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해전 - 트라팔가 해전 (4) 역 사

하도 뜨문뜨문 올라오다 보니 맥이 끊어져서 읽는 맛이 나지 않는 분도 꽤 계실 것 같단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이해해 주세요, 한 번 올리려고 하면 일이 만만치 않거든요. 최근에 좀 바쁘기도 해서 그냥 잡담 올리는 것과는 다르게 힘들어요. ^^;

<이미지 출처 : Military-art.com>


빌뇌브가 침로를 남쪽으로 향하여 계획을 완전히 물먹이자 나폴레옹은 무진장 화를 내면서 즉시 군대를 오스트리아로 돌렸다는 이야기는 바로 전에 했습니다. 어느정도 화를 냈느냐면 9월 16일 부로 빌뇌브를 해임시키고 그 자리에 로실리 중장을 임명한다는 명령을 할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이 명령은 해군 대신 데크레를 통해 9월 18일에 마드리드 주제 프랑스 대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로실리에게는 함대 지휘권을 인수해 카르타헤나로 항해한 뒤 부대를 나폴리에 상륙시키고 툴롱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죠.

문제는 이 시대는 전화도 없고 통신이라고는 사람의 입이나 서신으로 전해지는 수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헌데 소문이 좀 더 빨랐던 모양이에요. 빌뇌브는 나폴레옹이 엄청나게 화를 냈으며 자신을 해임하고 새로운 지휘관이 올 것이라는 소문이 카디즈에 좌악 퍼져 있었던 겁니다. 그러지 않아도 나폴레옹에게 쫄아 있는 빌뇌브가 안절부절 한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이 사람 나름 능력있는 사람인데 이럴 때 보면 정말 안습입니다, 그는 해군경 데크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 프랑스 함대는 1열 종진 이외에는 모르고 있으며 이 전술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고 이는 영국 함대가 가장 원하는 스타일이며 이런 상태로는 영국 함선 20척으로도 자신의 프랑스 함대를 박살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가 가진 두려움은 몰라서 오는 두려움이 아니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이었죠. 사실 그가 근성이나 임기응변성이 뛰어났다면 어떻게든 해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그런 면에서 떨어졌죠)

<빌뇌브의 기함 Bucentaure호 (프랑스 발음이라...)>


결국 그는 공적을 올리기 위해 영국 함대와 회전에 승리하여 과거의 오류를 만회하고자 합니다. 10월 8일 작전 회의를 연 그는 해군 대신에게는 18일에 순풍이 불면 출항하려고 한다는 보고를 하고 급히 함대를 꾸립니다. 10월 10일 경에 새로운 지휘관인 로실리가 마드리드에 도착하고 나폴레옹의 격노등이 뒤섞여 그를 급하게 만들었지요.

그는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영국 함대는 2년 이상의 장기 항해로 병사들이 모두 지쳐있다 그래서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고 외쳤죠.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영국은 육군국인 프랑스와는 달리 오랜 시간 항해에 나서는 것이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한편 8월 18일 휴가를 받아 영국의 자신의 별장에 들어갔던 넬슨은 9월 2일에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 함대가 카디즈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는 그 소식을 듣고 바로 해군성에 달려가 빌뇌브를 격파할 수 있는 지휘권을 달라고 청원을 했죠. 해군성은 그 청원을 혼쾌히 받아들여 어떤 배라도 원하는 대로 끌고 나가도록 허락까지 해 줍니다.

사실 이때쯤의 넬슨은 영국에서 인기 스타였습니다. 그가 휴가를 받아 귀국할 때 엄청난 환영을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영국 국민들은 그를 군신쯤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깐깐한 영국 지휘부도 그런 인기와 성실함, 그리고 실적을 보여주는 넬슨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까지 인기를 얻고 있었죠. 그가 빌뇌브와 싸우기 위해 다시 부임할 때 휘하 장교들은 그를 환영하느라 그가 사령관이라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라고 편지에 적고 있었습니다.

넬슨은 이러한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9월 15일 빅토리호에 승함해 프리킷 1척과 대형 갈레온 2척을 이끌고 출항하여 9월 28일에 카디즈 앞바다에 도착합니다.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카디즈는 프랑스의 함대가 정박해 있었기 때문에 감시와 견제의 목적으로 영국 함대가  상주하고 있었죠. 그곳에는 이전에 빌뇌브와 잠깐 싸웠던 칼더의 함대 그리고 넬슨이 부사령관으로 임명한 콜링우드의 함대등이 합쳐져 총 33척의 대함대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넬슨은 그곳에서 휘하 함대의 전술 훈련과 연구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저작한 넬슨 비망록을 휘하 함대 함장들에게 보여주며 교육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만약 신호가 보이지 않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면 스스로의 판단으로 적함에 접근해 교전하는 것은 잘못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해군은 해군성의 교전규칙에 대단히 얽매여 있었습니다. 교전 규칙에 따르면 각 함대의 개별 행동을 적대시 하고 철저하게 지휘함의 명령에 따른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원했죠.

<현재 복원되어 보존되어 있는 넬슨의 기함 빅토리호 : 이미지 출처 구글>


그러다 보니 넬슨이 합류하고서 피니스테르 해전의 불찰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영국으로 귀환을 요청한 칼더와 같은 사람의 일도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함대를 전략적으로 밀어 내린 공로가 있었음에도 오로지 해전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중징계를 받았지요. 당시 영국 해군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꽤나 경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넬슨은 함대 규모가 일정 이상이 되면 현 통신 시스템으로 인하여 원하는 대로의 기동이 나올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일정 부분은 각 함대 함장의 현장 적용적인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었죠. (2차 대전 때 독일군의 파격 진공을 만들어낸 원인도 이러한 하부 지휘관에게의 권한 위임이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로는 프랑스 함대가 40척 이상의 대함대이기 때문에 결전이라 할지라도 정면 승부에는 위험이 따르게 되고 이것을 피하기 위해 함대를 양분해 프랑스 함대를 찔러 들어가 양 끝을 집중 공략하여 혼란에 빠뜨리고 함대 사령관을 포로로 잡곘다는 야심찬 계획을 알린 것입니다. 결국 영국은 영국대로 이런 위협적인 거대 함대를 그냥 둘 수 없었고 프랑스는 프랑스대로 신용 회복을 위한 결전을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프랑스 함대가 카디즈를 나온 것은 10월 20일 3시경. 워낙에 대함대였기 때문에 이미 이전날 부터 출항을 시작했고 이 움직임은 영국 초계함에게 전해저 영국함대에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빌뇌브는 항구를 나오자 영국 함대를 속이기 위해 자주 침로를 바꾸며 기동을 했습니다. 처음 나왔을 때는 남하하여 지브롤터에 들어가는 듯 하다가 21일에 영국 함대가 발견 했을 때는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죠.

넬슨은 초계함대로 부터 정보를 전달 받은 다음 전 함대에 비상 출동을 명령하여 프랑스  함대의 지중해 이동을 막기 위해 20일 아침에 지브롤터 해협에 도착하였죠. 빌뇌브의 기만 기동에 속은 것이었습니다만 곳이어 다른 초계함으로 부터 적이 북쪽에 있으며 남서쪽으로 항해중이라는 정보를 받았을 때 풍상의 위치를 점유하기 위해 기동을 하였고 21일 아침에 프랑스 함대를 발견할 수 있었죠. 그리고 프랑스 함대는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다시 북쪽으로 항해하고 있었고 말이죠.

넬슨은 프랑스 함대를 발견하자 자신의 함대를 복종렬진으로 편성하고 쾌속함 8척을 따로 빼 선봉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교전하기에 앞서 그의 일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신께서 내 조국과 전 유럽의 안위를 위해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승리를 안겨 주시기를... ...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내 생명은 그것을 나에게 부여하신 신의 가호에 맞기며, 내 조국에 헌신적으로 봉사하기 위한 나의 모든 노력에 신의 은총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나 자신과 지금 내가 지키려고 하는 정당한 대의 명분을 당신께 맡깁니다."


To Be Continued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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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푸른별빛 2008/05/16 14:45 # 답글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직전이군요. 두근두근합니다 +_+
  • 파파울프 2008/05/16 14:48 # 답글

    푸른별빛님/ 바로 다음이 트라팔가 해전이죠. 이걸 어떻게 써야 하나 생각중입니다. 그냥 죽 늘어놓으면 재미 없을 것 같고...
  • 제갈교 2008/05/16 15:53 # 답글

    두근두근 전투의 시작이군요.
    잘 읽고 있습니다. ^^
  • hkmade 2008/05/16 16:07 # 답글

    으핫.. 트라팔가 태그 빠진것좀 붙여주세요.
    태그로 검색하면 트라팔가1 이랑 트라팔가4 요것 밖에 검색이 안되요.
    트라팔가 2,3편도 태그 붙여주세요. ^^.
    안붙여 주시면 떼지 할겁니다. (이건 저의 마누라 버젼인데. ㅋㅋ)
    머 결국 카테고리로 들어가서.. 보긴 했지만..
    흥미진진해요. 까오오오옷.
  • SAGA 2008/05/16 17:16 # 답글

    이제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군요.

    이 포스팅을 보니 빌뇌브도 참 불쌍하네요. 영국 해군과의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출전할 수 밖에 없다니...... 파파울프님 말씀대로 하늘이 그에게 임기응변의 재능을 조금이라도 내려줬으면 좋았을테지만...... 으음......
  • 월광토끼 2008/05/16 17:30 # 답글

    발음은 '뷔쎙떠'에 가깝겠군요.
  • Belphegor 2008/05/16 17:42 # 답글

    오늘 저녁은 트라팔가에서 먹는겁니다: )
  • 파파울프 2008/05/16 18:28 # 답글

    제갈교님/ 감사합니다. ^^

    hkmade님/ 테그가 빠져 있나요? 집어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다시 보고 집어 넣을께요, 태그 쓰느것에 익숙하지 안다보니 여러가지로...

    SAGA님/ 사실 빌뇌브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소함대 지휘관이나 함장 정도였더라면 아주 적절한 인사였을 것입니다. 문제는 프랑스 해군에는 그만한 지휘관이 잘 없었고 결국 그는 자기 능력보다 과분한 상황을 맞았다고 볼 수도 있겠죠.

    월광토끼님/ 불어 발음인지라 어떻게든 한국어로 써보려다가 관뒀죠 ^^; 솔직히 포스팅 할떄 일일이 맞추는 것도 일이라서 말이죠. 빌뇌브만 해도 전 일단 빌뇌브로 썼습니다만 다르게 발음을 표기한 책들도 꽤나 많죠.

    Belphegor님/ 에에? 트라팔가라는 식당이 있는가요?
  • 개발부장 2008/05/16 18:51 # 답글

    "그를 환영하느라 그가 사령관이라는 사실조차 잊었다."

    ...혹시 아이돌 스타 위문공연 정도로 느꼈을런지도?(먼산)
  • 파파울프 2008/05/16 20:52 # 답글

    개발부장님/ 모르죠, 어쨌거나 예전 기록에 넬슨의 환영 인파 모습이나 휘하 장교들의 모습들에서 범상치 않은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이 사람을 보다보면 자기에게는 엄하고 남에게는 느긋한 그런 모습도 보이거든요. 당시 해군 장교들이 대단히 권위적이고 강압적이었던 것에 비교하면 말이죠.
  • 풍신 2008/05/17 06:44 # 답글

    이글만 읽어도 넬슨이 참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느낍니다.(규칙보다 실속을 따지는 모습에서 이 사람 부하가 되어도 좋다는 그런 느낌...)
  • 어릿광대 2008/05/17 07:47 # 답글

    왠지 읽어보니까 드는 생각..
    어쩔수 없이 나가는 빌뇌브..
    부하들과 국민들의 인기를 받고 잘챙겨주고 왠지 괜찮은 지휘관 넬슨...
    이미 결과가 나온듯도 합니다만..(먼산)
  • vvin85 2008/05/17 14:50 # 삭제 답글

    전투전개는 위키 등에서 시간별 요도등을 첨부하시면 훌륭한 자료가 될 듯 싶습니다. 트라팔가르쯤 되면 글만으로는 그림이 안 그려지지요.

    기계화되기 이전의 전투에서 수병들의 숙련도는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실 어중간하게 숙련된 병사들을 가지고 가장 효과적인 전술은 바로 전열을 짜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로드니 이전의 영국해군에서는 경직되 보일 정도로 전열 유지를 중시 여겼고, 승패에 상관없이 전열유지에 목숨을 걸었죠. 아마 트라팔가에서도 연합함대가 전열만 제대로 짜고 침착하게 대응했더라면 전형적인 T자 전술대로 영국측의 대패로 끝났을 겁니다. 문제는 트라팔가르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는 전열도 제대로 못 짤 정도로 숙련도이 낮았다는 점이죠. 숙련도가 워낙 차이나니 빌뇌브제독 조차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력은 영국측이 더 우세하다고 보았다더군요. 불행한 군인이죠.

    마지막으로 넬슨은 과거 전투기록이라든지 정치적 스탠스, 그리고 엠마해밀턴과의 관계를 보면 모범과는 백만광년 떨어진 사람이었죠. 광전사에 가깝습니다 -_-; 굉장히 자기만의 특색이 강했고, 또 그때문에 소문의 중심이 되면서 인기를 모으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 파파울프 2008/05/17 15:06 # 답글

    풍신님/ 아니 규칙도 꽤나 따졌어요. 문제는 쓸때없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할 줄 알았다는 거죠. 뭐랄까... 이사람 근성가이에 성실맨이거든요 ^^

    어릿광대님/ 아무래도... 프랑스 자체가 육군국인데다가 나폴레옹의 후광이 워낙에 커서 빌뇌브가 위축되고 밀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겠죠. 더더구나 해군국의 인기스타 지휘관...

    vvin85님/ 그렇지 않아도 정말 고민입니다. 이게 그냥 설명하려고 하면 종심을 돌파해서 적을 이분한 뒤 격파했다인데... 이러면 재미없고... 그렇다고 꼬치꼬치 다 꺼내서 설명하면 이야기가 아니라 무슨 설명문 비슷하게 될 것 같고... 고민이네요 ^^

    그리고 사실 프랑스가 해군국이 아니라는 것도 원인중에 하나죠, 삽질을 여러번 해도 바다 아니면 살 길이 없는 나라같으면 삽질을 통해 베테랑이 나올건데 그정도 까지가 아니다보니... 하지만 뭐 이렇게 당하고 살아도 결국 나중에는 영국에 견줄만한 해군이 만들어 지는 것을 보면...

    에... 그리고 넬슨의 특성은 이야기 끝에 따로 이야기 하려고요. 그냥 근성가이 정도로만 말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말이죠. 그가 팔이 잘린 이야기나 연인관계등도 이야기 거리가 많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사후 주변의 이야기도 여러가지가 있고... 어쨌거나 귀차니즘만 없다면 할 이야기가 많은 시대지요 ^^;
  • 함부르거 2008/05/17 15:29 # 답글

    수병의 숙련도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범선시대에는 [수병의 숙련도] = [함선 기동의 숙련도]죠. 동력선이야 키만 돌려도 돌아가지만 범선은 반드시 돛을 조작해 줘야 하는데 대형범선일수록 이게 어렵죠. 태킹 같은 거는 한번만 실패하면 배가 멈춰버리다시피 하니... 숙련도가 떨어지는 프랑스 해군으로서는 영국 함선들이 급기동으로 달려드는 것을 보면서도 대응할 수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파파울프 2008/05/17 19:39 # 답글

    함부르거님/ 네, 그러니 마음먹은 대로 하지 못한다고 빌뇌브같은 사람만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육군이야 정신만 박아넣고 총만 쥐어주면 어떻게든 한다지만 해군은 그럴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 Cuchulainn 2008/05/18 09:41 # 답글

    에... 그래서 나폴레옹이 덤태기를 쓴 격이 됐다고 예전에 제가 일찌기 언급한 적이 있었을겁니다.

    아마 꼴베르였을겁니다. 영국이 혼자 바다를 독식하게 둬서는 절대 안되고 영국의 독주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일찌기 상소를 올렸던 것이. 그/런/데...

    필립 이 병신새끼는 개념은 어디다 팔아치웠는지 영국과 합세해서 오히려 네덜란드를 갈아버리는 그야말로 기상천외의 병신짓을 저지릅니다. 아무리 신교국이 밉다 한들, 나라의 앞날에 대한 시야는 있어야죠. 전 저때 이후로 프랑스인들을 사람으로 안봅니다. ㄲㄲ

    (적어도 개념이 있는 임금이었다고 하면 음성적으로나마 네덜란드를 지원하면서 네덜란드와 영국의 소모전을 이끌어내고 그 틈에 대양해군을 기동해서 아프리카쪽으로 남하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런 일이 있으면서, 영란전쟁이 네덜란드의 패배로 마무리되고, 영국은 해상의 명실상부한 왕자로 등극하게 되죠. 나폴레옹이 나중에 따라잡으려고 하긴 합니다만 이미 차이가 너무 벌어진 상태라 상황이 유리하게만 전개되었다고 했어도 프랑스에 유리하진 않았을겁니다.
  • vvin85 2008/05/18 17:01 # 삭제 답글

    애초에 해상 무역 경쟁은 영국이 다른 경쟁국가들보다 유리한 조건이 여러가지가 있었죠. 영국의 경우 섬인데다 해안선이 길어서 곳곳에 외국의 영향이 거의 미치지 않는 항구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바다가 둘로 나뉘어져 있어서 해군도 둘로 나누어야 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지중해와 대서양의 해군이 만나려면 영국령인 지브롤터를 지나야 하죠. 그리고 해상무역에 온국민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영국과 달리 유럽에서 가장 비옥한 토지를 지닌 프랑스인들이 위험하게 바다로 나갈 필요도 없었죠. 당시 프랑스 인구가 영국의 3배나 되었는데도 해상경험이 있는 프랑스인의 숫자는 영국보다 적었죠. 그리고 이는 숙련도 문제와 직결되게 됩니다. 전쟁이 나면 영국의 경우 배가 모자랐던 반면, 프랑스는 인력이 모자랐다더군요. 프레스갱 같은 건 애초에 불가능하죠. 문화적으로도 프랑스는 귀족들이 무역에 직접 뛰어드는 일을 천시했다더군요. 이런 제반 사정을 볼때 프랑스가 해양진출에 소극적이고 대륙정복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은 자연스럽지 않았나 싶습니다. (훗날 독일도 비슷하죠. 덕후 카이저가 어울리지 않게 해군을 육성한 결과는 제국의 파멸..)
    제경우 Roy Atkins의 Nelson's Trafalgar를 읽었고, 책에 나온 요도가 많이 참고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시간대별로 그려진 요도를 찾기가 힘드네요. 일단 기본이 되는 T자 기동부터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듯 싶습니다.
  • 파파울프 2008/05/18 17:15 # 답글

    Cuchulainn님/ 뭐, 세상에 삽질 사례를 찾아보면 황당할 정도의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도 그것 때문에 재미가 있으니 나름 의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사실 뭐 프랑스 삽질한게 어디 그거 뿐입니까? 2차 대전에도 얼마든지 있는데요. 크크

    그래도 뒤로 가면서 점차 스킬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 그것도 참 재미있죠. 올라가다 또 뚝 떨어지는 것을 보는것도 재미있지만요 ^^

    vvun85님/ T자 기동은 오히려 저거 말고 쓰시마 해전 연구를 보면서 더 잘 알게 되었죠. 그쪽보다 저쪽이 더 잘 나오더라고요 ^^ 어쨋거나 대륙국인 프랑스로서는 해군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겠죠. 절실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비슷한 조건으로 중국도 그렇죠.
  • Cuchulainn 2008/05/19 15:49 # 삭제 답글

    해군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다기보다는 육군과 해군을 동시에 신경써야 하는 입장이었을겁니다. 더군다나 꼴베르같은 선견지명을 지닌 명재상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프랑스에서 해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나폴레옹 시절에 그나마 해군이라고 행세라도 할 수 있던 것도 꼴베르 시절부터 차곡차곡 준비해온게 드러난거였거든요.

    15세기 말 16세기 초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세계를 양분하면서 국력을 엄청나게 키워온 걸 바로 옆에서 지켜본 입장이라면 바다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점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꼴베르의 주장은 저것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필립의 병신짓은 정말 인간 수준의 병신짓으로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겁니다 *크크* 제정신 박힌 인간이 할 만한 짓이 아니거든요. 그때쯤이면 프랑스가 그럭저럭 해양력을 키워서 영국 (50%)과 네덜란드 (~35%?)에 이은 3등국가 정도의 위치였는데, 저기서 영국과 나중에 붙을 요량이었으면 영국과 손을 잡고 네덜란드를 밀어버리는건 아무리 곱게 이야기 해도 미친짓에 병신짓이거든요.
  • 파파울프 2008/05/19 17:06 # 답글

    Cuchulainn님/ 음... 그쪽이 더 맞겠네요. 어쨌거나 많이 터지고 볶이고는 해도 결국 상위레벨까지 올리니 뭐 완전 개삽질은 아니었다고 봐도 되겠죠. 사실 말이죠, 네델란드 삽질도 뒤에 보니 삽질이기는 합니다만 당시 영국을 그렇게 크게 보지 못했다고 해도 현장 삽질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 Cuchulainn 2008/05/20 02:45 # 삭제 답글

    ... 에... 한가지 정정합니다.

    태양왕 필립은 칼레 해전때 병신짓 하던 "스페인"의 왕이군요.

    영란전쟁때 병신짓하던 인간은 "태양왕" 루이 14세군요. *왜 둘 다 태양왕이라는 이름을 달아서 사람을 헛갈리게 -_-;;;;*
  • Cuchulainn 2008/05/20 03:00 # 삭제 답글

    에... 그리고 한가지만 더 추가하자면:

    루이 14세 시절만 하더라도 네덜란드랑 합세해서 영국과 대항했으면 영국은 말라죽었을지도 모를겁니다. 프랑스/네덜란드가 합작해서 유럽 항구를 죄다 장악해버리고 영국 상선의 출입을 막아버리면 영국의 상업은 당연히 말라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폴레옹이 그래서 저 짓을 한번 시도하긴 할겁니다. 타이밍이 150년정도 늦어서 그렇지 -_-;) 그렇게 되면 영국이 전략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은 지브롤터 하나로 압축되어버리는데, 거기를 육군으로 밀어버리면 지중해 상권은 영국과는 완전히 바이바이 하게 되죠. 그러면 지중해 동부는 베네치아 상권에 내주더라도 서부는 프랑스가 전부 장악할 수 있게 됩니다. 네덜란드로서도 밑지는 장사가 아닌게, 북해 윗쪽의 바다는 죄다 네덜란드가 장악하게 되거든요. 상황이 저렇게 되면 영국으로서는 승부수를 날릴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승부수를 날린다고 한타싸움에 올인하는건 병신이나 하는 짓이고, 항구에 죽치고 앉아서 소모전을 이끌면서, 영불해협의 북쪽 끝에서 네덜란드가 귀찮게 굴고 남쪽에서 프랑스가 귀찮게 굴면 영국은 제 풀에 자빠질 수 밖에 없었을겁니다.

    그렇게 해서 영국을 3등국정도라 자빠뜨린 뒤에, 그러고 나서 네덜란드를 육군으로 갈아버리면 프랑스로서는 꿩먹고 알먹고 둥지털어 불피우는 수준까지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게 뻔히 보이는데 자폭하는걸 보고 있자니 쓴웃음만 나오더군요.

    (물론 역사에 가정이란건 없고, 이 가정 역시도 몇가지 불확실한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니만큼, 면밀한 검토 따위는 사실 필요가 없을겁니다. 다만 저런 식의 전략적 시야를 가지고 외교를 접근했더라면 프랑스가 오늘날까지 3등국가 떨거지로 취급당하는 수모는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거죠.)
  • 파파울프 2008/05/20 13:09 # 답글

    Cuchulainn님/ 어디 헷갈리는게 그것 뿐이던가요 ^^

    당시 그런 행동이 잘한 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심각하게 보지 않았을 수도 있는거죠. 오히려 섬으로 갖혀 있는 영국을 굳이 나서서 어찌 할 필요가 없다고 마음먹었을 수도 있고 당장 가용 전력인 육군으로 처리하는 쪽이 더 빠르고 쉽다는 것을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아니면 당시 국내 사정이나 정치적 상황이 그러했을 수도 있고 말이죠.

    어쨌거나 당시 기준으로도 정보전이나 외교에 관해서는 영국을 탑으로 칠 수 밖에 없는지라 다른 국가들을 그런 분위기로 몰았다고 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
  • 월광토끼 2008/05/25 19:38 # 답글

    그 이전에. 프랑스인들이 북쪽에서 해군 양성에 활용하던 군항들의 위치와 입지를 생각해보면 나폴레옹 때 그만큼 발악한 것도 대견할 정도이죠.

    일단 가장 중요했던 브레스트 항만 해도 주변에 인구 밀도도 매우 낮고 -다시 말해 숙련된 선언은 물론이고 일반 병사도 모집하기 힘든- 주요 상업 도시나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브레스트로 물자를 공급하는 일도 매우 고역이었지요. 수백마일 떨어진 내륙이나 로슈포르 등지에서 목재와 대포를 수레에 실어 보내어 브레스트에서 전함을 건조하는데 이게 참 애로사항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시간도 엄청 걸렸고 말입니다.

    여기에 프랑스 해군이 영국 해군과 비등한 전쟁을 벌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각 함선들과 그 승조원들이 경험을 쌓으려면 바다로 나가 전투를 해야하는데 이게 안되니 통상파괴전이라도 들어가야 하는데, 통상파괴를 위해 바다로 함선이 나가려면 영국의 대규모 함대와 맞닥뜨려야 했죠. 영국 왕실 해군 중 대서양 함대와 해협 함대(도버 해협의)가 프랑스군이 나가는 통로를 철저히 지키고 있었기에 통상파괴의 목적지가 될 서인도제도로 나가는게 힘들었고, 또 서인도제도에 안간힘을 써서 도착해도 또 서인도제도 함대가 이들을 사냥하니, 나가도 아무 소용이 없어서 계속 항구에 틀어박혀 있을 수 밖에요.

    한타 다이다이 뜨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경험치가 안되서 못나가고, 경험치 쌓으러 개별로 나가면 또 경험치 안되서 깨지고. 이꼴이니 -_-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 해군은 더군다나 대혁명기의 악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집단 중 하나입니다. 육군과는 달리 해군 장교들은 왠만해선 모조리 귀족들이었으니 -Midshipmen부터 시작해서 Fleet Admiral에 이르기까지- 이들중 상당한 수가 -그것도 바다에 숙련된 전문 장교들-이 기요틴의 칼날에 목이 댕겅댕겅 잘려나가 버렸으니 혁명기 직후의 프랑스가 해군을 굴려먹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죠.

    사실 나폴레옹이 황제 즉위 후 계속해서 계획한 영국 본토 침공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한 작전이었습니다.
    10만 정예를 노르망디 해안가에 줄줄히 텐트치고 앉아있게 해도 이들을 실어나를 수송선이 없었고, 이에 수송선으로 쓸 보트와 어선과 군함 모조리 총동원해도 이 수송선들이 바다를 건너는 동안 영국 해군에게 박살이 날 것이 뻔했죠. 수송선들도 모자라고, 수송선들을 만들었다 처도 이를 보호해줄 함대가 모자란 상황. 그럼에도 나폴레옹은 이 계획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노르망디에서 매일같이 보트들을 만들게 했습니다. 이게 순 정치 광고 효과를 위한 거였는데, 그 계획의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순간 그건 대영제국은 불가침의, 무적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함과 동시에 다른 국가들에게 전쟁 명분을 줘버리는 것이 되니까요. 결국 다른 내륙 국가들을 정치적으로 압박함과 동시에 영국과의 협상여지를 얻기 위해 이 계획을 계속 추진했고, 여기에 실현성을 더하기 위해 굳이 스페인과 재동맹을 맺고 스페인의 해군 전력까지 활용하려 했던 겁니다만... 트라팔가에서 이 모든게 물거품이 되지요.

    그럼에도 이 군사적 천재는 아우슈테를릿츠에서 다시한번 과감한 전술적 행보를 보여줌으로써 제 1제국의 존속기간을 놀라울만큼 연장시켰지요.

    음? 가만있어봐 너무 흥분해서 마구 길게 횡설수설해버렸군요. 죄송합니다.
  • 파파울프 2008/05/26 15:47 #

    사실 나폴레옹도 프랑스 해군이 영국 해군을 어떻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 딱 6시간만 벌라는 말을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특히나 해군국도 아닌 국가에 말씀처럼 전문 해군 장교들을 몽땅 잘라버리고 (어쩐지 스탈린이 생각나죠?) 그걸 기대한 것이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죠.

    그래도 외형적인 부분에서 6시간 정도를 기대한 것은 크게 문제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전멸을 당하더라도 일단 육군이 넘어가기만 하면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생각 자체는 무리가 아니었지요. 실제 몇몇 부분에서는 상당히 가능한 계획이기도 했고요.

    다만 나폴레옹이 해군을 육군의 그것과 비슷하게 생각해 버린 우, 그리고 빌뇌브의 우유부단함이 그것을 막았던 것이겠죠... 뭐~ 영국 해군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도 있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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