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의 라이벌, 스위스 용병 vs 란츠크네흐트 (8) by 아빠늑대

당시 전쟁이라면 용병을 사용해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소수의 전사들 그러니까 기사들이나 영주들이 전쟁을 벌였고 규모도 고만고만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머릿수를 늘리는 쪽이 유리함을 깨닫게 시작했습니다. 비싼 기사들에 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지만 장궁병들은 그 몫을 다 했고, 돌진하는 기사들의 파괴력이 엄청나다 해도 빽빽하게 밀집된 창병의 벽은 뚫기 힘들었다는거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빽빽한 창병의 벽도 외부에서 긁고 긁어 부숴뜨리는 방법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이 란츠크네흐트가 잘 써먹던 창병과 총병의 조합 같은거였죠. 문제는 이런식으로 보병전이 될 경우 필연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병력이 많아야 뭘 할 수 있는거고, 병력이 많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엄청난 전쟁비용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보급과 같은 수학적 계산이 필요한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고 말입니다.

당시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 "돈 없는 곳에는 스위스 병사도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처음으로 지적한 곳은 바로 '네델란드'였죠. 장삿꾼이 드글드글 해서 엄청난 번영을 이룬만큼 장삿꾼들의 계산법은 이런 용병의 문제도 파고들었던겁니다. 아! 참고로 당시 네델란드는 합스부르크의 영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네델란드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신대륙에서 가져오는 금은의 총량보다 더 많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하는군요. 아주 알토란이었던거죠.

그런데 스페인은 광신 카톨릭이고 네델란드는 신교도들이 많았죠. 사실 장삿꾼들은 어느정도 합리성만 보장해 주면 신교건 구교건 상관없었을겁니다. 그런데 스페인의 합스부르크가는 "광"신도 라는 말을 두번씩 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위그노 학살에 기뻐하며 기념 주화를 발행하고, 농업을 장려하면서 엉뚱하게 농업에 뛰어난 무어인들을 탄압했습니다. 거기다 무적함대 만든다고 나라에 괜찮은 나무들은 다 베어내 농업에 악영향만 미쳤죠.

유대인이 싫다고 유대인들을 추방해 버리는 통에 금융 시스템이 망가져 신대륙의 금은은 엉뚱하게 국제 금융업자들이 맛을 보고 있었고, 펠리페 4세쯤 되면 스페인 중부의 타호강을 뚫는 운하를 건설한다면서 이 사업의 타당성 검사를 신학자 협의회에 맞겼습니다. 이유는? "만일 신이 이 강들을 운행 가능하게 할 의도가 있으셨다면, 신은 강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라는 말에 넘어가서 말이지요.

... 스페인 경제 어떻게 되었을까요? 말하면 입만 아플겁니다. 이렇게 되니 돈줄이 네델란드가 되었고 여기서 주구장창 빼먹기 위해 각종 세금을 부여했는데 1%의 재산세, 명의 병경에 5%의 인지세, 모든 상품에 10%의 소비세, 도로에 면한 건축물의 넓이세 (그래서 네델란드 전통 건축물들의 폭이 좁습니다) 등등... 거기다 이단으로 몰아서 전 재산을 강탈하고 신교도는 또 그것대로 탄압해서 펠리페2세때 알바공은 1만 8천명을 처형했더랬죠.
<결국은 이겁니다 이거>

당연히... 반란이 납니다. 1568년 "로마 교황보다 투르크가 낫다"라는 발언들을 하며 북부 7개주가 들고 일어나는데 이 전쟁은 이후 무려 80년을 끌게 됩니다. 자...이 80년간의 독립전쟁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건 그것보다 군제개혁이 이때 일어났다는 겁니다. 마우리츠의 군제개혁인데요, 기본적으로 스페인 그러니까 합스부르크가는 부유한데다가 군대도 막강합니다, 실전경험도 많아요.

이런 군대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똑같이 돈 써서 군대 마련했다가는 가랑이 찢어집니다. 그래서 헐렁한 용병대가 아니라 직업 군인을 양성하는 방법을 쓰죠. 그리고 그 기본은 정해진 때 정해진 급료를 지급한다. 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대로 병사들의 기강 확립에 대단한 영향을 미치게 되죠. 심지어 이들에게는 공병의 업무도 주어졌는데 란츠크네흐트를 비롯한 용병들은 "이런 일은 우리 자유전사의 일이 아니다"라며 거부했던거였죠.

하지만 전투때 참호를 미리 파두고, 미리 지형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은 전투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밀집형의 방진 대신 다수의 종렬로 편성했는데 이런 편성으로 한 중대당 백명 정도로도 충분했고 (밀집 방진은 최소 4~5백명 가량이 필요) 나머지 보병들은 총기로 무장하고 나란히 배치해 뒀다가 전황에 따라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장교 또한 전투시에는 말에서 내리도록 했고, 명령 계통이 철저하게 이뤄지도록 만들었죠.
<떼르시오는 유럽의 유행이었고, 위력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런 결과로 용병대가 1천명의 병사를 배치하는데 1시간이 걸렸다면 네델란드군은 20분만에 해치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방법들로 인해 스페인의 떼르시오에게도 밀리지 않는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죠. (사실 이런 떼르시오는 보기에 좋을지 몰라도, 전술이나 무기 사용법이 모자란 무지렁뱅이들을 전투에 적합하도록 하기 위한 호구지책중에 하나였죠. 당연히 용병들도 이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우리츠의 군제개혁으로 보병, 기병, 포병의 군제가 확립되게 됩니다.

이런 개혁의 결과 스페인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하게 되었고(오해 살만하다 싶어서 수정합니다. 연전연승이 아니라 승기를 잡았고로 바꾸겠습니다) 분위기를 보던 엘리자베스의 지원까지 얻게 됩니다. 이때문에 무적함대가 영국을 치러갔다가 털려버린 사건은 예전 글을 복구하게 되면 보실 수 있을겁니다. 4대해전 말이지요. 이런식으로 군제개혁을 통해 전투력도 좋은 상비군이 용병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유럽의 군주들이 깨닫게 되고 이후 이것은 국민군으로 변화하게 됩니다만 이건 또 한참 후의 이야기.

그리고 군제개혁이 일어나고, 마우리츠 이외에도 구스타프 아돌프의 군제개혁 같은게 일어났다고 해도 일단 용병이 밥 벌어먹는데 필요한 전쟁은 계속 이어졌고 개혁이 일어났다고 선을 딱 그어서 오늘부터는 상비군이에요 용병들은 사라지세요~ 하는게 아닌 다음에야 그들의 필요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 전선에는 상비군을 동원한다지만 식민지나 기타 여러 곳에 파견하는 군대는 용병이 또 쉽고 간편하잖아요? 그래서 상당기간 용병들은 유럽 군주들의 체스놀이에 동원되었습니다.


- 계속.

덧글

  • 무지개빛 미카 2017/03/19 21:25 #

    결국 상비군이란 것이 험한 일 시키고 돈 쬐끔 주어도 부려먹기 편한 사람들을 국가단위로 확보한 것이군요.

    한데 벌써부터 용병대의 식민지, 해외주둔이라니... 왠지 시대를 너무 빨리 앞서가는 느낌마져 듭니다. 2차 대전 당시 20~30년은 걸려야 되는 전차의 개발속도가 1,2년이 되면 금방 구식이 되는 시대같은...
  • 아빠늑대 2017/03/20 13:18 #

    사실... 극단적으로 보면 그렇기는 하죠. 뒤에 더 이야기 하겠지만 완전히 그런건 아니었고, 사람들도 전쟁 때문에 지치고 지쳐 뭔가 수를 내야겠다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용병대의 해외 '주둔'이라기 보다는 '파견'정도죠. ^^ 제내들 거기에 짱박혀 있게하면 손해가 아만저만 아닙니다.
  • 자유로운 2017/03/19 22:52 #

    이러니 저러니 해도 용병은 역시나 칩샷이군요.
  • 아빠늑대 2017/03/20 13:16 #

    돈 없는곳에는 뭣도 없심다~ 돈이 최고죠!
  • 뚱뚜둥 2017/03/19 23:28 #

    마우리츠의 네델란드 군대가 스페인에게 연전연승이라고 말하기는 힘들텐데요?
    연전연승이라면 벨기에가 따로 떨어져 나가고 네델란드 독립도 수십년이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 아빠늑대 2017/03/20 13:16 #

    오해가 될 수 있겠군요, 재미있으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수정하겠습니다 ^^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