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총기오발 사건 by 아빠늑대

때는 영조 4년 3월 16일. 창덕군 단봉문 앞에서 단발의 총성이 울립니다.

애시당초 궁 내에서는 총성이 들릴 이유도 없거니와, 총성이나 냉병기의 다툼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그대로 '역모'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니 전 궁이 즉시 긴장 상태에 들어가고 원인을 파악하게 됩니다. 사실 이때 조선의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못해서, 경종의 죽음에 영조가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퍼져 있었고, 이인좌 등이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다는 정보가 궁으로 전해지는 상황이었으니 이때 들리는 총소리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일 궁궐의 보안을 담당한 훈련도감은 즉시 출동해 총성을 낸 범인을 체포했고 그는 좌부 좌사 중초군 이진삼이라는 사람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궁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일까요?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진삼 스스로도 이 상황에 대해 난감해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훈련도감에서 상황을 조사해 본 결과는 이러했습니다.
<빨간원이 단봉문, 작습니다>

전날 궁내 경비를 담당한 숙위군을 교대하기 위해 본래 금위군이 들어왔어야 했는데 상황상 대신 훈련도감 소속의 포수들이 그 자리를 지키기로 했던겁니다. 그리고 그 중에 이진삼이라는 사람이 들어가 있었던거죠. 그런데 그가 보초 교대하는 시간이 마침 그 시간대에 궁궐에 업무를 보러 오는 사람들과 납품업자들 등등이 몰려들었고,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을 막느라 오자마자 열일하던 중 이진삼의 총구에서 발포음이 발생하게 된거죠.

그런데 지금도 총기를 다룰때는 안전에 레버를 돌려두고 오발이 나지 않도록 하는데 조선시대는 그런게 없어서 발사가 되었던걸까요? 아닙니다. 이진삼도 사실 출발할 때는 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 당연히 실전과 같은 장소이기 때문에 군막에서 나올때 부터 실탄을 장전해 둡니다. 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총구를 종이로 막아 혹시 모를 불똥이 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두죠. 전면 총구에만 불똥이 튀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화약을 올려두고 화승을 접촉해야 발사가 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딱 근무교대 시간이 딴 사람들 근무교대 시간과 겹치고, 왕실 업자들이 출입하게 되면서 그 좁은 단봉문에 병목현상이 생겼던 겁니다. 기존 근무자가 있던 상황이라면 일단 사람들을 진입부터 막고 있겠지만 근무 교대 시간이라 어수선한 틈을 타서 더 늦어지기 전에 자기일을 보려는 사람들이 밀려들었던거죠. 그리고 교대 근무자들은 난데없이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열일을 했던거고요.

문제는 그렇게 열일하는 와중에 사람들에 치이면서 총구가 거꾸러졌고 몸으로 사람을 막다보니 여러번의 충격에 총구를 막고 있던 안전 종이가 빠져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우연하게도 사람들이 오가며 들고 있던 횃불의 불똥이 또 마참 우연하게도 그 총구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화약이 폭발했던 것이었죠.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또 우연히 조정 분위기도 흉흉한 상황이었으니 이진삼은 죽었다 싶었을 겁니다.

실제로 궁궐에서 총소리를 낸 경우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고, 훈련도감에서 진상조사를 한 뒤 보고를 할 때도 이진삼은 사형에 처하고, 관리 감독을 맡은 이홍장이라는 사람은 곤장에 처하고, 이렇게 보고를 하는 자신도 죄가 있으니 벌을 받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뭐, 영조는 "법대로 하면 사형이기는 한데 작정하고 한 일도 아니고, 실수로 안전 조치를 빼먹은 것도 아니니 사형은 좀 너무하다 봐줘라"라고 하셨고 이진삼은 목이 떨어져나갈 위기 (실제로 목이 잘릴)에서 곤장 50대로 감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감독을 하는 이홍장은 30대의 곤장을 피할 수는 없었죠. 뭐... 어쩌면 30대가 아니라 50대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알 수는 없겠죠.

그럼 이걸로 끝났을까요?


후훗... 군대가 어디 그렇습니까? 그날 보고에 따르면 병조 낭청이 <궐내 각처의 입직 군사를 야순검(夜巡檢)하겠습니다~~> 라고 보고를 올리지요...후후후후후훗. 순검... 맨날 하는 순검... 후후훗. 그날 쪼인트 까인 사람들 많~~ 았을 겁니다.


덧글

  • 정호찬 2017/06/10 14:03 #

    역시 이진삼은 시대를 뛰어넘은 고문관이군요. 대한민국에도 비상사태애서도 군번줄 따지는 종자가 있습죠.
  • 아빠늑대 2017/06/10 14:53 #

    너무 그러지 마세요, 나름 일 잘해보려다가 그랬다니까요? 후훗
  • ALT F4 2017/06/10 14:38 #

    뭐 현대에도 심심찮게 위병소 공포탄 터치는게일상이라서
  • 아빠늑대 2017/06/10 14:53 #

    하지만 사형당할 일은 아니지요 흐흐흐
  • 호랭총각 2017/06/10 16:16 #

    무릎 좀 까였겠네요 ㅋㅋ
  • 아빠늑대 2017/06/10 18:39 #

    아마 가열차게...
  • 자유로운 2017/06/10 22:04 #

    그래도 고의로 그런거 아니라고 조인트 깐걸로 끝인거 보니 영조가 관대하게 넘어갔네요.
  • 아빠늑대 2017/06/11 00:57 #

    꽤나 그렇죠. 왕조시대에 왕궁에서, 더더구나 시절이 수상할 때 일어난 사고인데 꽤나 봐준거죠. 다만 정신 차리라고 조인트 까이는건 어쩔 수 없었음~
  • 긁적 2017/06/11 00:15 #

    장형 50대가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사형에서 감형된 것이니 (...)
    근데 참 운도 없었네요. 진짜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규정 지킬 거 다 지켰는데 규정상으로 대응 안되는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일이 터졌으니.
    PS : 황군의 후예이기 이전에도 그랬군요. ㄲㄲㄲㄲ
  • 아빠늑대 2017/06/11 00:56 #

    왕조시대인걸요. 황군과는 상관없어요, 요즘에도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무죄가 되는건 아니잖아요.
  • 남중생 2017/06/11 19:45 #

    아하, 단봉문! 정말 작습니다. 혜화에서 창덕궁 지나 서대문 쪽으로 가는 버스 탈때 지나치는데, '저것도 궁궐문인가?' 싶을 정도로 작습니다. 그리고 붉은 봉황이라는 이름 그대로 새빨간 색깔입니다.
  • 아빠늑대 2017/06/12 13:21 #

    작지요, 사실 그런 문들이 실생활에 가장 많이 쓰는 문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저런 일이 터지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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