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슐리펜계획 (2) 역 사

슐리펜은 일단 독불 국경을 돌파하는 계획은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승리에 대한 보장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눈을 돌려 플랑드르 평야지대를 눈여겨 보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중립국이었던 벨기에가 그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기가 막히게도 이 벨기에를 통과하면 바로 프랑스의 파리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더더구나 평원지대라 대규모 병력이 이동하기도 쉬웠죠.

예나 지금이나 약소국은 이렇게 자신들의 중립요구와 독립요구 따위는 강대국의 입맛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만 어쨌거나 슐리펜은 벨기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들이 따지고 들면 밟아주면 된다는 모토로 벨기에를 통과한 전쟁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일단 벨기에를 통과한 주력이 파리를 중심으로 포위형세를 띄며 낫질하듯 쓸어주고 있으면 프랑스의 주력이 모여 앉아 있는 종래의 전선인 알자스-로렌의 병력이 급히 파리를 향해 이동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쪽 전선에서 기만술을 펴고 있던 조공이 그들을 따라 이동하면서 포위 섬멸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의 주력을 격파하고 정치 행정의 중심도시인 파리가 고립된 프랑스는 6주 내로 급급히 항복할 수 밖에 없다는 계획이었지요. (좌측은 벨기에 국가문장)

설사 완전한 항복을 얻어내지 못한다고 해도 중심도시의 압박과 함께 파리를 지키기 위해 고립되어 버린 주력군들을 그대로 가둬둘 수만 있어도 그 외의 병력은 크게 신경쓸 바가 되지 못하며 그 사이에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이동시켜 전쟁에 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계획에 따라 가장 정비가 잘된 군을 순서대로 독일측 우익부터 7개군을 순서대로 배치하고 그 중 5개군을 벨기에를 통과하는 작전 계획을 1905년에 수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장대한 계획을 수립한 슐리펜은 그해 참모총장직에서 은퇴하여 낙향하고 그 이후 1913년 그는 고향땅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그는 생을 마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우익을 강화하여 대비하라"는 말로 다시금 계획의 중요성을 이야기 합니다.

<그림에서 처럼 독일의 우측부터 낫질하듯 프랑스를 '긁어' 버리는 것이 슐리펜 계획>

그리고 그가 사망한지 불과 1년이 흐른 시기 유럽 세계는 그 전까지 보지 못했던 대규모 전쟁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일차세계대전인 것입니다, 독일 또한 이런 세계전쟁의 중심에서 어쩔 수 없는 양면전쟁의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To Be Continued


덧붙임 : 이번 이야기는 좀 많이 짧습니다. 사실 먼저번의 분량을 적절하게 맞춰줘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 일차대전의 이야기를 연결해 이야기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분량을 좀 많이 줄였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덧붙임2 : 그의 능력이야 어찌되었든 저나 여러 역사덕후들은 슐리펜을 성자의 반열에 올려야 합니다. 적어도 이 사람 "역사덕후"라고 불려도 될만한 사람이거든요. 그는 이 슐리펜 계획도 칸나에 전투를 모델로 삼기도 했고 전사에 대한 연구도 꽤나 한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면 요 시대를 전후로 해서 덕후들이 참 많았지요... 거대 전함 덕후도 있었고... 열차 덕후도 있었고... 뭐 늦둥이로 괴링 같은 덕후도 있기는 합니다만...


덧글

  • 어릿광대 2009/01/07 08:20 # 답글

    점점 기대되네요
    계획세우고 슐리펜이 물러난건 물러난 나이가 되어서 그런건지요?
    (햇갈리네요)
  • 파파울프 2009/01/07 08:31 #

    네, 슐리펜 계획을 수립할 때 벌써 그는 70대 노인이었거든요
  • 파파울프 2009/01/07 08:32 #

    내용이 햇갈리는 분들이 많이 계실까 해서 '은퇴하여' 라는 말을 추가했습니다.
  • blesshy 2009/01/07 09:26 # 답글

    2차대전 때는 저런거 비스무레 돌아갔던 것 같기도 한데.
    1차대전 때는 어떻게 상황이 악화된걸까요;;;
  • 파파울프 2009/01/07 09:29 #

    이차대전은 일차대전의 연장선에 있는 전쟁이라 봐도 무방하거든요.
  • R쟈쟈 2009/01/07 11:00 # 답글

    3회가 정말 많이 기대가 되는군요^^

    몰트케의 우익축소의 이유도 궁금해 집니다^^
  • 파파울프 2009/01/07 13:49 #

    너무 크게 기대하면 실망도 큽니다. 적당히 기대해 주세요 :D
  • 계원필경 2009/01/07 11:37 # 답글

    예나 지금이나 소국들은 강한 나라의 밥이라는 건...
  • 파파울프 2009/01/07 13:50 #

    불변의 진리죠. 적어도 건드리면 물린다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핀란드처럼 살아남죠
  • 소시민 2009/01/07 12:07 # 답글

    역시 프랑스는 벨기에와의 국경까지 마지노 요새를 확장시켰어야 했군요...
  • 파파울프 2009/01/07 13:51 #

    사실 뭐... 그때는 또 전혀 다른 루트로 들어왔으니... 어찌보면 의표를 찌른다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르지요
  • 델카이저 2009/01/07 14:12 # 삭제

    벨기에도 나름 요새선을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공수부대를 투입해서 그 요새를 점령해 버리죠..
  • 파파울프 2009/01/07 14:24 #

    델카이져님/ 어차피 거기야 일차대전때도 그리로 갔으니 지금도 갈껄? 이라며 페인트 취한거니 넘어가야죠
  • 델카이저 2009/01/07 17:22 # 삭제

    실제로 페인트가 아니라 전력 자체는 꽤 강력했지요..ㅎㅎ 게다가 벨기에군 최강의 요새중 하나인 에반에말 요새가 독일군 공정부대에 의해 점령당한 충격에 폰 보크 원수의 B군집단도 만만치 않았고 말이죠.. 그래서 프랑스군이 낚인 거구요..

    폰 보크의 뛰어났던 점은 일부 전선에서 부분적인 성공도 거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하게 공세를 제어하면서 소위 조공의 역활에 충실했다는 거지요..
  • 위장효과 2009/01/07 14:54 # 답글

    그러니까, 중국인들이 그들말로 덕국이라 부른 게 절대 틀린게 아니라니깐요. (파리 열차포의 포탄으로 장전된다.) 그런데 열차 덕후는 누군가요?

    어느정도 슐리펜 플랜은 Decapitation strike의 일면도 가지고 있었군요. 행정상의, 군지휘상의 중심부인 파리를 때려서 마비시켜버린다...그렇긴 해도 클레망소 할배는 "우리는 파리 앞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파리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파리 뒤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식민지에서 싸울 것이다!"라고 사자후를 토해냈으니.

    그런데 역사덕후인 슐리펜이 "유럽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세력이 플랑드르를 차지했을때마다 영국이 보였던 반응"을 무시했을리는 없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여하간 영국은 다른 열강과 달리 해군중심이고 6주정도면 영국이 모병해서 대륙원정군 편성하기에는 불충분한 시간이다, 라는 생각이었던 걸까요?
  • 윤현철 2009/01/07 23:03 # 삭제

    저도 정말 궁금합니다. 군함덕후야 독일의 수염아저씨일거고, 열차덕후는 누구입니까?
  • 파파울프 2009/01/08 03:26 #

    제가 지금 서적이 본가에 있어서 정확하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네요. 벨기에던가? 여튼 유럽의 소국 왕자인데 철도를 워낙에 좋아해서 자국을 지나가는 철도는 죄다 타보고 심지어 열차를 몰아 보는 것이 취미인 사람이었죠.
  • 뽀도르 2009/01/07 17:44 # 답글

    이것도 망치와 모루 전술에 해당되겠군요.
  • 파파울프 2009/01/08 03:26 #

    크게 보자면 그럴수도 있지만 망치와 모루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네요.
  • 뽀도르 2009/01/08 10:10 # 답글

    플랑드르를 가로 질러 반달 모양으로 감아 도는 게 한니발의 칸나에 회전에서 보여지던 반달 같은 기동처럼도 보입니다만 전형적인 망치와 모루라고 하긴 그렇겠네요. 알자스-로렌 쪽의 독일군이 모루 역할을 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만 좀 약하려나...
  • 파파울프 2009/01/09 00:31 #

    모루 역할을 하기는 한거죠. 문제는... 모루 역할이 적극적이냐 아니면 그냥 그런거냐... 정도의 차이랄까요. 뭐... 보기 나름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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