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닭요리 by 아빠늑대

치킨을 시켜다가 뜯고 있자니 닭요리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서 찾아 봤습니다. 사실 요 닭이라는 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키우기 쉽고,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괜찮은 맛과 칼로리와 영양을 주는 놈 아니겠습니까? 당연하게도 조선시대에도 닭을 잡아 먹었지요. 그런데 후라이드를 해서 먹지는 않았겠지요, 기름은 귀합니다.

그렇다면 주로 나오는 닭 요리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장 첫번째로 죽으로 만들어 먹는 것. 이것도 참 동서양을 막론하고 치킨 스프나 닭죽이 있는 걸 보면 가장 편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산림경제>를 보면 일단 먼저 닭을 물에 넣고 삶아서 푹 퍼지도록 익힌 뒤 살을 발라내고, 국물은 체로 기름과 불순물을 걸러내서 따로 멥쌀과 발라낸 살을 넣어 다시 끓인 뒤 소금간을 합니다. 취향에 따라서는 달걀을 깨 넣고 다시 삶는 레시피도 있었다는군요.

다음으로 조금 고급스럽게 먹는다면 칠향계로, 일곱가지 나물을 넣고 삶은 요리인데 <산림경제> <정일당잡지>등 여러 책에 많이 소개된 흔한 음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닭을 씻어서 내장을 빼고, 그 자리에 삶아서 쓴 맛을 뺀 도라지, 생강, 파, 천초, 간장, 식초, 기름을 써서 섞은 뒤 닭의 뱃속에 넣고, 이걸 항아리에 넣어 기름종이로 입구를 봉한 뒤 다시 가마솥에 넣고 찐다고 되어 있습니다. 닭 속에 들어가는 재료는 표고가 되기도 하고, 순무나 토란, 다시마를 넣기도 했다는군요.

또 수증계라는 닭 요리가 있는데 이건 <음식디미방>에 나온 것으로 암닭을 털과 뼈를 뽑은 뒤, 퍽퍽살과 엉덩이 살을 두들겨 준비를 해 두고, 솥을 달군뒤 기름을 반종지 정도 넣고, 거기에 두드린 고기를 볶아서 익힌 다음, 거기에 물을 가득 부어 끓이면서 토란 한되를 같이 넣고 어느정도 삶아지면 고기와 나물 등을 모두 건져내고 그 국물에 간장을 넣어 다시 닭을 넣고 끓여 잡내가 사라지도록 한답니다. 그런 다음 전분을 물에 푼 것과 오이 썬 것을 넣고 실파와 부추를 넣고 다 익으면 넓은 대접에 벌여 놓고는 국물을 떠서 자박하게 붓고난 뒤 생강이나 후추로 데코를 한답니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음식디미방> 방법들은 이런 복잡한 것들이 많더군요.
<이게 수증계라고 하네요>

하지만 모두가 쪄 먹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구이 방법! 닭을 내장을 뽑아 손질한 뒤, 간장과 참기름을 속에 바르고 봉한 다음, 눅눅한 볏짚을 닭에 칭칭 감아 물에 담궜다가 모닥불 속에 통째로 던진답니다. 한시간쯤 지난 뒤 볏짚을 벗겨내고 재를 턴 뒤에 구워진 닭을 소금과 장에 찍어 먹는다는데 오래 구우면 맛이 없어지니 적당하기 구우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닭튀김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오주연문장선산고>를 보면 튀긴 닭이 나오는데 참기름에 튀깁니다. 일단 닭을 손질해서 소금을 뿌려 간을 한 뒤, 바로 참기름에 넣어 튀기는데 참기름은 끓는점이 낮아서 저질품을 쓰면 금방 타버려 못 씁니다. 그래서 꽤나 괜찮은 고급 참기름을 써서 튀겨야 했으니, 지금 공산품 참기름 정도로는 힘들거니와 그 가격을 생각해 봐도 엄청나게 비싼 음식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재료들과 함께 닭을 찌거나 삶아 먹는 방법들도 나와 있습니다. 쇠고기를 속에 넣어 찐 음식들도 있고, 연포탕... 아! 지금 연포탕이라면 대부분 낙지를 넣은 연포탕을 생각하지만 이 당시의 연포탕은 주로 두부를 넣었습니다. 정약용은 이 음식을 좋아했는데 솔직히 지금 연포탕과는 맛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단 조선시대 닭요리에 마늘이 들어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이 닭 요리에 계란을 까 넣기도 하고, 양념은 주로 담백한 천초나 간장 정도에서 끝나고 속도 두부니 비린맛이 꽤나 있었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지금 남아있는 요리책들의 요리를 06년이었나? 그때 학자들이 음식 연구가들과 함께 복원한 적이 있었는데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맛에 맞지 않았다고 하죠. 요즘에는 맵고 짜고 양념이 꽤나 많이 들어가는 음식들이 많은데 당시에는 그런 것 보다는 주로 담백하고 재료맛 위주의 음식들이 많았던지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몇 서적에서는 병자를 위해서는 죽이 아니라 닭곰탕을 권하고 있고, 영계를 요리하는 방법과 노계를 요리하는 방법을 따로 자세히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농정회요>라는 책을 보면 늙은 닭은 앵두나무 가지를 교차시켜 솥 안에 넣고 그 위에 닭을 올리고 삶으면 살이 부드럽고 맛있게 삶아진다고 하는데 과연 꼭 앵두나무만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참! 그리고 조선시대 닭 요리에는 맥... 주가 아니라 탁주가 붙어 있었습니다. 맑은 술 보다는 탁주가 닭요리에 어울린다고 했다네요.

일본이 아니었으면 딴 나라에게 먹혔나? by 아빠늑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나라에게 먹혔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한반도 식민지화를 두둔하는 물타기를 한국 웹에서 간간히 봐야 하는 짜증이 있는데, 최근에는 좀 줄어든 것 같더니만 또 대가리를 쏙 쏙 밀어 올리는군요. 애시당초 한반도를 노리는 나라는 일본 이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첫째. 서구 열강들은 굳이 한반도를 어쩌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장이 큰 것도 아니고, 생산 기지로서 매력이 있지도 않습니다. 굳이 식민화 시켜서 자본을 투입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그냥 왕실 놔두고 꿀만 빨아먹으면 그게 더 큰 이익이 됩니다. 식민지화는 투자 금액보다 예상되는 이익 산출이 더 커야 합니다.

둘째. 일본이 안먹었으면 러시아가 먹었다는 일본의 주장. 시장으로서의 가치는 이미 첫번째도 이야기 했고,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을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는 정도인데 이미 발을 뻗은 요동반도쪽이 더 매력이 있고, 굳이 있어봐야 제주도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런건 조차로도 충분합니다. 돈을 더 쓸 이유가 없죠.

중국이나 여타 인접국들은 인접국이기 때문에 기득권 유지나 국경 안정화 등으로서 필요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별 이유가 없어요. 오로지 일본만이 제국주의 후발주자로 발 뻗을 자리가 절실하게 필요했고 그게 한반도가 된 겁니다. 실질적으로 일본이 식민지로 꿀을 빨려는 지역은 만주쪽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아니었다면 다른 나라가 먹었을 것이라는 어떠한 객관적 근거도 없습니다, 전형적인 타율성론 아니면 설명조차 못하는 부분이죠.

언제 쉬었을까 by 아빠늑대

조선시대 사람들은 언제 쉬었을까? 전에 궁녀 교대 근무때 말씀드렸다시피 직종에 따라서 교대 근무가 필요한 직종은 3교대 정도의 근무 타이밍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직종들은? 밤세 일하는게 아니니 주중에 나와 일하고 쉬어야 할건데 일주일에 한 번 쉬는 스타일은 서구에서 기독교 교리에 따라 정해진거고 (하지만 그 이전에도 그와 비슷하게 쉬었더랬죠.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한계가 비슷했던 겁니다) 조선에서는 조금 달랐죠.

이것도 직종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일에 한 번씩 쉬거나, 매달 1일 8일 15일 23일에 쉬기도 했습니다. 약 일주일 좀 넘죠? 그리고 절기 전환기에도 쉬었습니다. 춘분 추분, 동지 하지 이런 날들요. 설, 보름, 단오, 추석 같은 명절은 당연히 쉬는 날이었고, 가끔씩 임시 공휴일이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예를들면 임금님 생일, 왕자가 태어난 날, 기타 나라에서 축하를 하기 위해 정한 날 등이 그런 날들이었죠.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관공서 쉬는 날,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처럼. 민간에서는 쉬는 날이 딱 정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대표적인 명절에는 쉬었죠, 하지만 날을 정해놓고 쉬는 날이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농번기때는 쉴 수 있는 날이 적었습니다. 여름에는 하루가 다르게 잡초가 올라오는데 일 손 놓고 쉴 여유가 아니었죠. 대신 겨울철 농한기가 되면 겨울 나기 위한 소소한 일거리 이외에 대규모 작업은 없었기에 쉬는 날이 많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옛날 사람들의 휴식 기록들을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기계처럼 일할 수 없는 노릇인 것은 이미 수천년 전부터 알고 있었고 심지어 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 공사 인부들도 쉬는 날과, 병가, 연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지간한 기록들에는 모두 비슷한 주기로 일하고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오히려 사람을 일에 묶어둔 것은 근대 이후 자본주의가 태동하면서 노동자를 기계처럼 대우하던 때 부터였습니다.

그래서 일찍 근대화 된 나라들의 침략자들은 자신들이 식민지화 시킨 지역의 사람들을 항상 "게으르다"라고 기록하고 있죠. 웃기는건 영국의 예를 들면 근대화 이전의 농민들의 삶은 인도 농민들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연의 주기에 따라 일하고 쉬는 건 마찬가지지만 자본주의화는 그런 주기를 뒤틀어 버렸죠.


어쨌거나 이번 명절은 괴로운 명절이 아니라 즐거운 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이버 펑크 by 아빠늑대





Cyberpunk in Seoul

레벨300에 새들백 달아주다 by 아빠늑대

바이크를 바꾸고 나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역시 수납이었습니다. 사실 수납을 하려면 아메리칸도 스쿠터도 아니고 네발 차량을 사야겠지요. 하지만 막상 그런 생각으로 차를 바꾸고 나서 매번 가지고 다니던 안전장구들을 넣을 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난감함을 느끼게 됩니다. 전 기본적으로 헬멧 이외에도 팔 다리 보호대와 히트에어 에어백을 모두 하고 다닙니다.

문제는 이 상태로 일상 생활을 하는건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바이크를 타고 나가서 내릴 일이 없다면야 문제가 없지만 보통의 생활응 영유하는데는 이런 주렁주렁한 장구들은 불편하기만 합니다. 하여 기본적인 새들백 지지대를 일본에서 구입하고, 국내 몰에서 소프트 새들백을 주문해 달았습니다.

처음에는 가죽으로 된 새들백을 사려고 생각해 봤습니다만, 바이크가 할리처럼 커~다란 상태라면 조금 큰 가죽 새들백을 달아도 무리가 없겠지만 제 바이크는 그만한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제 바이크 크기에 맞는 새들백은 제가 원하는 정도의 물건을 넣으 수 없을 것 같아서 소프트 새들백을 골랐습니다.

일단 레벨 300 용 용품들이 국내에는 잘 없습니다. 초기 수입 업자들이 H2C 같은 업체 물건들을 들여오기는 했지만 제 스타일도 아니고, 새들백 거치대는 없고, 혼다의 순정 레벨 거치대는 무지막지 비싸고 해서 일본 사이트들을 뒤져서 호환되는 물건을 구했습니다. 정식으로 해외 배송을 지원하는 업체라 한국까지 물건이 오는데 4일이면 오네요. 요즘 중국이나 일본에서 오는 물건은 되게 빨리 옵니다, 문제만 없다면.

새들백은 국내에서 구입했습니다. 수제 헬멧 만드는 업체에서 (이 헬멧 제 머리에는 맞지 않습니다. 세상에... 프리 사이즈는 57cm 이하용인가요!! 옷도 그렇고!!!(버럭!!)) 11만원 정도에 판매되는데 제 쓰임에는 적당하다 생각되어 한쪽을 구매했습니다. 한쪽만 구매한 이유는 반대쪽은 머플러 쪽이라 이게 (아래 사진 이미지는 접은 상태입니다) 물건을 넣으면 크기가 더 부푸는데 머플러에 닫습니다. 합성 섬유 계통이라 뜨거운 머플러에 닿으면 녹아요. 그래서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이정도 크기의 바이크에는 양쪽에 새들백을 달면 그다지 멋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크기도 사실 그다지 크지는 않습니다. 딱 헬멧 하나 정도 넣으면 거의 다 차지합니다. 억지로 공간을 내서 보호장구를 넣기는 하는데 소프트니까 가능하지 가죽 타입의 하드한 것이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였을 겁니다. 바이크를 바꾸고 나서 전 팔다리 보호 장구는 조금 작은 물건을 새로 구입해서 쓰고 있습니다, 저 안에 넣을 수 있도록. 방호력은 낮아지겠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고, 어느 정도 현실에 타협을 할 필요가 있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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