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수술 by 아빠늑대

오늘 눈 수술을 했습니다. 라식 라섹 같은건 아니고, 수술이라니까 뭔가 거창한 것 같지만 그냥 레이저로 상처 주위를 지져서 더 악화되는 것을 막는 수술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서워서 어찌나 땀이 나던지... 보통 치과에서 무섭다고 힘이 바짝 들어가곤 한다는데 오히려 전 그쪽보다는 안과 시술이 더 무섭네요. 꽤나 민폐였습니다.

그리고 정밀 검사를 하면서 제가 왼쪽 눈이 주시안? 주력안? 뭐 여튼 그런거라는 걸 알았네요. 일상 생활에서는 별다른 문제는 없는데 운동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주시안과 주로 쓰는 손의 위치가 다르면 크게 성공하기 힘들다고 하는 이야기를 봤습니다. 어쩐지 제가 둥그런 공을 다루는걸 잘 못하더니만...

전 배구 같은걸 하면 제가 원하는 곳에 보내기 위해 더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공을 쳐야 합니다. 꼭 왼쪽으로 방향이 꺽여 버리거든요. 물론 충분한 연습을 통해 교정하면 되겠지만 그러지 않기에 그런 부분이 드러나는가 봅니다. 축구 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어떻게든 개발 개손이라는 것을 가리기 위해 명분을 쌓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에게 이순신이란? by 아빠늑대

임진왜란 때, 일본이 조선을 완벽하게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을 막은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한다면 역시 이순신의 존재입니다. 이순신의 수군 때문에 모든것이 어그러졌고, 그 뒤로는 그저 "싸움질" 이외에는 다른 전략적인 무언가를 하기 힘든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죠. 그렇다면 이런 엄청난 상황을 초래한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일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악귀? 명장? 맹장?


아니요, 처음에는 대중들은 "잘 몰랐다" 입니다. 일본인들이 속이 좁아서 자신들에게 큰 피해를 준 사람을 의도적으로 제거한 것일까요? 그것 또한 아닙니다. 사실 알려고 해도 너무 정신이 없어서 몰랐다는 쪽이 더 바른 판단입니다. 1598년 8월에 히데요시가 병사 한 뒤, 내부적으로 심각한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1600년에는 권력 쟁투의 정점인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 전투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게 되지만 그 뒤로도 순조로운게 아니라서 1603년 도쿠가와 막부를 연 다음에 오사카 전투를 겪어야 했고, 그 뒤로는 1637년의 시마바라의 난도 겪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참전했던 장수들의 상당수가 죽어나간데다가 1607년 도쿠가와 막부가 조선과의 관계 정상화를 꾀하면서 도요토미의 일이니 우리와는 상관없다며 당시의 일들에 대해 철저하게 함구시켰습니다.

사실 막부 체재 안에서 사적인 역사서를 상당히 금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의 내용들은 주로 소설이나 연극 등의 형태로만 퍼졌죠. 임진왜란도 그런 속에서 '조선 군기물' 이라는 형태로 대중에게 퍼졌습니다. 그나마도 임진왜란에서의 조선 기록은 1643년 <조선정벌기> 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는데, 이 책의 레퍼런스는 명나라의 <양조평양록>이라는 책에 의존했고,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내용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이 책에는 이순신이 이순신이 아닌, '이통제' 라는 인물로 나옵니다.

그러다가 100년쯤 지난 다음인 1695년에 유성룡의 <징비록>이 일본에 수입되는데, 이 책 덕분에 임진왜란에 대한 책들이 다수 발간됩니다. 예를들어 <조선군기대전> 이나 <조선태평기>나 <조선징비록> 같은 책으로 말이죠. 그리고 이때부터 이통제라는 명칭에서 이순신이라는 제대로 된 이름으로 이순신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당시 이순신을 영웅으로 등장시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일본인들에게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각인되기 시작하죠.

그 뒤로 나온 삽화까지 가미된 소설 <에혼다이코기>에도 류성룡과 이순신이 등장하기도 하고, <조선 징비록>은 다시 중국으로 역수출되어 임란과 류성룡에 대한 중국인의 관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군요.

자... 그렇다면 이런 책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조선정벌기의 이순신>

우선 이런 책들 안의 연도나 자세한 인명 같은것은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책들마다 특정 사건에 대한 날짜가 다르기도 하고, 내용 또한 제 멋대로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즉, 역사서가 아니라 대중소설에 가깝기 때문에 (삼국지연의 처럼) 자신들을 부풀리기 위해 가짜 이야기들도 마구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증보조선정벌기> 같은 책에서 부산포 전투를 묘사하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조선에서는 일본의 대군이 쳐들어올 것을 미리 알았기에 이웅과 맹명백 두 사람을 대장으로 2만 병력을 배치시켰다... 첫번째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한 이들은 부선성에 틀어박혔다... 성안의 병사들이 서쪽 문을 향해 도망치려는 것을 고니시의 7천군이 달려가 종횡무진으로 공격하니 총병 이웅은 웅천으로 달아났다... 맹명백은 천하장사여서 산타유를 잡아 누르고 목을 베어 일어나려던 차에 고니시 요치히로가 달려들어 맹명백의 목을 베었다..."

뭐, 이런 식입니다. 재미있으라고 연의를 쓴거죠. 그러니 그런 것들을 말해봐야 이야기를 하는 이 블로그 글에서는 큰 의미가 없기에 그냥 개괄적으로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에혼조선정벌기>의 이순신

여튼간에 일단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 사이에는 <조선정벌기>와 <에이리 다이코기> 같은 책이 있습니다. 이런 책들은 임란에 대하여 썼다기 보다 그냥 히데요시의 일대기를 그린 책에서 임진왜란 부분을 일부 설명하고 있는 정도였죠. 이중 <조선 정벌기> 속의 이순신은 상당히 "무사" 스런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사천해전에서 유탄을 맞은 이순신이 칼로 살을 찢고 총알을 빼내면서도 태연자약한 사무라이 스럽게 묘사되지요.

예전에 어떤 TV프로에서 일본인들은 이순신을 무서운 모습으로 그려뒀다며 마치 그게 비하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봤는데, 당시 나온 다른 일본 무장의 모습들을 봐도 그런 무시무시한 모습은 훌륭한 무사들을 표현하는 일본의 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수염이 있으며, 캐릭터가 커요. 나쁘게 묘사한건 아니라는거죠.

1853년경에 나온 <에혼조선정벌기>의 이순신도 그 이전과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큰 창을 들고 있고, 중국식의 갑옷을 입은 맹장의 형태가 이순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내용이 꽤나 많아져서 이순신이 단기로(?) 북쪽 오랑캐를 무찔렀고, 전라 수군절도사로 귀갑선을 만들어, 충용으로 가장 앞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1887년쯤에 나온 <에혼조선정벌기>의 상편을 보면 (이름이 같아도 놀라지 마세요, 그냥 증보판 같은 것들도 있고, 내용이 똑같은데 삽화가 더 추가되거나 화려해지거나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 이전까지의 이순신이 맹장의 모습처럼 그려진 것과 달리 멀끔한 젊은 미소년 장군으로 묘사됩니다. 이순신이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백마를 타고 활을 쏘는 모습인데 꽤나 준수한 용모로 그려진 것을 본다면 이쯤가면 꽤나 인기있는 역사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1887년본 <에혼조선정벌기>의 이순신


사실 뭐, 이러한 것들은 적에게 대한 존경 같은게 아니라 "이런 무시무시한 적을 우리편이 해치웠다" 라거나 "이렇게 고생고생 했다" 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일 뿐이니 여기에 큰 가치를 부여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본인들도 이순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을 품는건 이상한게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여건이 되면 근대 이후에는 또 이순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라는 내용을 살짝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주에 by 아빠늑대

일본에서 바라본 이순신에 관해 하나 써 봐야겠네요. 이거 말 안해놓으면 또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 넘어갈 것 같아서 말이죠. 허긴..., 전에는 이야기 해두고서도 넘어갔습니다만... ;; 어쨌거나 요번주 내로 이야기 하나 올려보겠습니다. 진짜로요!!

왜 집단 사격술이 잘 안보일까 by 아빠늑대

임란이후 조선의 조총 운용 방식은 꾸주~운 히 개인의 사격술에 의지하는 바가 꽤나 컸는데 이게 왜 이럴까 고민을 해 봤더랬지요. 물론 고민에서 끝난지라 정확한 데이터나 기록 근거를 가지고 있는것은 아닙니다. 제가 스치듯 본 책들에 의지한 그냥 망상입니다 망상. 여튼간에 왜 그럴까 했는데 결국 돈이 문제더군요. 조선은 평시에 유지 가능한 병력 숫자는 대략 3만 정도가 한계인 것 같더군요. 나머지는 징집에 의존하는데 전쟁이 그렇게 많은 국가가 아닌지라 평소에 훈련이 될리가 만무합니다. 나중에 가면 일년에 한차례 있는 훈련도 대신 보내거나 흐지부지 하거나 합니다.

그러니까 가까운 일본이나 유럽의 머스킷 운용 방식은 일단 기본적으로 전쟁이 자주 있고, 평시에 훈련의 양이 어느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실탄 격발 훈련이야 둘째치고, 일단 모아놓고 제식이라도 가르쳐서 몸에 익혀야 하는데 일년에 한 번 정도 나가서 망보고 오는걸로 그런게 이뤄질리 만무하죠. 그런데 조선의 조총 숫자는 꽤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민간에도 많은 수의 조총이 있었는데 주로 사냥용 등으로 쓰였죠. (나중에 민간의 조총에 대한 기록을 이야기 해 보고 싶네요)

사냥에서는 집단화된 사격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개개인의 사격 실력에 의존하죠. 의외로 많은 조총들이 민간에 풀려 있었고 그것으로 평소 사격을 하던 사람들이 모이는데 다른 훈련은 거의 없다? 당연하게도 개개인이 그냥 사격하는게 모여 있는 것 밖에 안되는거죠. 사냥에서는 개인의 사격 실력이 꽤나 중요합니다만 전쟁에서는 그닥... 화력의 집중은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데 사냥꾼들이 죄다 호랑이 잡을 스나이핑 가능한 실력과 깡을 갖추고 있을리 만무하고, 사냥할 사냥감과 달려드는 적은 그 압박감이 엄청나게 다르지요.

전쟁에서 개개인의 사격술이 유용하려면 일단 사격자가 호랑이와 맞짱을 뜨던 정도의 깡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어쩄거나 이건 근거를 가져다 붙이지 않은 망상이니 잡담일 뿐입니다.


오늘은 대전에 다녀왔는데요 by 아빠늑대

음... 대전은... 음... 갈만한 곳이 없네요. 대전을 벗어나서 대전과 가까운 곳들은 갈만한 곳이 있는데 말입니다. 뭐, 물론 하루 다녀온걸로 뭘 얼마나 알겠습니까만 그래도 뭔가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나중에 다시 방문하게 되면 조금 더 알아보고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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