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령 역사

언제 어디서나 그렇지만 정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백성들을 먹여살리는 것 입니다. 조선이 건국되고나서 이성계가 신경 쓴 부분도 먹고 사는 문제였죠. 이를 위해 토지개혁이 있었고 거기에 더불어 "육식"이 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고려시대에는 종교적인 영향으로 육식을 자주 하지는 않았죠. 그러나 불교 국가였던 고려가 망하고 사대부들의 조선이 시작되자 이 사대부들은 거의 '의도적으로' 육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 소고기가 단연 인기였는데 그 이유는 각종 중국의 고사에 고기 먹는 장면들이 나왔기 때문이지요, 황희지의 우심적이나, 송태조와 보 사이의 셜야멱 이야기 같은 것들 말입니다.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한 껏 분위기 잡는거나 소고기 구워 먹으면서 분위기 잡는거나 매 한가지란 말입지요. 물론 백성들에게까지 그런 문화(?)가 전파되는 것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무래도 고려의 영향이 남아 있기도 하고, 사대부들처럼 부유하지 못한자가 고기를 마음대로 먹는것도 힘든 일이거니와 또 소의 경우는 '농사일을 돕는 좋은 짐승인데 그 고기까지 어찌 먹는가?' 라는 생각까지 있었던지라 쉽게 소를 잡지는 않았지요.

그러나 조선의 숭유억불은 점차 강해졌고 백성들도 한번 고기맛을 들이니 이게 참 맛이 좋더라는거죠. 또 남이 먹으면 더 먹고싶어 진다고 양반 사대부들이 소잡아 파티하니 백성들이 그 모습을 보고 '이 맛이 뭘까?' 라고 느끼는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소를 잡게 되었고 허가받고 잡는 소 이외에 소도둑과 밀도살까지 흥해져 큰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당장 농민에게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짓기 어려워지고 농사가 실패하면 농민이 유랑민으로 변해 국가 안정에 큰 위협까지 되더란 말이지요. 결국 태조 7년 '소와 말을 사사로이 도살하는 것은 마땅히 금지령이 있어야 한다' 라고 하며 우금령(牛禁令)을 내리고 이를 한성부가 관장토록 합니다. 그리고 이 이후 조선은 소를 먹는것과 단속하는 것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게 되지요.

우금령은 '공식적인' 소 도살은 줄었지만 소고기는 마치 마약처럼 '밀도살'과 '밀거래'가 흥하게 되는 문제를 일으켰죠, 금주령 처럼 말입니다. 본시 조선에서는 도살이란 백정들의 일이었는데 소고기 밀거래가 돈이 되니 일반 백성들까지 밀도살에 나서게 되는 것이었죠. 또 이 우금령에는 다른 목적도 있었는데 백정... 그러니까 본래 몽골족 계통인 달단과 거란족 계열인 화척들의 도살을 막아 이들을 정착민으로 바꾸고자 한 것이었죠. 헌데 이게 됩니까? 평생 짐승 잡아 살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가 쟁기주며 밭 갈아라 한들 그게 성공할리가 없지요. 결국 이들은 다시 밀도살 부류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결국 태종은 이들을 도성 90리 밖으로 내쫓고, 저절로 죽은 소만 세금을 매긴 뒤에 매매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게 저절로 죽은건지 잡은건지 알게 뭡니까. 세종때에는 아예 이런 거래까지 중단시키고 금살도감을 설치해 소의 밀도살 밀매매를 감시시키고 도살 현장을 목격하고 신고한 사람에게는 도살범의 재산을 포상금으로 주는 '소파라치' 제도까지 시행합니다. 처벌 또한 강하게 하여 소 절도범 이난수와 아들 우동 같은 사람에게는 번화한 저자거리에 묶어두고 쪽팔리게 만드는 주형에 처합니다. 당연히 주형에는 태형과 장형이 플러스 되겠지만요.

세조 13년에 대사헌 양성지가 올린 장계에는 백정 도살자인 '재우적' 이외에 양민들 도살자 '거골장'들이 증가해 심각한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며 농사짓는 소의 멸종을 막기위해 소 도살자들에게 강력한 "군법"을 적용하자고 주장합니다. 도살자의 경우 주범과 종범을 가리지 않고 모두 '사형', 그 처자와 가족은 변방으로 유배. 그리고 그들에게 고기를 사먹은 사람과, 도살범을 비호한 벼슬아치, 그리고 황당하게도 그 도살범과 가까운 이웃 세 사람까지 모두 장 백대에 전 가족을 변방이주 시키자고 했으며, 고기를 먹은자가 사대부라면 장 백대에 영원히 벼슬에 오르지 못하게 하자라고 합니다.

성종때는 좀 처벌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초범의 경우 장 백대에 3년간 강제노역형에 처하고, 재범은 장 백대에 자자형, 삼범은 장 백대에 경면형에 사범은 교형에 처했는데 자자는 팔뚝에 범죄 기록을 문신세기는 것이고 경면은 얼굴에 세기는 것 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경북 흥해에서 소를 도살한 백정 박오을미에게 교대시를 기다려 교형에 처했고, 사노 양봉이란 사람은 장 백대에 3천리 유행에 처해 집니다. 그리고 성종때 문신 표연말은 면신례에서 술과 소고기를 먹고 놀았는데 이 소식이 성종에게 들어가 표연말은 고신(관직 임명장)을 빼앗기고 외방부처를 당했고, 거기에 참석했던 다른 예문관 관리들은 태 50대에 고신을 압수 당했습니다.
<내가 소고기 먹는것을 관가에 알리지 말라~!, 뭐 알려도 상관은 없다만>

그러나 쇠고기 사랑은 여전해서 이와 관련해 살인사건까지 일어났는데 현종9년 청계천 장통교 아래에 큰 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안을 보니 벌거벗긴 남자 아이가 목에 칼이 찔려 살해당해 들어있더라는 사건이었습니다. 탐문결과 이 아이는 경기도 광주에 사는 이명길이라는 사람의 동생이었는데 이명길의 증언에 따르면 동생은 소에 땔나무를 싣고 도성으로 들어갔는데 실종되었다는 것이었죠. 당시 조선에 우역이 퍼져 소가 귀했는데 병에 걸려 죽기전에 소를 팔려고 도성에 들어왔던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온게 마지막이 된 것이었죠. 당연히 소는 찾지를 못했습니다.

범행을 살핀결과 이는 한사람의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조직적인 범죄였고 - 아이를 항아리에 넣고 옮기려면 최소 2명 이상, 그리고 망볼 사람 하나, 따라서 최소 3명은 필요하고 또 그렇게 해도 증언이 안나오는 것은 조직이라는 것이었죠 - 우역으로 소들이 죽어나가고 있음에도 쇠고기 수요는 여전해서 값이 오른 소고기 값을 위해 살인까지도 불사하는 부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변사는 이런 범죄 집단을 한잡무뢰배라고 했는데 <<비변사등록>>에 따르면 '도성에서는 한잡무뢰배들이 도살을 업으로 삼으며 아무런 거리낌없이 낭자하게 매매함이 푸줏간과 다름이 없었다' 라고 할 정도였지요.

그렇다면 법이 지엄한데 왜 이랬을까요? 당장 소파라치 제도를 시행한 세종이 소고기 마니아였음을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겁니다. 사실 백성들이 소고기를 먹는다고 해 봐야 금전적 여유라는게 뻔하고 농삿일을 해야 하는데 얼마나 잡겠어요? 하지만 사대부라면 제사를 이유로 - 소고기가 퍼진데는 제사가 큰 원인중에 하나였습니다 - 그리고 부를 과시하기 위해 등등의 이유로 소를 소비했던거죠. 소고기 금령을 어겼다고 해도 사대부들은 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흔했고 연산군때 있던 전가사변 (법을 어긴자를 가족과 함께 변방으로 이주시키는 벌)에도 사대부는 예외였습니다. 위에 고신을 빼앗겼던 표연말과 같은 사람도 결국 다음해에 고신을 돌려받고 관직에 복귀할 수 있었죠. 요즘도 권력있고 돈 있는 사람은 법의 판결을 받아도 집행유예 확률도 높고, 휠체어에 마스크라도 쓰고 나타나면 여러가지로 이익을 얻죠.

거기다 밀도살을 하다 걸려도 인신 처벌보다 벌금형에 처하여 세금을 거두려는 시도 또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정조15년 기록에 따르면 밀도살을 감독해야 할 고을 관장들이 도살을 엄금하지 않고 되려 도세를 거둬들이고 있다는 기록이 보이며 또 밀도살로 걸려도 형벌 대신 속전을 내면 면방해 주는 법의 구절 또한 밀도살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 중에 하나였습니다. 결국 정조17년 기록에 따르면 이런 분위기는 백성들에게까지 퍼져 법은 있으나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렸죠.

그리고 19세기에 이르면 일본과 청나라에서 소가죽 수출이 급증하게 됩니다. 순조24년 일본 수출량은 1만 5천매, 헌종때는 4만 2천매, 고종때는 1만 5890매, 그리고 청나라에는 순조때 2만매를 쿼터로 정했지만 그 이후로는 제한이 없어져 얼마나 나갔는지 조차 기록에 잡히지 않습니다. 당연히 이 수출품의 부산물인 소고기를 그냥 땅에 묻지는 않았겠죠? 결국 조선왕조 내내 우금령이 있었지만 소고기 사랑을 묶어두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딴 이야기로 왜 소고기를 더 좋아하고 돼지고기는 그렇지 못했을까요? 사실 소를 키우는게 비용이 덜 들었거든요. 돼지는 먹는게 사람 비슷하지만 소는 풀만 먹이면 됩니다, 물론 살을 찌우기 위해 콩 같은걸 주기도 하지만 돼지는 아예 사람먹는 비싼 곡식을 먹여야 하니 돼지는 부담스럽죠.

뭐... 그랬던 겁니다. ^^

트랙백

  • 이조시대로 넘어오며 육식이 많아졌을까? 2012/02/17 14:14 #

    우금령 트랙백한 글의 요지는 '왕고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이 억제되다가 이조로 넘어오며 육식이 늘어났고 조정에서는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 소의 도축을 제한하였다'는 내용입니다.그런데 몇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왕고시대에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이 억제되었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일까요?우리나라의 설렁탕은 몽골의 지배를 받는 동안 그들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는 설도 있는 것으로 보아 꼭 그렇게 보기 힘들지 않을지...그리고 소의 도축을 억...... more

덧글

  • Hyth 2012/02/14 17:58 #

    예나 지금이나 '뭘 금지한다!!'고 하면 무슨 이유로 금지가 됐건 그걸 뒷구멍(...)에서 안들키게 하는건 여전하군요 ㅎㅎㅎ
  • 아빠늑대 2012/02/15 15:12 #

    사람 사는 곳 아니겠습니까 :)
  • 검투사 2012/02/14 18:32 #

    세종 실록에, 대왕님이 "경기도 일원에서 왕실이 쓸 고기를 납품받고 그러는 데, 그러지 말고 숫제 왕실용으로 매일 돼지 한 마리씩 잡자" 하니까, 신하들이 "돼지고기는 다들 싫어하잖습니까"라고 돼지고기에 디스놓는 것을 보고 좀 깨더군요. 그러고 보니 일제 시대에 서양종이 들어오기 전, 토종돼지라는 놈은 체구도 작고 육질도 그닥이라 인기가 안 좋았다는 얘기도 본 것 같고요.
  • 아빠늑대 2012/02/15 15:13 #

    토종돼지는 멧돼지 비슷할건데 요즘에는 멧돼지 고기도 인기죠 :) 아무튼 소고기에 입맛 들이면 돼지고기는 잘 눈에 안들어와요...아... 소고기 먹고 싶다
  • 뚱뚜둥 2012/02/14 20:20 #

    북한에서는 쇠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더 비싸다고 하더니 그게 진짜일수도 있겠네요.
    (본문에 나온 이유처럼 돼지는 사람먹는거 먹는다고)
  • 아빠늑대 2012/02/15 15:14 #

    은근히 돈이 드는게 돼지라네요.
  • 함부르거 2012/02/14 21:55 #

    일제가 한우 축산업을.열심히 장려한 이유 중 하나가 고기 맛이 좋아서였으니까요. 우리 소가 좋긴 좋지요. ^^
  • 아빠늑대 2012/02/15 15:14 #

    그런 의미에서 소고기로 몸보신 좀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 오스왈드 2012/02/14 22:03 # 삭제

    이성계가 돼지띠라 왕실에서는 돼지를 꺼래했다고 합니다
    고려 왕족 후손들은 돼지 잡아서 제사 지내고...
  • 아빠늑대 2012/02/15 15:14 #

    사실 뭐,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그게 큰 이유가 되기는 힘들겠죠. 닭도 있고 개도 있는데
  • 지나가던과객 2012/02/14 22:57 # 삭제

    조상님들은 소고기에 죽고 못살았는데,후손들은 조상님들이 싫어하는 돼지 삼겹살에 환장을 하니......
    이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네요.
  • 아빠늑대 2012/02/15 15:15 #

    사실 삼겹살 같은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고기 요리법들이 적혀 있는 문헌들을 보면 그렇게 기름 많은건...
  • 수달 2012/02/15 09:29 #

    언제나 말하는 거지만...
    소고기 보다 돼지고기가 더 고급 고기라니까요!
  • 아빠늑대 2012/02/15 15:15 #

    고급고기죠...크크... 그러나 전 돼지보다는 소고기가 좋습니다요
  • Ladcin 2012/02/15 16:38 #

    조상님들은 채소와 고기 마니아아아아아!!
  • 아빠늑대 2012/02/15 16:45 #

    채소는...별로 없었지요. 오래 전에는 채소 키우고 유통하는게 쉬운일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고기가 채소보다 쉬울껄요? 크크
  • Ladcin 2012/02/15 17:58 #

    에이 그래도 외쿡인들은 먹지 않는 고구마 줄기라던가 들기름이라던가... 이런걸 즐겨 드셨잖아요 히힣

    ...물론 감자외의 부산물 제외. 그건 조상님들도 정ㅋ벅ㅋ을 못하셨습니다!!
  • 아빠늑대 2012/02/18 02:24 #

    감자가 들어온 시기를 생각하면 역시 고기가 더 우세합니다. 까놓고 말해 고기 구워놓고 옆에 감자 쪼가리 두면 뭘 선택하시겠어요 크크크 전 당연 괴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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