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썬더 P-47D 운용 방법 by 아빠늑대

P-47D 성애자로서 이 기체가 평가절하 되는 것을 참지 못해 기본적인 운용법을 알려 드립니다. 이 기체는 뚱뚱해서 저어얼대 턴 파이팅에 휘말려서는 안됩니다. 이 기체는, 아니 미국의 대부분 기체는 세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첫번째는 고도의 확보. 두번째는 고도의 확보!, 세번째는 무조건 고도의 확보! 입니다.
다행이 최근에는 이 기체가 "요격기"로 분류 되어 시작부터 1000미터 입니다. 이때 바로 WEP를 주구장창 켜고 20도 전후의 각도로 무조건 올라가는 겁니다. 아래서 뭔 일이 생기든, 앞에서 적이 오든 말든 일단 무조건 올라가는 겁니다. 어차피 고도를 확보 못하면 죽는건 매 한가지 입니다 무조건 올라가는 겁니다.

왜 올라가야 하는지는 고도별 속도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2000 이하에서는 그냥 속도가 팍팍 떨어집니다. 3000을 넘어가면 어쩐지 속도 저하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4000을 넘기면 어? 속도가 더 이상 줄어들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주 조금씩 올라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6000미터까지 올라가면 수평 속도도 600km를 넘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못해도 6000미터 까지는 올라가 줘야 뭘 합니다. 더 올리면 더 좋습니다. 이건 그런 기체입니다.
그리고 6000미터를 넘어가면 각도를 10도 아래로 줄여서 속도를 얻습니다. 400km 이상이면 할 만 합니다. 이때쯤 되면 주변에 적 폭격기가 보이거나 혹은 내 P-47 뒤에 알짱거립니다. 그럼 따라가서 요격해 줍시다. 폭격기의 종류에 따라 아래에서 위로 칠 것인가? 위에서 아래로 칠 것인가 달라집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도 똥줄 타가면서 올라가기에 폭격기 사냥은 대부분 한대 이상은 힘듭니다.

다음은 전투기 사냥. 일단 나와 같거나 살짝 낮은 고도에서 알짱거리는 적기는 무조건 내 기체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되 못한다면 정면승부를 유도해야 합니다. 한번이라도 턴을 하면 내 기체는 엄청난 에너지 손실이 뭔지 알게 됩니다. 그나마 고도가 높으니 다른 걸 해볼 수 있는 기회라도 나오는데 3000미터 이하라면 도망가도 따라 잡힙니다.

하지만 많은 전투기들은 대부분 나보다 낮은 고도에서 아군기와 뒤섞여 있을 겁니다. 그 위로 고도를 낮추지 말고 달려가세요. 그리고 내 기체 바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봤을 때 4.0 정도의 고도차가 있다면 살살 내려가면서 붐앤줌을 시도합니다. 만약 붐앤줌이 실패하면 턴할 생각말고 무조건 다시 고도를 높여야 합니다. P-47D는 떨어질 때 700~800 속도에서도 버팁니다. (그보다 더 빠르면 상승을 못해 죽는 수가 생깁니다. 그러나 보스트윅 골드 기체는 고속 플랩이 있어서 고개를 들 수 있기도 하죠)

첫번의 붐앤줌에서 적기를 잡지 못하면 다시 적보다 2000~3000미터까지 더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수평을 잡아 속도를 얻은 다음 또 400km 이상의 속도가 나오면 적기를 향해 다시 돌진합니다. 이결 몇 번에 걸쳐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상 P-47D로 잡는 적기는 많아야 3대 이상이 되기 힘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밖에 운용하지 못하는 기체입니다. 하강 속도가 800이상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는 것, 고고도에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 이외에는 모두 다 동티어보다 떨어집니다.


그리고! 지상 파밍은 절대 하지 마세요. 지상 공격이 가능한 시점은 아군이 적기를 쓸어버려서 아군과 적이 2배 이상 나거나 해서 더 이상 내가 뭘 하기 힘들때나 하는 겁니다. P-47D는 2000미터 이하에서는 폭격기나 별 반 다를바 없습니다. 초장부터 파밍하겠다고 나서면 대공포 하나 잡고 적기의 좋은 먹잇감이 될 뿐입니다.

무조건 고도! 그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PS: 참고로 P-47D-25나 27이나 M 보스트윅이나 다 거기서 거기로 운용합니다. 일단 고도가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는 모두 없는거나 마찬가지. 다만 이번에 나온 N 형은 못 몰아봐서 뭐라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노예생활이 익숙해지면 by 아빠늑대

노예가 노예 생활에 익숙해 지기 시작하면 슬슬 자신을 묶고 있는 철구의 무게를 가지고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한국이 덴마크 보다 끈질긴 면이 있단다... 그런데 근거가 있을까? 아니면 뇌피셜일까? 그래서 알아봤다...

그렇다능!! 저 나약하고 게을러서 우리보다 더 짧게 일하고, 더 많이 놀고, 치열하지도 못한 온실속 화초같은 저 놈들! 겨우 우리보다 1.6배 생산성만 높을 뿐인 거시다!!. (2016년 기준)


그런데 우리는 왜 생산성이 낮지?

답은 뉴스에 있더라. 우리가 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치킨, 슈퍼마켓, 식당, 미용, 세탁소 등 생계형 자영업자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들 업종이 속한 유통·운수·음식·숙박업의 자영업자 비중은 42%, 기타서비스업의 자영업자 비중은 37.9%로 각각의 OECD 평균 15.8%, 17.4% 보다 2~3배 많았다" 라고 한다.

생활의 현장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주먹구구로 영업을 하고, 결국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 먹기만 하고 과잉된 영세 자영업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다가 몰락해 버린다는 의미고, 그것 자체가 우리나라 생산성을 갉아 먹고 있다는 거시다~.


고양이의 본능 by 아빠늑대


AD100 년경 로마시대 기와. 기와장이가 기와를 말리는 그 잠깐의 틈에 고양이는 기와에 발자국을 찍어 버렸음.
AD 1445년. 필사자가 글을 다 쓰고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잉크 묻은 발로 글씨를 지워버림.
현대 시대 이후로도 여전히 변함없이 마우스 작업이나 키보드 타이핑을 방해하고 있는 중. 그렇다!! 고양이는 DNA 내부에 인간의 작업을 방해하라는 유전적 코드를 가지고 수천년간 인간을 방해하기 위해 태어나서 살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남한산성 보고 왔음 (스포없음) by 아빠늑대

영화관에서 팝콘과 탄산을 마시지 않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나, 이번에는 오징어와 생수로 성공을 했음!! 이번에도 극장은 경주 보문단지의 시네큐 입니다. 이제는 멀리 울산이나 포항으로 나가지 않아도 적절한 수준의 문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네요. 다만 아직도 만들어 진지 얼마 되지 않은 탓도 있고, 경주 자체의 인구가 적은 문제도 있어서 그리 활발한 모습은 없네요. 어쩌면 제가 간 시간대가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스포는 없습니다. 뭐, 인조가 성 밖을 나가서 삼궤구고두를 헀다는 말을 하는 것도 스포라고 해버리면 어쩔 수 없으니 애초에 보지를 마시길.


일단 사극류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논쟁이 조금 더 배틀 스러웠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정통 사극이라지만 다큐멘터리는 아니기에 양념을 친 것들도 분명히 있는 바, 랩 배틀이 조금 더 가열찼더라면 하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이보다 더 나가버리면 자칫 영화가 어지러워 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적절한 밸런스를 조금 더 높여 볼 수도, 낮춰 볼 수도 있겠지요.

약간의 신파적 요소가 없지는 않으나 과하지 않기에 무리 없는 수준이었고, 역시 연기자들이 내공이 있다 보니 현대어로 하는 대사임에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도 덜했습니다. 다만 <영상>은 조금 과하게 까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있는데 뭐 인조가 <영상의 목을 베자는 상소도 있다>는 말을 해 줌으로서 발암까지는 안갑니다. 보기에 따라서 발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특히 병권을 쥐고 한가락 해 보려 할 때 정도는 그리 느낄 수도 있겠어요.

그리고 영상미도 좋습니다. 애초에 영화 내내 겨울이라서 그런지, 상황이 보여주는 냉혹함이 잘 살아 있어요. 요즘에는 우리 사극들도 수준이 높아져서 옛날처럼 노비가 다림질한 옷을 입고 다니는 수준이 아니니 매번 사극을 볼 때 마다 흥미를 잃어버릴 일이 없네요. 초반에 노인을 베는 장면은 영화 스토리 보다는 쓰러진 노인 아래 피는 혈화가 더 아름다워 보이던데 제가 조금 변태끼가 있기는 한가봐요.

아무튼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취향이 아니라면 지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격한 전쟁씬도 없고, 자극적 장면들도 덜하니까요. 하지만 저에게는 딱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올 가을에는 볼 영화들이 봇물 터진다고 하던데 포인트 열심히 모아둬야 겠습니다.



PS: 그건 그렇고... 내일 출근하기 싫음... 너무 놀았음... OTL


바이온트 댐 참사 by 아빠늑대

이탈리아 북동쪽, 베니스에서 북서쪽으로 100km 를 더 들어가면 바이온트 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1차 대전때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로 부터 빼앗은 지역인데, 대충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쪽은 산이 높고 골은 깊은 지형입니다. 여기에 피아베 강 지류가 있는데 이탈리아의 사업가 주세페 볼피는 여기가 돈이 될꺼라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일단 골이 깊으니 물을 많이 가둘 수 있고, 이 지역에 수력 발전을 시작하면 근처 밀라노 공업지대에 전력을 판매할 수 있어서 큰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거죠. 주세페는 전기, 수도, 철도 등의 기간 산업으로 크게 한 몫 잡은 사람인 만큼 이런 빅 찬스를 놓칠 수 없었죠. 실제로 계산해 본 바, 이 좁은 협곡을 막으면 물의 양만 1억 1500만 m3 (부피의 단위 루베) 가량의 수량을 저장할 수 있었고 이 정도면 주세페의 인생 역작이 될 수 있는 토목공사였죠.

본래 1920년 부터 계획했지만 무솔리니가 잘 나가던 시절에 뽕짝 뽕짝 하다가 그가 거꾸로 매달린 뒤에 잠시 중단되었죠. 하지만 이정도 규모의 프로젝트라면 뒤에도 욕심을 안낼 수가 없습니다. 전쟁 이후 다시 타당성 검사를 시작했고 1957년 부터 본격적으로 댐 공사가 시작됩니다. 헌데 문제는... 건설 전 조사 과정에서 공학자들이 많은 논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의 지형이 석회암, 조금 더 설명해 보자면 돌로마이트라는 암석이 계곡 양쪽에서 경사를 이뤄 내려가고 있었다는 겁니다.
<딱 봐도 지형적으로는 적은 공사비, 큰 효과가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지형이 단단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미 댐을 건설하기 전에도 자연적으로 지역 지층이 계곡 아래로 흘러내리는 현상들이 존재했었습니다. 당연히 물이 가득할 경우 이렇게 흘러내린 토사들이 산사태처럼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공학자들이라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죠.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걸린 일에 비관적으로 보기 보다는 낙관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 였죠. 학자들은 정치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을 감안해 "계곡에서 그런 산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음" , "산사태가 일어난 다 해도 흘러내린 암석이 작아 큰 위험을 끼치지 못할 것" 이라는 보고를 해 버립니다.

물론 시민단체들은 이런 판단에 동의하지 않았죠. 석회암 지형이 물에 녹으면 형태가 망가지는 것은 예상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미칠 수 있으니 이 댐 건설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외쳤죠. 그러나 정,경이 유착된 상황에서 그들의 말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정치권은 댐 건설에 부정적인 언론 보도는 강제로 중단시켰고, 반대를 외치는 시민단체나 지역민들을 빨갱이 (파르티잔)으로 몰았습니다. 빨갱이들이 이탈리아의 발전을 막고, 공산화 시키려는 음모라는 거죠.

결국 이런 협잡에 의해 댐은 1960년 결국 완공되었습니다. 실제로 이 댐은 댐이 완공되기 전인 1960년 2월 부터 벌써 물을 서서히 채워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해 3월이 되면 물 높이가 130m 까지 올라와 있었죠. 그리고 주변의 지형 변화도 이미 목격되기 시작했습니다. 댐 수위가 170m에 이를 때, 주변 지층이 하루 3.5cm 정도의 이동을 하는 것이 관찰되었던거죠. 그리고 그와 동시에 2km에 달하는 거대한 절리가 댐 쪽으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절리 : 자연 현상에 의해 생기는 거대한 틈, 종류가 많으니 검색해 보세요)

그리고 그 해 11월에는 아예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10분 사이에 저수지 바닥으로 쓸려 내려가 버렸습니다. (70만 m3 라고 함) 전문가들은 이런 일이 있어도 작은 덩어리가 천천히 진행될 것이라고 했는데 정작 실제로는 엄청나게 큰 덩어리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려간 것이었죠. 일은 심각했습니다 바이온트 댐의 관리자들은 급히 수위를 낮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댐의 수위를 135m 까지 내리자 지층 이동은 하루 1mm 정도로 줄어들었죠.

일이 심각해 졌지만, 한 번 일에 손댄 그룹들은 절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죠. 댐 사용을 중지시키는게 아니라 "물을 낮추니 느려지네? 그럼 적당히 조절해 가면서 전기를 생산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하는 것이었죠. 결국 현장에서는 사면의 이동 속도를 봐 가면서 물의 높이를 다시 높이기 시작하는데 1961년 5월 부터 1962년 6월까지 다시 185m 가량의 수량을 확보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지층의 이동이 빨라지지 않았고, 이에 다시 11월 경에는 수위를 235m 까지 올립니다.

이렇게 슬슬 눈치 봐가며 물을 조절하는데 의외로 이동 속도도 느리고, 반응도 괜찮은 것 같으니 간덩이가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 요래 요래 하면 댐을 잘 쓰겠구만 뭐~" 라고 말이죠. 이렇게 부어오른 간덩이로 1963년 4월 경에, 이번에는 빠르게 함 해보자! 라며 순식간에 수위를 231m까지 올렸습니다. 그리고 올리면서 지층 이동 속도를 보니 하루 0.3cm 정도 증가한 정도 밖에 안되는 겁니다. 이제는 써먹어도 될 것 같다는 안이한 생각을 가슴 속에 품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그해 6월이 되면 수위를 240m 까지 올려버립니다. 그리고 이동 속도는 0.5cm 정도 증가했는데, 사람은 0.xx 단위의 변화는 몇 번 보게되면 별거 아닌 것처럼 여기기 되는 때가 오죠. 매번 몇 십 mm 씩 증가하는게 실제로는 다 모았을 경우 꽤나 되지만 하루 변화량으로 보면 컨트롤 가능한 것처럼 받아들여 진 것입니다. 이후 잠시 수위를 낮췄는데 이동 속도는 더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별 것 아니라는 생각에 9월쯤 가면 아예 수위를 245m 까지 확 올려버립니다.

그러자 이동 속도도 3.5cm 까지 확 증가해 버립니다. 학자들은 "아~ 요건 안되겠구나, 이제 수위를 낮춰 속도를 늦춰야지~" 라고 생각하고는 9월 말에는 수위를 235m까지 내리는데... ... ... 속도가 안 줄어듭니다. 심지어 하루 이동 속도가 20cm 까지 엄청나게 늘어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1963년 10월 9일 22시 38분. 계곡에 붙어있을 힘을 잃어버린 암석 층은 시속 95km 의 속도로 급격하게 댐의 바닥을 향해 들이치기 시작했고, 불과 45초 정도에 댐 속에 고인 물들을 위로 밀어내 버렸습니다. 계곡을 따라 1.8km 정도의 저수지가 순식간에 가득 채워졌고 절리된 암석들이 만들어낸 충격파는 200~300m 의 민물 쓰나미를 만들었습니다. 이 쓰나미는 댐 맞은편의 작은 마을을 순식간에 덥쳐 버렸고, 심지어 1.5km 나 더 진행된 이후에도 파도의 높이는 70m나 될 정도였습니다.

이 인재로 인해 2600명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망해 버렸고, 마을 하나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들은 이런 재해가 있을 때 어떤 자연의 경고도 보지 못했고 (바다의 쓰나미는 물이 빨려 나가는 징조라도 있지만 인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알려주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들이 사망하고 마을이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6분이 넘지 않았습니다. 이 마을의 이름은 롱가르네. 그러나 2600명의 사망자는 이 마을의 숫자였을 뿐이고, 실제로 주변의 마을들인 피라고, 리발타, 빌라노바, 파에 등등의 사상자를 포함하면 5000명이 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엄청난 사고 이후 이탈리아는 이 지역을 2002년까지 접근 금지구역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유네스코로 부터 "인류 역사상 기억해야 할 사고"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6분만에 마을과 사람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그 뒤의 책임은 누가 졌을까요? 건설을 추진했던 주세페는 이미 노환으로 죽고 없었고, 1968년 정경유착형 하청공사 및 설계미숙에 관련한 법정 진술을 기다리고 있던 설계자 마리오 판치는 진술 하루 전 자살을 하게 되면서 사건 자체가 흐지부지 되어 버립니다. 사실 마리오 판치의 경우 이 댐을 설계할 때 부터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댐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기도 합니다만, 증언자가 사라자게 됨으로서 결국 책임의 소지는 녹아 버린 것이었죠.

결국... 우리는 지금 우리 땅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지 않을까? 를 생각해 보는 건 무리한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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