속 남하하여 결국 8월 20일에 카디즈항에 들어가게 되죠.

<잘 보이실라나 모르겠네요, 넬슨과 빌뇌브의 항로>
허나 결국 이러한 행위는 나폴레옹의 분노만 사게 됩니다. 사실 나폴레옹은 이미 8월 3일에 불로뉴에 도착하여 육군 16만 이상, 말 1만여 두, 상륙정 1300척 가량, 수송선 천척 가량을 준비해 두고 열병식까지 마친 상태였죠. 만약 빌뇌브가 영국 함대를 저지하여 딱 6시간만 벌어 주었더라면 그의 육군은 영국에 상륙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는 영국을 손쉽게 이겼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나폴레옹의 육전 실력은 따를 자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는 "내가 만일 6시간만 이 해협의 주인이 된다면 세계의 재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발언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를 빌뇌브 카디즈에 들어가게 됨으로서 그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어 버렸던 것이지요. 그는 엄청나게 성을 내면서 바로 군대를 동으로 돌려 오스트리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승을 거두고 오스트리아를 장악하게 되죠.
실패를 확실히 인지하고 바로 다음 작전으로 넘어가는 빠른 판단력과 시야는 정말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게 해 주는 일화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넬슨은 7월 19일 지브롤터에 도착했고 상황을 전해 들은 후 8월 18일 영국의 스핏헤드에서 닻을 내리고 휴가를 얻게 됩니다. 그는 1803년 6월 부터 지브롤터에 도착한 7월까지 한번도 상륙하지 않고 함선에서만 생활하고 있었죠. 그의 임무에 대한 성실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아직 트라팔가 전투는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To Be Continued
태그 : 트라팔가



덧글
R쟈쟈 2008/04/22 22:52 # 답글
나폴레옹 속도 터지겠군요^^;;;;임란때 히데요시의 마음속도 저랬겠죠^^;;;
比良坂初音 2008/04/22 22:54 # 답글
나폴레옹이 영국까지 먹었다면 어땠을까 정말 궁금하긴 하네요^;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08/04/22 22:55 # 답글
언제나 작은 일이 나중에 "만약에 이랬더라면..." 하는 말을 말하게 만드는군요
SAGA 2008/04/22 23:00 # 답글
6시간....... 그 6시간으로 인해 역사가 바뀌었군요. 헐......
을파소 2008/04/22 23:07 # 답글
요즘 테메레르를 읽는 중이라, 저 위에 용들이 날아다닐 거만 같습니다. (...)
홍차도둑 2008/04/22 23:33 # 답글
어째 나폴레옹은 부하 운이 엄청 없네요, 워털루 전투에서도 별동대(맞나요?) 이끈 장군이 하도 우유부단해서 도와주러 가지 못해 패배했다고 하니...정말 6시간이었으면 세계 역사가 바뀔지도 모르는 그 6시간이었군요
제갈교 2008/04/22 23:53 # 답글
6시간 동안 빌뇌브의 함대가 시간을 끌었다면 나폴레옹의 동방진출이 가능하지 않았을까도 싶네요. 육전에 강하고 이집트를 한 번 공격한 전과가 있는 나폴레옹이라면 말이죠. :)잘 읽었는데, 위의 빌뇌브 초상화 중 9시 방향의 길쭉한 초상화에서 머리가 쪼까 이상하네요. ^^;;;
꿈바라기 2008/04/22 23:53 # 답글
넬슨전기를 다시 꺼내서 읽어봐야겠네요.
Cuchulainn 2008/04/23 07:19 # 삭제 답글
나폴레옹의 주변에 보면 참 얼간이 아니면 정박아밖에 없는게 참 안습이라죠. 후후*나폴레옹은 필사의 격전을 펼치고 있는데 "황제께선 북상하라고 하셨다" 만을 외치며 남서쪽의 포격소리를 무시하지 말아달라던 부하장교들의 눈물어린 호소마저 캐무시하던 Grouchy라던가...*
어릿광대 2008/04/23 08:31 # 답글
지나친 긴장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듯하네요..(아직뭐 끝난건 아닌듯 하지만요..)쩝 이글을 읽으면서 if~라는 단어가 생각나는지 모르겠군요..
행인1 2008/04/23 12:27 # 답글
전쟁은 은근히 운에 좌우되는게 많군요.
파파울프 2008/04/23 16:45 # 답글
R쟈쟈님/ 속이 얼마나 터졌으면 지휘관을 해임하고 한동안 분에 못 이겨서 씩씩 거렸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저라도 열받기는 하겠습니다. ^^하츠네님/ 당대에는 그럭저럭 버티겠지만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이라는 걸출한 인물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에 후대가 어찌 되었을지는... ^^
사바욘님/ 전문 역사가는 절대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우리같은 아마추어는 그 재미에 역사를 공부하는 거죠 크크
SAGA님/ 그렇죠, 만약 6시간이 나폴레옹에게 주어지고 도하가 성공 했더라면... 또 다른 역사가 이루어 졌을 수도 있죠
을파소님/ 그러고 보니 전에도 테메레르를 읽고 계셨다고 하던데... 재미있나봐요? 저도 함 읽어 봐야 겠군요
홍차도둑님/ 너무나 나폴레옹의 카리스마가 커서 그럴지도 모르죠. 여타 장수들도 그냥 따로 놓고 보면 평균 이상은 되는데 나폴레옹이 너무나 컸던거죠.
제갈교님/ 당시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이라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죠, 일단 그의 계획에서 동방에 대한 것은 없었습니다만 (이집트 공격도 영국의 보급을 끊으려는 시도에서 나온거죠) 그같은 인물이 그냥 유럽에만 안주한다고도 생각하기 힘들군요
꿈바라기님/ 넬슨전기라면 혹시 그 두꺼운 그것입니까? ^^
Cuchulainn님/ 나폴레옹이 너무나 거대해서 그런가봐요, 하도 희안한 인물들로 포진되어 있길레 도대체 이 사람들이 뭔가 해서 조금 찾아 봤는데 나름대로 평균 이상씩은 다 되는 사람들이더라고요. 위에 빌뇌브도 나름대로 바다를 잘 알고 자기 능력도 잘 아는 사람이었고 말입니다.
너무 커도 문제가 되기는 한가봐요. ^^
어릿광대님/ if는 아마추어들이 가질 수 있는 즐거운 놀잇감이랍니다. ^^
행인1님/ 운이 전혀 필요없는 요소라고는 말할 수가 없겠죠. 이순신 장군도 그렇게 철저한 분임에도 점술을 덕목으로 꼽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특히 무가에서는...
Cuchulainn 2008/04/24 04:45 # 답글
그렇다곤 해도... 아마 프랑스 해군이 영국 해군에게 맞짱떠서 이기는 수준까지 가는데는 트라팔가 해전 시점에서부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겁니다. *저게 없었으면 미국의 독립은 꿈도 꿀 수 없었을겁니다.*
Cuchulainn 2008/04/24 04:48 # 답글
두번째로... 넬슨의 삽질, 그리고 근성이 드러나는 시기가 이쯤이 아니던가요? 빌뇌브 그 얼간이가 삽질을 안하고 바로 전격전에 돌입해줬어도, 넬슨이 근성을 발휘할 정도로 시간을 벌진 못했을겁니다만, 그와는 논외로 넬슨은 초반에 분명히 프랑스 해군의 페이크에 제대로 속았거든요. 여기서 실수를 알아채고 다시 프랑스 해군을 집요하게 추적해서 결국 승리를 따내는 모습은 "근성" 말고는 달리 설명할 단어를 모르겠습니다그려. 낄낄
Cuchulainn 2008/04/24 10:28 # 삭제 답글
행인1님께//전쟁의 상당한 부분이 운이라는 점은 전쟁사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장수중에도 가장 무서운 자는 운장 (운이 따르는 장수 -_-)=b)이라는건 익히 알려진 속설이거든요.
가까이는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운이라는게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잘 드러납니다. 일본군이 유일하게 *구름이 많이 끼어서* 초계기를 보내지 않은 단 한 방향에 미드웨이 함대가 몽조리 숨어있었다던가... 기타등등.
파파울프 2008/04/24 13:20 # 답글
Cuchulainn님/ 넬슨의 근성은 따로 말할 필요까지가 있겠습니까. 아주 근성가이죠 ^^ 이집트로 착각하고 있다가 한달의 시간을 낭비하고서는 바로 추격해 그걸 3일 거리까지로 좁히고 그거... 보통 근성이 아니죠. 배에서 2년을 살았다는것도 보통이 아니고 말입니다.그리고 해군이라는 놈이 만든다고 바로 쓸 수 있는 놈들이 아니니 이런저런 과정을 다 거치고 그때서야 곰삭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고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별로 눈에 띄는 것이 없으니 프랑스로서는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
시언 2008/05/11 19:27 # 답글
저도 테메레르 생각이 나는군요.^^ 정말 6 시간만 있었으면 세계 역사가 바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