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후 폭식 by 아빠늑대

머리로는 주의해야 한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그 순간에 정신줄을 놔버리는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어제가 그런데, 어제 저녁에 운동을 마치고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햄버거가 먹고 싶어지는 겁니다. 그냥 하나 사 먹으면 그만인데 갑자기 "하나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두 개를 시켰습니다. 일말의 양심은 셋트까지는 포기하게 하더군요. 그리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갑자기 노변의 왕만두 가게가 엄청나게 크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아... 사버렸어요... 그리고 집에 와서는 그걸 "아깝다!" 라는 핑계로 다 먹어버렸습니다. 폭식도 이만저만한 폭식이 아니죠. 그리고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 후회와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OTL


취향의 형성 by 아빠늑대

요즘 나오는 미인들도 분명 미인이기는 한데 끌리지는 않아요. 마치 요즘 가수가 노래도 잘 부르고, 기교도 높은데 안끌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때 부터 군대가기 전까지의 그 기간에 있던 경험들이 취향을 결정한 것 같아요. 미인상을 봐도 그런게, 예를들어 의천도룡기의 소소 역할을 한 구숙정. 그런데 의천도룡기의 소소 스타일이 좋은거지 구숙정이 좋은게 아니에요. 구숙정이 다른데 다른 역할로 나왔던 것은 제가 안본거라 별로에요. 똑같은 인물인데도 말입니다.
심지어 대중 연예인이 아니라 뽈노 배우도 마찬가지에요. 제 10대 시절을 지배했던건 기차역 인근 으슥한 골목 벽에 있던 야설 파는 아저씨의 야설이에요. 그리고 일본 AV 배우들이죠. 모치다 료코나 키라라 카오리 같은 배우들이에요. 지금 보면 그 당시 연기는 지금 연기에 비하면 별거 아니에요 그리고 영상 구성도, 내용도 모두 떨어져요. 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그때 기억을 되살리는건 그때 형성된 것이 지금도 이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우리 세대 시절의 추억은 응사 시리즈로 정점을 쳤어요. 아미 이후로는 뒷 세대들의 추억담이 만들어져서 판매되겠죠. 어쩐지 그 기점이 이제 넌 주류 문화에서 떨어져야 한다는 선언으로 보여져서 슬프기도 해요.


흥하는데 5대 망하는데 1대 by 아빠늑대

서구 유럽사를 알아보면서 로마를 빼먹을 수는 없을뿐더러, 빼면 그 거대한 공백은 사람을 난감하게 만듭니다. 빼버리면 그야말로 모든 게 다 미스터리로 변해버릴 테니. 로마를 이야기하자면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유명한 말처럼 많은 부침과 극복 속에서 그런 거대한 제국을 형성할 수 있습지요.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과정이 아니라 PAX ROMANA라고 불리는 "로마의 평화" 혹은 "로마 질서 속에서의 안정"이라고 말해지는 시대에 관한 것입니다. 이 팍스 로마나의 시대는 로마 전체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기원 후 96년부터 180년까지 5명의 현명한 황제들이 다스리던 시기를 지칭하는데요, 흔히 오현제의 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기로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이 시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만약 어떤 사람에게 인류의 상태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했던 세계 역사의 시기를 골라 보라고 하면, 그는 주저 없이 도미티아누스가 죽은 이후부터 콤모두스가 즉위하기까지 흘러간 시절을 주목할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극히 서구적인 관점이기는 하지만 서구 사회에서 이 시기가 주는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법하지요. 마치 중국사에서의 삼황오제의 시기라고 하면 비슷하려나? 아무튼간에 이 시기의 황제들을 나열해 보자면 첫 번째로 네르바 (재위년 : 96~98) -> 트라야누스 (재위년 : 98~117) -> 하드리아누스 (재위년 : 117~138) -> 안토니누스 피우스 (재위년 : 138~161)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161~180) 이 되겠습니다.

우선 네르바는 네로부터 시작해서 도미티아누스까지 6명의 황제를 보필하다가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당한 후 황권을 물려받아 겨우 2년을 다스렸을 뿐이나 워낙에 전임자가 깽판을 쳐 놔서 반사 이익을 얻은 사례라 딱히 엄청난 업적이 있는것은 아닙니다. 그냥 이 사람부터 시작되었구나 정도? 물론 공이 없는건 아닙니다만서도요.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다릅니다. 일단 트라야누스는 재위 기간 동안 로마 제국 사상 최대의 판도를 만들죠. 마치 로마의 광개토대왕처럼 말입니다. 물론 정복 전쟁을 많이 해서 땅을 넓혔다고 해서 좋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당시 로마의 통칭와 경제 구조를 본다면 이후 로마의 경제력과 영향력을 한껏 키웠다고 볼 수 있을 법합니다. 이 트라야누스는 그의 업적을 <트라야누스의 원주>에 기록해 아직도 로마 시내에 남아 있다고 하죠.
<트리야뉴스 황제, 비이탈리아계 황제, 문명6의 로마 리더>

그리고 세 번째 하드리아누스는 전임자가 넓혀놓은 땅을 제대로 다스렸습니다, 수성의 군주라고 할 수 있죠. 일단 로마 제국의 북방을 지금의 영국인 브리타니아 북쪽으로 정하고 그곳에 하드리아누스의 방벽을 만들었고. 그리스 미소년과의 동성애로도 유명하지만 그는 문무 모두에 능했으며 특히 그리스 문화에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네 번째 왕은 안토니누스 피우스로 로마의 역대 황제들 중 두 번째로 재위 기간이 긴데, 이 시기의 로마는 딱히 큰 전쟁도 겪지 않고, 큰 변혁도 없는 평온한 시기를 거칩니다. 속주 총독에게 많은 재량을 주어 자칫 독재로 흐를 수 있는 거대 권력을 분권화해 로마의 구석 구석으로 통치력이 미치도록 했고요, 특히 재정적으로 무척이나 알뜰해서 부유한 로마의 재산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단순히 짠돌이만도 아닌 것이 로마 건국 900주년에는 통 크게 축제를 벌이며 쓸 때는 쓴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섯 번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실 이 왕은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본 분이면 익숙할 법한데요. 사실 황제가 나온 건 초반 잠시 뿐이지만 이 시기를 배경으로 영화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내용은 상상력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해 실제의 역사와는 아주 큰 차이가 있으니 그걸 역사 다큐멘터리처럼 받아들이면 안되지만 상상력에 양념을 치는 정도로 쓴다면 문제가 없겠지 싶습니다, 우리는 역사학자가 아니니까요. 이 사람 역시 군사적 능력과 정치적 능력 모두 균형 있었고 고대 스토아 철학의 대표작인 <명상록>을 쓸 정도로 지적 능력 또한 뛰어났습니다, 물론 기독교 쪽에서는 기독교 탄압으로 안 좋은 시선이 있지만 말이지요.


이 다섯 명의 치세 동안 로마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대단한 성과를 쌓아 올리고 태평성대를 이루게 됩니다. 강력한 황제 권력이 국가의 국민들을 위해 움직인다면 그 시대를 어찌 뭐라고 할 수 있겠어요. 물론 학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서 미시적인 관점들을 끄집어 낸다면 부정적인 면이 없지도 않습니다만 이거 시대가 몇 천년 전의 이야기인걸 감안해야죠.


<로마제국의 최대 판도, 거의 당시 서구 세계의 전부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다섯 명의 치세 이후 마지막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뒤가 문제가 생겨 버립니다. 문무겸비, 지적 능력도 뛰어난 황제가 후계자를 선정하는데 있어서는 아주 악수를 둬요, 의외로 똑똑한 사람이 후계자는 엉망진창을 고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도 그래요. 그는 그의 자리를 친자인 콤모두스에게 물려줍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는 콤모두스가 황제를 배게로 암살하고 주인공 막시무스 장군을 핍박하여 검투사가 되게 만드는데요. 실제로는 콤모두스가 황제를 암살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게 콤모두스는 정치 보다 다른데 관심을 둔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국정보다는 검투 경기에 빠져 있었어요. 스스로 영웅 헤라클레스라고 지칭하며 검투 시합에 직접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냥 취미생활로 검투 경기에 빠졌었다고 한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12년의 집권 기간 동안 관련해서 대규모 토목 사업을 벌이고, 예산을 퍼부어 각종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고, 무리한 해외 원정까지 감행하면서 재정을 파탄 직전까지 몰아 넣었습니다. 결국 그는 고문관들이 고용한 레슬링 선수에 의해 자다가 목이 졸려 죽게 되는데 그의 마지막 복장은 검투사의 그것 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그로인해 로마 최악의 황제 중에 하나로 등극했고, 많은 역사가들은 이 시기 이후의 로마는 쇠망의 길로 걷게 된다고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 삼아 이야기해 보자면 콤모두스 이후 로마 황제 자리는 암투의 장이었는데 서기 235년부터 268년까지 30년간은 황제만 27명이 나왔고 그들 상당수는 암살당하거나 허수아비였습지요. 중앙집권제 국가에서 중앙의 힘이 이렇게 되면 자멸은 말하면 입이 아프겠죠.

그런데 도대체 현자라고 불리던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왜 콤모두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올렸을까요? 사실 그 이전까지 로마의 황제는 그 후계자를 능력 있는 사람을 골라 교육시키며 황제의 자리에 적합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는 정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자신의 일곱 아들 중에 성년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자식인 콤모두스를 너무 사랑했었나 봅니다. 그는 자신의 옆에서 가르쳐서 황제를 시키면 조금 모자라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을까요?

실제로 콤모두스는 노쇠한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177년부터 공동 통치자로 올라가 3년간 게르만족과의 전투도 치르고 정치 일선의 모습을 보며 황제 교육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으로 어쩔 수 없는 본성이 그런 사람인지 아니면 교육의 방침이 잘못된 것인지 콤모두스는 단독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전술한 것처럼 로마를 말아먹기 시작한 것이었죠.

아버지로서 자신의 아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것이야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아비의 작은(?) 욕심은 자칫 이렇게 수천년 된 나라를 말아먹는 상황으로 몰아 넣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냥 평범한 가정집에서 아들에게 집하나 물려주는 정도의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거죠.

요즘 우리나라에서 재벌들이 2세 후계를 떠나 3세 후계로 넘어가는 모습들을 종종 봅니다. 다행히 능력이 있어서 잘 이끌어 나가면 다행인데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될까 싶어요, 단순히 회사 하나가 사라지는 것으로 해결된다면 참 다행이겠지만 말입니다. 허긴 뭐... 전문 CEO가 다 잘한다는 법도 또 없고...


공수처 비슷한건 정말 없는가? by 아빠늑대

"...검경 문제를 검토하면서 공수처를 하겠다고 한다. 공수처라는 것이 무엇인가. 새로운 검찰청이다. 그 새로운 검찰청을 뭐하러 세우느냐. 민변 검찰청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만들어서 좌파 영구집권 체제로 가보겠다는 것이다. 공수처라는 기구가 세계 어디 있는가. 아프리카에도 없다. 공수처가 잘못하면 그 위에 공공수처를 또 만들 것인가. 그것은 권력기관 개혁이 아니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연찬회 주요내용 중 홍준표씨 발언 중에서-


문재인씨의 공수처 논란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홍준표씨의 말처럼 세계 어디에도 공수처와 같은 기구가 없다고 하니 정말 그런가 싶어 한번 찾아봤습니다.

1. 미국

미국은 공직자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 기구를 다양하게 두고 있더군요. The United States Office of Government Ethics (OGE) , The United States Office of Special Counsel (OSC) , The Council of Inspectors General on Integrity and Efficiency (CIGIE) 라는 세 기관이 삼위일체로 공직자 윤리 및 부패를 감시 단속합니다. 이 중에서 OGE와 CIGIE는 검찰의 기능은 없고, 교육 및 윤리 규정 제정, 내사 등을 행하지만 OSC는 강제수사권과 공소권을 가지고 감찰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그런 기능을 가진 기관을 둔 나라는 없다는 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2. 홍콩 및 싱가포르

홍콩은 나라가 아니고, 싱가포르는 도시 국가 형태라 그냥 묶어 버렸습니다. 홍콩은 일국양제로 2047년까지 자치권이 보장되어 있다고 말은 하고 있으니 아직 외형적 형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홍콩은 ICAC (廉政公署염정공국) 라는 기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관 역시 행정장관 직속 기관으로 부패 공직자 및 민간인까지 사찰 가능하고 부패 혐의자는 기관 독자적으로 영장없이 48시간 구금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다만 공소권은 없습니다.

싱가포르는 CPIB (貪汚調査局 탐오조사국)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역시 홍콩처럼 매우 강력한 부패 조사를 벌이는데 독자적인 공소권은 없으나 역시 강제수사권은 있으며, 공소권이 없어도 되는 것이, 총리 직속으로 하부에 경찰과 검찰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료에 따라서는 1960년대에 CPIB가 리콴유에 의해 설립되었을 때 사법권 수사권등이 부여되었다고 하는데 입법조사처 논문에는 없다고 하니 없는 것이 정확할 듯 합니다.


3. 호주

호주는 Independent Commissioner Against Corruption (ICAC) 기관을 두고 있는데, 호주 전체가 아니라 뉴사우스웨일즈 지역의 부패 단속 기구입니다. (호주 주 정부가 따로 반부패 기관을 두고 있는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80년대 후반 이 지역의 입법 사법 행정을 구분하지 않고 널려있던 부패 공직자들을 단속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역시나 독립 기관이며 범죄혐의의 접수 및 심사에 있어 수사권을 가진 수사관이 수사 업무를 진행합니다만 공소권은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는 없으나 법무부 장관의 동의를 얻어 행사합니다.

4.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는 위의 호주 기관을 모델로 The Malaysian Anti-Corruption Commission (MACC) 라는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기관에는 수사 부서와, 기소 부서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양쪽은 모두 독립적으로 움직입니다. (MACC에는 다섯개의 하부 조직이 있는데 모두 독립적이라고 합니다) 수상 추천으로 국왕이 수장을 임명하고 있으며, 이 기관 자체가 준 사법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기관은 [반부패위원회법]에 적용을 받는데 이 법은 다른 법과 상충될 경우 무조건 이 법이 우선시 됩니다. 또한 수사관은 경찰공무원에게 인정되는 모든 수사권한을 부여받으며, 그와 동등한 법적 지위가 인정됩니다. 이 기관의 수사관은 권한이 엄청나게 큰 만큼 불법 고문이나 의문사 등의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대충 찾아본 결과, 역시나 홍준표씨의 발언은 별로 근거 없는 발언임을 확인했습니다. 아! 아프리카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대만 또한 AAC 같은 기관이 있지만 이 기관은 총리 산하 기관도 아니고 법무부 산하 기관인데다가 파견 검사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논외로 했습니다.

다만 별도로 본인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위의 기관들도 기관 스스로의 문제점들을 해소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공수처를 두어야 하는 것인가는 의문이 됩니다. 이미 특별검사나 특별감찰관이라는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정착되기도 전에 자꾸만 부서만 늘리고, 법률안만 늘리는 것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렴도 상위권 국가들의 경우 저런 특별 기관들이 존재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기존 기관들의 투명성을 확립하고, 기존 기관에 강도높은 독립성과 도덕성을 부여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가슴 아픔 by 아빠늑대

퇴근하다가 잠시 다른 사람의 아파트에 들러 물건을 전해주려고 갔는데 턴을 하다가 콘크리트 블럭에 살짝쿵... 내려서 확인해 봤는데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범퍼 아래쪽 하단부가 거칠거칠 한 것이 틀림없이 기스가 나 있는 것 같은데, 뽑은지 한달도 안된 차라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아... 한 일년쯤 탔다면 무덤덤 할 것인데 어찌 이리 일찍 아픔을 내려 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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