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구 이야기 by 파파울프

오랜만에 조선사 입니다. ^^


격구라는 놈이 있습니다. 말을 타고 하는 폴로 유사한 놀이인데 그 원류는 페르시아라고 하지요. 이 페르시아의 스포츠가 유럽으로 가서는 폴로가 되었고 동쪽으로는 당나라로 들어와 고구려와 신라에 전해 지면서 격구라는 스포츠가 꽤나 활성화 되었습니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말을 타고 공을 쳐서 구문 밖으로 밀어내는 놀이인데요 말을 타고 하는 기마격구와 그냥 걸어서 하는 보행격구가 있었습니다. 보행격구의 경우 골프와 유사해서 흔히 아는 격구와는 좀 다르죠. 자세한 것은 예전 포스팅을 링크한 것을 참고하시고요.

<마상격구 시합장과 모습 - 출처 : 동아 엔사이버 백과사전>


일단 시합 모습을 보자면 이렇습니다. 각 진영의 선수들이 말을 타고 출마표에서 격구봉을 들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보통 딱 정해진 숫자는 없지만 대략 한팀에 10명 가량이 구성됩니다. 그리고 이때 시합의 주최자가 신호를 보내면 치어리더 아니 기생들이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면서 흥을 돋우다가 시합장 가운데에 공을 던져 넣습니다.

공이 바닥에 떨어지면 각 팀은 전력질주로 공을 향해 달려듭니다. 그리고 위에 보시면 나오는 다양한 기술들을 사용해 자신이 공을 구문 밖으로 던져 넣으려고 하죠. 서양의 폴로의 경우 공을 쳐내는 형식입니다만 우리쪽의 격구는 공을 주워 들거나 하는 기술도 사용됩니다.

이 격구는 말을 타고 하기 때문에 박진감이 넘치고 또 각종 묘기스러운 동작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대중에게 대단히 인기있는 스포츠였습니다. 물론 말을 타고 하는 동작들이 하루 이틀만에 배울리 만무하기 때문에 기병을 훈련 시키기 위한 중요한 과목중에 하나로 자리잡기도 해서 고려시대에는 국가적인 행사로 자리잡기도 했었죠. 조선시대에도 세종대왕 께서는 이 격구에 대해 "격구를 잘해야 말타고 활쏘기를 능히할 수 있고 그것이 된다면 창술과 검술도 능히 할 수 있다"라고 하시며 권장 하셨죠.

<이여성의 격구도 - 1930년>


헌데! 조선은 절대 왕이 말한다고 모든게 올 패스~ 되는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신권이라는 것이 다른 여느 나라보다도 강력하다고 볼 수 있는 그런 사회였죠.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찌보면 이상주의적 공산주의 사회와 비슷하다고 할까나요? 당연히 세종대왕 시절에도 이 격구에 대해 반론이 나왔었습니다.

세종실록 7년 11월자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오죠.

○乙卯/視事。 司諫院啓: “臣等竊觀兵曹關, 武科試取及春秋都試, 幷試擊毬之藝, 此令士卒鍊習武藝之深慮也。 然吾東方擊毬之戲, 始於前朝盛時, 及其季世, 徒爲遊觀戲謔之具, 而豪俠之習日盛, 未聞有補於國家也。 漢、唐之蹴(掬)〔鞠〕擊丸, 亦皆類此。 雖曰習戰, 皆爲戲事, 非萬世之規範也。 先儒朱熹 亦以打毬爲無益之事, 而不可爲也。 我 太祖 康獻大王、太宗 恭定大王訓鍊武藝之術, 無不備擧, 而曾不及此, 豈非慮無益而不擧乎? 今我國家於訓鍊武藝, 旣有騎射弄槍之習, 何待擊毬之戲, 然後爲有助乎? 然則是法也, 非徒無益於當時, 恐有流弊於後世也。 伏望停擊毬之法, 以杜將來之弊。”上曰: “予謂擊毬之事, 不必如此極言之。” 知司諫 高若海 對曰: “臣等之請罷, 無他, 恐弊生於後世。 方今聖明之時, 雖未至於有弊, 後世倘有暗主出而專務此事, 則其弊不淺。” 仍誦古詩一句, 上曰: “此法創自 黃帝, 歷漢、 唐 以至 宋 元, 代各有之, 彼豈不知弊而爲之? 祇欲其習武耳。 前朝之季, 亦行此事。 其亡國, 豈擊毬之所致哉? 予之設此, 非爲戲謔, 欲令軍士習武藝爾。 且擊毬之所, 在於郭外, 何弊之有?” 政府、六曹、臺諫出。 上謂代言等曰: “予在潛邸, 嘗試此事, 眞習御之一助。 在 太宗 時欲爲之, 適有故未果。” 左副代言 金赭 對曰: “前朝之季, 聚見擊毬, 因有淫亂之風。” 上曰: “在今時雖不擊毬, 其無淫女乎?”

내용을 살펴 보자면 11월 20일 사간원에서 격구를 폐하자는 건의가 올라옵니다. 폐지의  사유인 즉 "원래 격구는 군사를 조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져 옛부터 흥해 왔던 것인데 최근에는 조련의 목적보다 놀고 즐기는데 사용되고 있으니 차라리 없에 버리는 것이 더 좋다, 최근에는 격구 대신 말타고 활쏘기나 창술등이 있으니 괜찮지 않냐?" 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세종대왕께서 격구를 좋게 보셨는지"뭐, 그리 나쁠게 뭐 있냐?" 라고 말씀하시지요. 허나 여기서 물러서면 사간원이 아닙니다. 원래 이사람들이 엄청나게 꼬장꼬장합니다. 뒤이어 말하기를 "사실 격구가 폐지하려는 이유는 악풍의 감염 때문입니다. 격구가 무예가 아닌 스포츠화 되면 옛날처럼 개나소나 구경꾼이 몰리니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라고 하지요. 사실 요즘에도 월드컵이니 하면서 대규모 스포츠 행사가 있으면 부정적 측면도 생각보다 심각하지요. 이때도 마찬가지 였나 봅니다.

그러나 세종께서는 "격구가 무슨죄냐? 옛날부터 지금까지 해온거는 다 이유가 있는거고 격구장은 도성 밖에 있는데 무슨 악풍이 감염되냐? 내가 격구장을 설치한건 무예를 위해서니 닥치라" 라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사람들을 물린 후 다시 말씀하시길 "아니? 내가 보니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격구가지고 저런데?" 라고 하니 좌부대언 김좌라는 사람이 "고려말에 격구가 인기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남녀노소 같이 모이다 보니 음란한 일들이 많았거든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세종대왕께서 일침을 놓으시길 "헐 쩐다~, 지금 격구를 보지 않는데 그렇다고 음란한 여자가 없냐? 왜 난리야" 라고 말씀하시죠. 이게 세종실록에 나온 당일의 기록입니다. ^^

재미있는 부분이죠? 무예로서가 아니라 스포츠로서의 격구는 고려시대에 성행했었고 또 여느 스포츠가 그렇듯 월드컵 베이비 같은 것들도 꽤나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폐단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봐서 질서가 무너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모양이지요. 항상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그다지 다를 것이 없는가 봅니다. ^^

<복원된 격구 - 출처 : 한국 마사회>

하지만 조선의 격구는 아무래도 무예만을 위주로 한 것이기에 축제와 겸해 행하던 조선 이전의 격구에 비해 많이 위축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 보다는 문을 중시하던 사회 분위기상 격구는 명맥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죠, 그러다 보니 결국 후대에 와서는 많은 부분이 사라지게 되었고 1997년 마상무예단이 다시 복구할 때 까지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경기가 되었었죠. 일단 복원 되었으니 좀 활성화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덧글

  • 오작서생 2008/04/27 17:35 # 답글

    조선 2대왕 정종이 격구를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기마격구인지, 보행격구인지는 잘...)

    동생에게 왕위 물려주고 상왕이 되어서 격구만 치며 사셨다지요.(모 방송국 드라마에서 정계복귀를 노리던 것은 구라입니다.)

    그런데 너무 놀자족이었던 정종은 사후에 섭섭한 대접을 받습니다.

    세종대왕은 조선 '3대왕'이 자신(!)이라 생각했으며, 시호도 받지 못해 한참동안 '공정왕'이라 불립니다.(숙종대에 비로소 '정종'이라는 시호를 받습니다.)

    종묘에서 대접도 시원찮아서 야사에서 정종의 귀신이 나타나 '제사상 좀 정성들여 달라!'는 하소연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 比良坂初音 2008/04/27 18:53 # 답글

    흘흘 저 시절에나 지금에나 크게 다를거 없네요
  • 파파울프 2008/04/27 19:19 # 답글

    오작서생님/ 엇? 정종과 세종을 잘못 쓰셨어요. 세종이라 쓰시고 공정왕~ ^^ 이거 이거 덧글에서 까지 서럽게 되는거 아닙니까? 이제 오작서생님 꿈에 정종이 나오셔서는 너무한거 아니냐능~ 이라고 하실지도 크크크.

    그리고 보행격구 입지요. 후기에는 기마격구는 그야말로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었으니 말이죠. ^^

    하츠네님/ 사람이 크게 달라질 것이 있나요 뭐~ 다 그런거죠 ^^
  • 오작서생 2008/04/27 20:36 # 답글

    그러니까 세종대왕은 조산의 세번째 왕이 자신이라 생각했다는 겁니다.(둘째 삼촌은 그냥 잠시 왕노릇 하던 분이라 생각...-_-;;;)

    뒤에 시호도 못 받은 건 역시 정종이고요, 오랫동안 공정왕이라 불렸습니다.(무려 280여년...)

    그리고 야사에서 정종의 하소연을 들은 관원은 원하는대로 정갈한 젯상을 마련하여 법도대로 제례를 지냈고, 이 일로 공치사를 받아 출세를 했다 합니다.(아마 정종이 후대왕의 꿈에 나타나서도 갈군 듯...)
  • 풍신 2008/04/27 20:39 # 답글

    세종대왕님의 대사가 꽤나 멋지군요. 그나저나 말타고 하는 것은 꽤나 화려했을듯합니다.
  • 파파울프 2008/04/27 21:14 # 답글

    오작서생님/ 아~ 그거였군요. 전 세종이 공정왕이라 불렀다고 적어 놓으신 줄 알았어요 ^^

    풍신님/ 꽤나 재미있었을 겁니다. 박진감도 넘치고 말이죠. 그리고 가끔씩 멋진 기수가 묘기라도 보이면 자지러지는 사람도 나왔겠죠 ^^
  • ArmCommander 2008/04/27 22:57 # 답글

    기마격구에 능하면 적어도 적 보병을 창이나 검 등으로 치는 것은 꽤 능숙해 질듯 한데요. 기본적인 전투 훈련만 받아서 '병사'로 만들기만 하면 될거 같으니...

    세종께서는 역시 바보가 아니군요 -_-;


    그런데 정종 무시무시하군요. 아니 뭐 상황이 안 좋을때 왕이 됐으니 저런 취급을 받을 법도 하긴 하지만...
  • 샛별 2008/04/27 23:51 # 답글

    저 격구라는거 실제 재현한 모습을 봤습니다.

    이건 뭐...하키할때 스케이트대신 말타는거 뺴고 다른게 없던데요.

    거의 죽기살기로 하니깐;;
  • SAGA 2008/04/28 00:09 # 답글

    격구를 보니까 몇몇 사극에 격구가 등장했던 게 기억나는 군요. ^^;;;

    드라마에 나온 격구 중 가장 유쾌했던 격구는 쾌도 홍길동에서 현대판 골프를 풍자해 놓았던 격구였고 가장 보기 그랬던 격구는 태왕사신기에 나왔던 격구였지요. ㅡㅡ;;;
  • 어릿광대 2008/04/28 08:43 # 답글

    세종대왕님의 대사에서 푸핫 해버렸고요..(윽;;)
    그리고 오작선생 님의 덧글에서도 푸핫해버렸군요..
    근데 세종대왕님하면 생각나는게 한글창시인데 운동도 즐겨하셨군요..
    (뭐 걸핏하면 신하들이 "아니되옵니다" 뭐 이렇게 임금에게 스트레스 덩어리를
    안겨드렸으니 풀려면 격구가 제일이었나봅니다..)
    지금이나 과거나 스트레스 풀려면 운동이나 게임이 제일인가 봅니다(응?)
  • Neidhardt 2008/04/28 09:48 # 답글

    오~ 격구이야기군요 ^^

    옛날에 좀 놀았다는 양반들은 격구이야기가 빠지질 않던데 그렇게 재밌었을까요 ㅎㅎㅎ
  • 파파울프 2008/04/28 15:06 # 답글

    ArmCo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격구를 즐기면 그런것에 좋다는 것을 알겠죠. 문제는 그것이 더 우위냐 아니면 다른 패혜가 더 문제냐 하는 것을 저울질 하는 것이 남았달까...

    샛별님/ 보행격구는 골프 비슷하니 격렬함은 사라질 겁니다. ^^ 하지만 기마격구는 말을 타고 거칠게 달리고 싸우고 하는 거니... 박진감은 넘칠 것 같군요 ^^

    SAGA님/ 전자는 보행격구고 후자는 기마격구겠군요. 엄밀히 말하면 기마격구가 원조겠지요.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내용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포츠화 해도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릿광대님/ 아니... 세종대왕님은 직접 하지 않으셨죠... 그냥... 입으로만... ^^;; 가끔씩 보행격구나 산책 정도야 하시겠지만 땀내는 운동은 안하셨을껄요? ^^

    Neidhardt님/ 요즘도 골프 보세요..., 그야말로 개나 소나 다 하지 않습니까... 어느정도 돈을 좀 벌면 말이죠 ^^
  • 어릿광대 2008/04/28 19:32 # 답글

    그럼 전 낚인건가요?(설마..)
  • 파파울프 2008/04/29 01:32 # 답글

    어릿광대님/ 으힛~ 낚시성 글이 되어 버렸던가요? ^^;;
  • 엠빗시 2008/11/30 16:45 # 삭제 답글

    세종대왕님의 대사는 멋지군요.. 너무 웃어서 배꼽이 빠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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