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의 라이벌, 스위스 용병 vs 란츠크네흐트 (6) by 아빠늑대

청운의 꿈을 품고 척박한 스위스에서 따뜻한 남쪽, 이탈리아로 내려가 한자리 차지해 보려다가 박살이 나고, 란츠크네흐트가 스위스 용병들을 깨면서 무적의 1인자 자리에서 물러난 스위스 용병들. 잠시 그들이 뭐하고 있는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너무 란츠크네흐트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타이틀이 분명 스위스 용병 vs 란츠크네흐트 인데 말입니다.

란츠크네흐트가 전술의 페러다임이 전환되었다는 것을 알린 파비아 전투는 1524년 입니다. 그런데 스위스 용병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내려왔다가 발린 다음, 프랑스의 외인부대화 된 것은 1515년 경이었죠. 물론 세상은 숫자를 딱 정해놓고 "오늘부터는 xx의 시대다~" 라는건 없으니 앞뒤로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략 이때부터 충성과 신의의 스위스 용병의 이름이 붙었다고 말할 수는 있지요.

그리고 요 즈음... 그러니까 1505년 경에 교황청은 스위스 용병들을 고용해서 로마의 경호를 시작합니다. 요때가 교황청과 스위스 용병의 끈끈한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시점입니다. 이때 스위스 용병은 충성과 신의...라기 보다는 용병 중에서 전투력이 킹왕짱이니 돈 많은 우리가 고용한다였죠. 그런데 요것이 정말로 친절과 신뢰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증명이 된 전투가 1527년의 사건입니다. 대충 보이시죠? 1505년에는 한가락 하는걸로 계약했으나 1527년쯤 되면 정말 신뢰를 위해 싸워야 했던 겁니다.

사건은 1527년 찰스 5세가 로마를 침략하는데서 시작합니다. 합스부르크의 카를 5세라고 불러도 됩니다, 같은 사람입니다. 아무튼 이 사람이 로마를 침공했는데 여기도 유럽의 참 기묘하고 복잡한 정세가 뒤섞여 있습니다만 먼저 말씀드렸던 부르고뉴 전투와 관련이 있습니다. 프랑스는 이 전투에서 패배해서 부르고뉴를 카를에게 양도한다는 계약을 맺고 풀려납니다만 풀려나니 "무효다!"를 외치며 합스부르크에 대항해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그리고 영국의 헨리8세 등과 협약을 맺습니다. 여기에 로마 교황도 끼어 있었고 이에 빡돈 카를 5세가 로마를 침공한거죠.
<강려크한 턱주가리 합스부르크의 강역>

이 뒤의 이야기로 이때문에 교황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헨리의 파혼을 방해하자 헨리는 또 지멋대로 성공회를 만들고... 아무튼 이 동네가 좀 이렇습니다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니 넘어가고요. 아무튼간에 이 침공때 교황의 옆에는 용병대장 카스퍼 로이스트를 포함 147명이 죽고 47명만이 살아남는 상황이 펼쳐지죠. 위에 붙인 이미지처럼 카를 5세의 영향력은 어마무지했기에 다 떨어져 나갔어도 스위스 용병만은 옆자리를 지켜줬고 이에 감동한 교황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스위스 용병들에게 로마의 방위를 맞기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기조는 쭈욱 이어져 나갑니다. 알다시피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에게 패한 뒤 "영원한 협조"를 맺었기에 프랑스 왕궁에는 스위스 용병들이 복무하는 자리가 있었죠. 그 유명한 태양왕 루이 14세때는 그의 통치 54년 동안 무려 34년의 전쟁기간을 거쳤습니다. 당연히 스위스 용병들도 이 자리에 용병으로 복무했지요. 사실 루이 14세는 용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비용대비 효과가 떨어졌거든요.

이때쯤 되면 국민군의 씨앗이 보이던 시절이고, 구스타프의 군제개혁 같은것들도 일어나던 시기인지라 용병처럼 돈만 빨아먹고 전쟁은 시원찮고, 언제 뒷통수 칠지 모르는 용병들은 귀찮은 존재였죠. 그래서 루이14세도 직접 군제 개혁에 나서서 장교 임명권을 쥐고 군율을 교육시켜 국방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30만의 상비군을 거느릴 수 있었죠. 이런 군대가 태양왕을 지탱하던 중요한 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세상 어떤 왕을 힘도 없는데 따르겠나요?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스위스 용병들의 일자리는 있었습니다. 속설에 따르면 루이14세가 어릴 때 연못에 빠져 위험에 처했을 때 그를 구해준 것이 스위스 용병 호위대였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아꼈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이런 끈끈함은 후대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빈사의 사자상'이 바로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죠. 이 빈사의 사자상은 루이 16세를 지키기 위해 전멸했던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1792년 8월10일 프랑스 혁명이 불같이 일어나고 있었고 시민군들은 왕을 잡으려고 튈리르궁으로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삼총사 같은 영화에서 보던 멋진 옷을 입은 근위대는 이미 다 도망치고 없었지만 루이16세의 옆에는 스위스인 용병 786명이 버티고 있었죠.

루이 16세는 이들에게도 "그대들은 이만 철수해도 좋다"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이들은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민중들은 눈이 돌아가서 이들을 잡아 죽이려 했을까요? 아닙니다. 심지어 시민군도 "너희들은 그냥 고용된 용병이니 루이16세를 내어주고 떠나라"라고 말했죠. 하지만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786명은 모두 왕을 지키다가 전멸했지요.
<바티칸의 스위스 용병. 물론 지금은 군대가 아니라 경찰로 분류됩니다. 법 때문에요>

이들이 충성심이 넘쳐서 왕을 지켰을까요? 속설에 따르면 여기서 죽은 용병의 몸에서 유서가 나왔는데 그 내용에 "우리가 신의를 지키지 않고 도망친다면 우리의 후손들 역시 신의를 잃어 용병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고 하죠. 이렇게 신뢰를 보였으니 당연히 군주들도 이들을 믿고 돈을 지불했습니다. 심지어 혁명이 끝나고나서 상황이 바뀌자 또 스위스 용병들은 프랑스 군에 복무했고 심지어 나폴레옹 휘하에서도 나폴레옹을 따라 러시아 원정에 나서 7천의 용병이 끝까지 싸우고 700명만 스위스로 돌아온 일은 감정적으로 이들을 신뢰하지 않으려고 작정하지 않는 다음에야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첨가: 영문판 위키를 살펴보면 당시 튈리르의 용병들은 900인 정도였고 600여명이 전투나 학살로 사망하고, 나머지 200 정도가 포로가 되었고 -그 뒤로 또 9월 대학살이나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100여명은 탈출한걸로 나옵니다. 그 외에 300여명의 인원은 당시 튈리르에 있지 않고, 노르망디로 군량을 호송하는 팀이어서 살아남았다고 되어 있군요. 제가 가진 책에서는 위의 내용이었는데 일본판 번역으로 되어 있군요. 아무래도 영문 위키쪽이 더 신뢰갑니다만 제가 확인을 못해서 둘을 함께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 피의 돈벌이가 끝나는 것은 스위스에서 공식적으로 자국민의 용병일을 금지한 뒤에나 가능했고 알다시피 그건 꽤나 근대에 들어와서야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만큼 먹고사는 문제는 이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분투보다 그들이 분투하게 되는 원인이 참 비감하게 만드는 일이지요. 아무튼 이렇게 스위스 용병은 전투력 보다는 신뢰로 명성을 쌓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안하고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 계속

덧글

  • 자유로운 2017/03/11 01:22 #

    목숨과 피로서 만든 신뢰는 무섭고도 무겁지요. 이야기 자체는 알지만 볼 때마다 여러 생각이 들게 됩니다.
  • 아빠늑대 2017/03/11 10:28 #

    하지만 의지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먹고 살 문제에 대한 심각성 때문이란 점이 슬픈일이죠
  • 슈타인호프 2017/03/11 05:39 #

    그런데 이게 문제가 있는 통설인 게, 영어판 위키피디아를 보면 루이 16세를 경호하던 스위스 용병은 786명이 아니라 900명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모두 죽은 것도 아니라 전사자 이외에 나머지 3백명 정도는 포로가 되었고, 이중 일부는 포로가 된 뒤 바로 학살당하고 상당수는 발미 전투 직전 감옥을 습격한 폭도들에게 살해당합니다. 극히 일부긴 해도 살아서 스위스로 돌아간 사람도 있고요.
  • 아빠늑대 2017/03/11 10:33 #

    지금 보니 그러네요. 영문판을 확인하니 살아남은 숫자가 300명이나 되는군요, 왕이 군량 호송단으로 보낸 숫자가요. 600명 정도가 전투 중이나 항복한 뒤 살해당한걸로 나오네요. 100여명은 탈출하고 200여명은 또 후유증이나 학살로 사망하고... 국내 책에 나온 내용은 어디서 나온건지 모르겠네요. 일본판 번역이던데 일본판 자체에 그렇게 된건지.
  • 슈타인호프 2017/03/11 18:08 #

    워낙 오래 전부터 왕을 지키며 싸우다가 전멸한 걸로 나와서 원 출처가 어딘지도 모르겠습니다.
  • 호랭총각 2017/03/11 14:46 #

    배신의 아이콘이었던 스위스 용병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신뢰의 아이콘이 되는군요.
  • 아빠늑대 2017/03/12 11:28 #

    사실 다른 용병들이 밥먹듯 배신을 때린걸로 봐서 배신 때렸다고 용병일 못하는건 아닌 것 같은데 그 왜 너무 소심해서 "xx하면 어쩌지? 그려면 oo할텐데"라고 상상으로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사람 같습니다. 크흘~
  • 슈타인호프 2017/03/12 14:11 #

    그게, 다른 용병들은 대체로 내 한 몸...차원인데 스위스 용병들은 "나중에 내 동생, 아들, 조카, 동네 동생들도 다 이 깃발 아래에서 이짓 해야 하는데..."하니까 신뢰 축적의 필요성이 더 컸을 겁니다.
  • 아빠늑대 2017/03/12 18:01 #

    슈타인호프님/ 스위스 용병들은 그게 좀 강박적인 것 같아서 말이죠. 보통의 용병이야 이 용병단 저 용병단 가면 그만이지만 용병대장쯤 되면 그게 아닌데 그들도 딱히 신뢰할 수 있는건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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